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위에서 모으면 '흑자' 밑에서 모으면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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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위에서 모으면 '흑자' 밑에서 모으면 '적자'
  • 한무영
  • 승인 2009.06.07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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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영의 물이야기] 빗물의 위치에너지를 잘 활용하자..⑦



빗물이라고 다 같은 빗물인가?

같은 빗물 100톤을 받더라도 산에서 받을 수도 있고, 도로를 지나 하천에 들어가기 직전에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받은 위치에 따라 수질과 위치에너지가 엄청나게 다르다. 따라서 그 가치나 비용은 물론 사람들의 빗물관이 달라진다. 어디서 모으면 좋은가? 그것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값싸게 모으는 것이다.

빗물의 수질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은 빗물이다. 일부 우려가 되는 항목이 있긴 하지만, 산성비는 땅에 떨어진 다음 쉽게 중화되며, 입자상 물질은 쉽게 침전으로 제거된다. 대기의 오염 물질 양은 음용수 수질기준의 1000분의1도 안 된다. 반면, 하천이나 호수의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오염물질은 빗물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빗물에 어떤 나쁜 물질이 존재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물에도 그 물질이 존재한다. 모든 물은 빗물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붕에 떨어진 빗물을 받아서 검사해보면 녹아 있는 이물질이 별로 없다. 받은 빗물 1리터를 증발시키면 남는 양(증발잔류물, TDS)이 0.02~0.03그램(20~30ppm)밖에 안 될 정도이다. 이것은 수돗물보다도 낮은 수치이다.

도로에 떨어진 빗물을 하천에 들어가지 직전에 받아서 검사해보면 들어있는 물질이 매우 많다. 도로에 있던 타이어 가루, 먼지 등 지저분한 것이 잔뜩 녹아 들어가서 1리터를 증발시키면 5~10그램(5,000~10,000ppm)이나 남는 경우가 있다.

원래 깨끗한 빗물에 이물질이 녹아들어간 것이다. 따라서 빗물의 수질은 ‘위’에서 모을수록 깨끗하고, ‘밑’에서 모을수록 더럽다.

빗물의 위치에너지

빗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므로 높은 위치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일단 땅에 떨어진 다음에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에너지에 의해 토양이 침식되기도 하고 하수관에 쌓인 찌꺼기가 씻겨 내려간다. 비가 온 다음 하천이 흙탕물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치에너지를 잘만 활용하면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다. 물레방아를 돌리기도 하고, 자연 분수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일단 위치에너지가 낮아진 다음 위로 보내려면 펌프 등으로 에너지를 투입하여야 한다. 따라서 ‘위’에서 빗물을 모으면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지만, ‘밑’에서 모으면 에너지를 소비하여야 한다.

어떤 빗물이 더 경제적인가?

더러운 물을 사용목적에 맞게 처리하려면 비용이 더 많이 든다.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사용용도가 제한된다. 따라서 하류에서 받는 물을 수질적인 차원에서 비경제적이다. 그런데 상류에서 모은 깨끗한 빗물은 허드렛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먹는 용도로까지 쉽게 활용할 수 있다.

‘밑’에서 모은 빗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다. 반면, ‘위’에서 모은 빗물은 동력이 전혀 들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활용하여 다른 일도 할 수 있다.

빗물이 흘러내려가면서 에너지를 줄이면 토양침식도 막고, 찌꺼기를 다시 떠오르게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하천의 흙탕물을 줄여주면,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사회적인 비용도 절감된다.

수질과 에너지의 이점을 보았을 때 빗물을 상류에서 모으는 것이 좋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간다.

기왕이면 ‘위’에서 모으자

수질과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가장 좋은 빗물 모으기 장소는 ‘위쪽’이다. 다행스럽게 우리나라는 산이 많이 있다. 산 지역에 떨어진 빗물을 모아두면 홍수도 예방하고, 나중에 별도의 에너지를 들일 필요 없이 빗물을 자연적으로 땅에 침투시켜 지하수위도 보충해줄 수 있다.

