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들레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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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들레오름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7.3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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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347.9m 비고: 40m 둘레: 1,281m 면적: 92,971㎡ 형태: 말굽형

 

들레오름

별칭: 월래악(月來岳). 월하악(月下岳). 월평봉(月坪峰)

위치: 제주시 월평동 655-2번지

표고: 347.9m 비고: 40m 둘레: 1,281m 면적: 92,971㎡ 형태: 말굽형 난이도: ☆☆

 

 

 

넓은 들판에 반달 모습을 하고 솟은 봉우리이나 주변은 변화가 심하게 이루져...

 

 

모양새가 반달을 닮았다고 해서 들레라고 하였다는데 직접적으로 관련하여 이해를 하기에는 더러 어려움도 따른다. 이 오름이 있는 곳은 월평동인데 마을의 옛 이름은 다라곶(다라콧, 쿳)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옛 명칭과 연관을 할 때 ‘다라’는 ‘달’(높은 봉우리를 나타내는 고구려 어)의 변음으로 추측을 할 수도 있는데 이는 높다, 고귀하다 등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다른 추측으로는 ‘드르’의 변이일 것이라는 내용도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들판이나 넓은 터를 나타내는 제주 방언이다. 이와 더불어 ‘곶’은 깊은 숲을 이룬 곳이나 산속 정도를 일컫는 만큼 숲이 우거진 들판에 있는 봉우리나 그곳으로 가는 길목의 산(오름) 정도로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정확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한자 표기를 참고하는 것이 다소 이해는 되는데 월평(月坪)이나 월래(月來)의 뜻을 보면 달(月)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달 모양인지 아니면 뜨는 모습에 연유한 것인지 이 역시 알 수는 없다.

또한 과거에 평평하게 이어지는 드넓은 들판이나 숲이 울창한 모습과도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또한 마을 지명이 먼저인지 아니면 오름의 명칭과 관련하여 월평이라 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서로의 연관성은 있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다만, 들레와 월평을 놓고 볼 때 서로는 다른 뜻을 나타내는 만큼 아리송한 점도 있다.

보통의 오름들을 바라볼 때 반달형으로 나타나는 것은 흔한 데도 유독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을 보면 이 오름 주변에 변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외형상으로 나타나는 달의 모습이나 달이 뜨는 것이 잘 보였을 거라는 추측도 할 수가 있다.

오름의 남서쪽 등성은 대체로 완만한 편이나 북서쪽은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기슭 아래쪽으로는 내창(작은 천)이 있다. 북쪽은 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으나 남쪽으로는 경사를 이룬 구릉지대이며 남서향의 굼부리를 지니고 있는데 이곳으로 이어지는 기슭이나 등성의 곳곳에는 묘들이 있어 얼핏 봐도 풍수지리나 산세의 정황을 고려하여 명당으로 여겼던 것으로 짐작을 할 수가 있다.

전사면을 따라 소나무를 비롯하여 잡목들이 자라고 있으며 변화가 이뤄진 지금은 정상부를 포함하는 일대가 방목지로 사용이 되고 있다. 또한 기슭 아래쪽에는 축사가 있으며 일부는 농경지로 개간이 된 상태이다. 불과 40m의 비고(高)이지만 월평 마을 쪽에서 바라볼 때는 화산체로서의 입지가 잘 나타나며 북서쪽을 바라볼 수 있는 방향에서는 깊은 숲을 이룬 모습이 잘 나타난다.

 

 

-들레오름 탐방기-

 

오름 자체만으로는 오르내리는 과정이 쉬운 편이지만 이동성과 접근성을 생각해서 권제오름과 연계를 했다. 공교롭게도 권제오름은 제주대학교에 있고 들레오름은 영주고등학교 아래에 있는데 오래전에는 이 일대의 자연 미가 있으면서 사람들의 왕래도 적었을 것이다. 제주대학교와 영주고등학교의 거리가 짧은 편은 아니지만 내친김에 이 일대의 옛 모습을 그려볼 겸 권제오름을 만난 후 도보로 들레오름까지 이어갔다.

영주고 입구에 도착을 하니 맞은편(北)으로 소로가 나 있었는데 들레오름 가는 길이다. 오름의 일부는 사유지이고 기슭 아래에는 주택들이 들어서 있으며 등성과 한쪽은 축사가 있는데 목장을 겸하고 있었다. 영주고로 가는 동안 이 방향에서 바라보면 어엿한 오름의 형세를 식별할 수 있었으나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다소 허탈해졌다.

소로로 진입을 한 후 오름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목장 길이나 주택 옆으로 갈 수 있지만 행여 쥔님이 길손을 못 알아볼 경우 낭패다. 결국 마지막 집을 초입으로 결정을 하고서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이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일단 열려 있었고 사단법인 ...... 뭐 미술이나 화가님 등과 관련이 된 건물로 보였다. 몇 채의 집이 있고 그 뒤로 산책로가 보였는데 길의 흔적이 뚜렷한 데다 잘 정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초입에만 일부 걷기 좋게 산책로를 만들어졌고 이후는 자연의 길 그대로였다.

길이 없어지고 해송과 수풀이 우거진 능선으로 바뀌면서 길을 대신하여 묘들이 있고 잡풀이 자란 자리를 따라 오르는데 여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어쨌거나 높지는 않은 산 체인만큼 오름의 어깨를 짚기 위해서는 더 능선을 올라야 하는데 철조망까지 이어져 있었고 방목과 관련이 있는 시설물임을 알 수가 있었다.

 

적당한 틈을 이용하여 진입을 했는데 등성을 따라 차량이 다닌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재선충병 작업 때문에 부득이 드나들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는데 자주 드나들어서 그런지 흔적이 너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정상부에는 해송을 비롯한 잡목들이 있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오름의 특징을 살피기에도 부족함이 따르며 큰 나무들이 가리고 있어 전망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해송을 주인공으로 하여 잡목들도 더러 보이지만 울창한 숲은 아니었기에 어쩌다 열린 공간이 있어 해안 쪽으로 눈을 돌리니 그나마 나무 틈 사이로 일부가 전망이 되었다. 곳곳에는 마군(馬)들이 볼 일을 본 흔적들이 남아 있었는데 이곳까지 드나들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들레오름의 등성과 사면을 포함하여 기슭까지 마소를 방목하는 장소임에 틀림이 없었는데 남쪽 기슭으로 이동을 하니 축사가 나왔고 여러 마리의 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가는 곳 역시 어느 지점이든 선택을 하면 되었지만 애써 마군들을 만날 겸해서 축사 방향을 따라 내려갔다.

빽빽한 숲은 아니지만 잘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이 주축이 되어 오름의 환경을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었으나 앞으로도 더한 변화가 이뤄진다면 다소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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