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1924년에 처음 예배당 세워..금성리 금성교회 옛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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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1924년에 처음 예배당 세워..금성리 금성교회 옛건물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4.03.0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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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건 당시 순교한 제주 출신 첫 목사 이도종 목사가 어린 시절에 다니던 교회다.

금성리 금성교회 옛건물 

위치 ; 애월읍 금성리 591-1번지(금성1길13)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종교시설(기독교회)

금성교회_종탑과_내부

 

금성리_금성교회옛건물

 

금성리 교회의 설립에 대해서는 1928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편찬한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제1권에 언급되어 있다.

〈1908년. 제주도 금성리교회가 성립하다. 독노회 설립 당시에 파송한 전도목사 이기풍과 매서인 김재원 등의 전도로 조봉호, 이도종, 김씨진실, 조운길, 양석봉, 이씨호효, 이씨자효, 김씨도전, 김씨유승, 좌징수, 이의종이 귀도하야 조봉호가에 회집 기도하다가 이덕년가를 예배 처소로 작정하니라.〉

귀덕리 출신 조봉호가 경성의 경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신문물과 더불어 복음을 수용하였다. 경신고를 졸업한 뒤 평양의 숭실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이때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향에 내려온 이후 이웃들에게 열심히 전도하여 이도종 등 8인이 금성리 양석봉의 집(금성리 534번지)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1907년 3월 10일이었다.

1912년에는 귀덕리 1292번지 조명호 댁, 1917년에는 지방목사 김창국(金昶國=독립희생회를 조직한 분)씨가 이덕련(이도종 목사 부친) 사택(690번지)을 예배와 강의소로 결정하여 예배를 드렸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 순교한 조봉호 선생이 청년시절에, 4.3 사건 당시 순교한 제주 출신 첫 목사 이도종 목사가 어린 시절에 다니던 교회다.

1923년 12월 애월읍 금성리 591번지의 땅을 구입하고 초가지붕의 창고를 개조하여 1924년에 처음 예배당을 세워 금성리뿐만 아니라 이웃마을 곽지, 귀덕, 납읍, 봉성, 애월 등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묵은 예배당은 그 자리에 1970년 지은 것이다. 한국전쟁의 시기에는 피난민을 포함한 마을 주민의 80%가 세례교인이 된 적도 있었다.

예배당 안마당에 있는 사택은 처음에는 목회자가 사용하였지만 나중에는 집 없는 주민을 위해 쓰였다. 예배당 안에 "금성교회를 봉헌하면서" 라는 작은 헌사가 있다.

〈锦城敎會를 奉獻하면서 ; 대한예수교 장로회 금성교회는 1907년 3월 이도종 외 8인의 구도자가 양석봉의 집에서 회집예배하다가 1908년 이기풍 목사의 전도로 조봉호, 조운길, 이덕련 등이 예수를 믿어 처소를 이전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일제치하의 악련한 탄압 속에서도 1923년 12월 금성리 591변지에 초가집 예배당을 짓고 이웃 부락인 곽지, 귀덕, 낙읍, 봉성, 애월까지 전도하다.

초대 교인인 조봉호는 대한민국 독립군을 위한 자금모금 등 독립운동하다가 일제에 의해 1920년 4월 28일 옥중 순국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이도종은 후에 목사가 되어 복음전도 중 4.3 사건 때 폭도들애 의하여 1948년 6월 19일 피살 순교하다.

김정권 은 1932년 예수를 믿음으로 주변환경에 온갖 어려운 저치에 있었으나 믿음으로 시련을 이기고 끝까지 주님을 섬기다가 1975년 8월 20일 소천하다. 90년 가까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신앙인을 배출하였으나 이웃 부락의 교회 창립과 이농에 따라 교회의 사정이 매우 어려워지고 교회당마저도 좁고 낡아 복음선교에 어려움이 다다르게 되었다.

이에 김정권 집사의 2남인 김동빈 집사는 모태신앙인으로 소년기를 가족과 함께 금성교회에서 성장하였으며 현재는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가운데도 선친의 유지와 모교회의 부흥과 선교에 새로운 전기를 갖기 위하여 현 위치의 대지매입비와 건축비 전액을 헌금하여 이 성전을 준공하다.

여기에는 본 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제주성안교회, 제주노회의 여러 교회들의 도움과 함께 이 성전을 봉헌하게 된 것이다. 새 성전의 헌당은 하나님의 섭리요 축복이며 지역사회의 복음화와 봉사에 헌신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그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1996년 4월 19일〉

1973년 9월 16일에 낡은 예배당을 헐고 금성교회 성도들의 헌신과 제주노회 소속 교회와 성도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새 성전을 지어 예배의 터전을 견고히 하게 되었다.

20여년 지나자, 교회당은 낡고 좁은 공간이 되었다. 마침 금성교회에서 처음 신앙을 가지고 주일학교를 다니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셨던 곽지리 출신 재미교포 김동빈 집사가 교회를 방문하였고,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새 교회를 짓기로 하나님 앞에 작정하게 되었다.

금성리 436-3번지의 대지를 마련하고 현 예배당을 신축하여 1996년 9월 9일 봉헌하기에 이르렀다.(제주교회사 다음카페, 세종경제신문 2016.09.16.)
《작성 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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