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리 문봉령(文俸玲) 지사 생가
위치 ; 두모리 2708번지(두모7길13)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위인선현유적
위 주소에 살았던 문봉령(1913∼1948) 지사는 일본에서 此花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한글 사용이 금지된 시기에 일본에서 학교 졸업앨범에 〈보ㅇㄹㅕㅇ〉이라고 자기 이름을 나타내는 등 항일독립의 의지가 강했었다.
일제강점기 두모리 청년회장을 할 때 다른 청년을 시켜서 전봇대를 잘라 버리도록 했다. 강원도 장전으로 피신하여 살고 있었는데 결국 그곳에서 잡혀서 갖은 고문을 당하였다.
물고문, 전기고문, 쇠좆매 등을 다 참아냈는데 가죽옷 고문(쇠가죽으로 만든 옷을 물에 적셔서 입히고 햇볕 아래 놔 두는 고문. 가죽이 마르면서 조여들기 때문에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고 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가 시켰다는 사실을 자백하고 말았다. 기소되었으나 밭을 팔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왔다.
광복 후에는 사립 고산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한림경찰서장으로부터 경사로 근무해 달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마을 일을 해 줘야 한다는 요청에 따라 경찰에 근무하지 않았다.
4·3 당시 마을에서 경찰들이 마을 주민들과 장구치고 술 마시며 노는 것을 보고 한원리(?) 사람들이 수없이 죽었는데 이렇게 술 마시며 놀 수 있느냐고 바른 말 한 것에 경찰이 화내며 마구 구타하였고, 문 지사는 겨우 집에 돌아와서 바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항일투쟁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서훈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2019년 2월 2일 아들 1932년생 文行宇씨와 자택에서 면담) 아들 문행우씨는 취미로 사진을 찍으면서 향리에 살고 있다.
《작성 19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