[향토문화] 매립공사로 물줄기 훼손..평대리 엉물(웃물, 큰물통, 용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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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매립공사로 물줄기 훼손..평대리 엉물(웃물, 큰물통, 용천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4.02.27 0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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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지켜온 '큰물통'이 지금은 보존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평대리 엉물(웃물, 큰물통, 용천수)

위치 ; 구좌읍 평대리 3351-1번지(세화공유수면매립지)
시대 ; 미상
유형 ; 수리시설(용천수)
표고 5.2m, 1일 용출량 평균 3,000㎥, 최대 5,500㎥(1999년 조사)

평대리_엉물(과거현재)

 

평대리_엉물

 

평대리 세화공유수면매립지는 엉물을 비롯해 생이물, 큰물통 등 3개의 큰 샘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고 썰물이 되면 수위가 낮아지고 밀물 때는 수위가 높아졌다고 한다. 지금은 2개의 위치는 확인되지만 1곳은 찾을 수 없다.

엉물은 높이 2m, 폭 2m쯤 되는 반구형의 굴에서 솟아난다. 이런 곳을 제주어로는 엉이라고 한다. 물 이름이 그래서 엉물이다. 물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평대리 갯마리 큰물이라고 되어 있다.

2곳으로 나누어져 한 곳은 식수로 다른 곳은 목욕 및 생활용수로 이용하였다는 설명이 있다. 마을 사람들도 엉물 또는 큰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수자원본부의 사진에는 웃물(여탕)이라고 소개하였다. 아마 1990년대 사진으로 추정된다. 출입구가 서쪽으로 나 있다. 이 사진에는 엉물 남쪽 바위에 돈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지금은 그 나무가 없다. 울타리가 이 용천수와 붙어 있는 집은 그대로 있으나 벽에 걸쳐서 지붕을 만든 점이 달라졌다.

거의 정사각형으로 물통을 조성하였고 10여m 북쪽에 다시 사각형의 물통이 만들어졌었다. 북쪽의 이 물은 생이물이라 불렀던 것 같다. 물이 적어 생이물이라고 불리고 있다지만 주민들의 말을 빌리면 예전에는 주변 샘들 못지않게 충분한 용출량을 자랑해 주민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생이물은 1992년 택지개발사업을 위해 공유수면이 매립되면서 사라졌다. 매립공사로 물줄기를 훼손해 버렸기 때문이다.

제주일보(1996-09-12) 기사에는 이 샘에서 동쪽으로 10m 가면 남자들의 목욕물로 사용됐던 큰통물이 위치해 있다고 했다. 제민일보(2018-11-20)가 소개한 큰물통과 모양이 비슷하다.

평대리 주민들의 자랑으로 마을을 지켜온 '큰물통'이 지금은 보존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제주연구원은 지난 2016년 12월 제주도에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관리계획 수립' 용역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도내 산재한 용천수의 이름과 위치, 용출량, 수온, 보전관리평가 점수, 관리수준, 보전가치 등 용천수 관리에 필요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큰물통'은 이름만 올리고 있을 뿐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주도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는 도내에 있는 1025개 용천수 가운데 보존 가치가 있는 661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며 "'큰물통'은 역사적 가치와 주민 이용 등 점수가 낮아 보존.관리대상 용천수로 지정만하고 점수를 기재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큰물통'이 이 같은 상황에 놓인 것을 두고 다양한 원인과 가설이 나오고 있지만 인근 공유수면을 매립하는 과정에서 수량이 감소하고 본래 모습을 잃었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구좌읍 평대리에서 한 평생 살고 있는 김봉림씨(84세)는 "50년 전만해도 평대리 큰물통 주변은 바다와 모래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때는 순환도 잘 되고 용천수도 맑아 장어 등 물고기들이 존재했다. 이에 너 나 할 것 없이 그물을 이용해 고기를 잡은 적도 있다. 큰물통 주변에는 남자목욕탕이 존재했다. 이 목욕탕 물은 깨끗하고 시원해 여름철, 대부분의 마을 남성들과 어린이들이 큰물통을 찾을 정도였다. 아울러 세화, 한동 등 다른 지역 사람들도 찾아와 몸을 식히곤 했다. 당시 평대리 주민들 대부분이 밭농사를 하고 있어 일을 마치면 큰물통으로 갔다. 그 곳에서 몸을 씻는 것은 물론, 작업복을 빨고, 함께 일한 소를 몰고 와 물을 먹이고 갔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큰물통을 애용했다. 하지만 30여년 전 매립을 하고 난 이후 물이 줄기 시작해 현재는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도 끊겨 옛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제민일보 181120)


최근(2015년 전후 추정)에 이 용천수는 모양을 달리하게 되었다. 서쪽에만 있던 출입구를 동쪽으로도 설치했으며, 웃물은 잘 다듬은 현무암을 써서 바닥을 정비했고 아래에 있는 물은 시멘트 물통이 철거되고 자연석 큰 돌로 둘레를 쌓아 조경했으며 두 물통 사이에는 물길을 만들었다.

물길 벽은 깬 현무암을 계단처럼 쌓아 올렸다. 아래 물통은 옛 생이물 자리로 보인다. 그러나 이곳엔 물이 고이도록 하거나 가두려는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배수구를 설치하여 빠져나가게 했다. 바닥은 모래에 물 흐른 자국은 있지만 평소에 말라 있다. 배수구 가운데쯤에 집으로 통하는 작은 다리를 설치하였다.
《작성 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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