평야지역의 도시에서 빗물은 지붕을 타고 내려와 도로와 하수도를 통해 하천으로 내려간다. 빗물이 아래로 내려가면 더러워지고, 가지고 있던 위치에너지를 아무데도 사용하지 않고 다 버리고 내려간다.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이때는 건물에 빈 공간을 만들어 빗물을 모아두면 깨끗한 물을 받아서 쓸 수 있다.

‘밑’에서 모으면 규모가 커진다는 또 다른 단점이 있다. 여러 곳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공간을 만들려면 예산과 시간이 많이 들고 민원도 발생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목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위’에서 모으면 규모가 작아져서 예산과 공기, 그리고 민원을 줄일 수 있다.

일본은 ‘밑’에서 모은다는데?

일본의 주요 도시에는 홍수방지용으로 40~50미터 지하에 직경 5~6미터의 대규모 지하 방수로가 수십㎞씩 건설되어 있다. 이러한 시설에 감탄만 하고 그것을 따라하지 못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마 일본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수질과 위치에너지라는 측면, 그리고 그 규모의 효용성면에 대한 답변은 궁색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이유와 조건으로 우리 실정에 맞게 빗물을 모으면 된다.

우리나라의 ‘‘밑’에서 모으자’ 정책

우리나라의 정책도 지금까지는 '빗물은 ‘밑’에서 모으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만들어 왔다.

환경부는 하천오염방지용으로 하천에 들어가기 직전에 더러워진 빗물(비점오염원)을 처리하도록 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 고려할 것은 그 규모이다. 우리나라의 강우 특성상 떨어지는 모든 빗물을 처리하도록 시설을 크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며, 비가 많이 올 때는 어차피 모두 다 처리하지 못하고 하천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기왕 처리할 것이면 빗물을 모아서 나중에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 ‘위’에서 깨끗한 물을 모으면 처리 안 해도 되는데 하는 생각, 처리에 드는 모든 비용은 국민의 세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따라서 빗물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빗물을 모아 더러워지기 전에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것이 선진외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소스 컨트롤(source control)이라는 방법이다.

건교부는 홍수방지용으로 하천 변에 홍수조절지를 만드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단지를 만들 때에도 그 하류 부분에 유수지를 만들어 두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모두 다 에너지를 잃어버린 더러운 빗물을 ‘밑’에서 모으자는 일변도의 계획이다.

좀 ‘위’에다 만들어 두면 깨끗한 빗물의 에너지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새로 만들 신도시에는 빗물 저장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빗물을 모아 여러 가지 목적에 사용하는 선진적인 발상 중의 하나이다.

물론, 각 정부부처에서 지금 하는 방법으로도 수질보전이나 홍수방지 등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다. 그러나 조금 더 현명하게 생각하여 빗물을 다목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든다면, 같은 비용으로 국민들이 더욱 윤택하게 살도록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산중턱 터널形 빗물저장조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산중턱 터널형 빗물 저장조(1만~10만 톤, 그림)를 제안한다. 우리나라의 기술로도 이런 시설은 적은 비용으로 쉽게 만들 수 있다. 지역마다 여러 개를 만들어 여름에는 빗물을 터널에 저장한 후 가을, 겨울에 천천히 하천으로 흘려보내거나 지하로 침투시키든지, 비상시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부 빗물을 봄까지 남겨두면 산불에 대비할 수도 있다. 공사 후 지상에 남는 것은 터널 입구뿐으로 환경훼손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으며, 이 입구 주변에 작은 건물을 지어 지역주민의 환경교육을 위한 장(場)으로 만들 수 있다.

‘위’에서 모으면 ‘흑자’, ‘밑’에서 모으면 ‘적자’

빗물관리를 조금 더 현명하게 해보자. 정부부처가 빗물관리 정책을 펼칠 때, 그동안의 관행과 외국의 예를 참조하여 ‘밑’에서 모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기후 및 지형사정을 보고, 그 실정에 맞도록 ‘위’에서 빗물을 모아보자. ‘꿩 먹고 알 먹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국민의 세금부담을 줄이고 안전성을 높이면서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잘 살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미리) 호미로 막을 것을 (나중에) 가래로 막지 말라”는 말이 이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금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에 고개를 숙인다.

한무영 교수(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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