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물장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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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물장오리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9.2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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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937.2m 비고:120m 둘레:3,094m 면적:628,987㎡ 형태:원형(화구호)

 

물장오리

별칭: 물장올. 수장올(水長兀)

위치: 제주시 봉개동 산 78-2번지

표고: 937.2m 비고:120m 둘레:3,094m 면적:628,987㎡ 형태:원형(화구호) 난이도:☆☆☆

 

 

신이 만들고 세월이 다듬어 놓은 숨은 보금자리로 과연 3대 성산(聖山)이라 할만하다.

 

원형의 분화구를 갖추었으면서 습지로 이뤄진 화구가 특징인 신비스럽고 영험한 화산체이다. 문헌이나 기록에서 전해지는 내용 중에는 예부터 화구에 물이 많은 산정호수 주변을 두고서 신성한 곳이라 하고 있는데 물장오리도 포함이 된다.

한라산(백록담)과 영실기암(500장군 바위/오백나한)을 포함하여 물장오리는 3대 성산(聖山)으로 알려져 있다. 성스러운 산이라서 심신을 깨끗하게 해서 만나야 하며 부정한 사람이 오르면 산정호수 주변 상황이 변한다고 구전되고 있다. 더불어 호수 주변에서 떠들거나 손상을 시키는 등의 행위를 하면 물장오리가 노여워하며 화를 입힌다는 내용도 포함이 되어 있다.

물장오리의 백미인 산정호수는 물이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때문에 창(밑) 터진 물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연중 물이 마르지 않는 때문에 산정호수 자체를 신성시했다는데 대해서도 충분하게 이해가 된다. 제주에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문헌 기록을 보더라도 예부터 산정호수의 물을 두고서 중요시 했던 모양이다.

또한, 설화를 통하여 제주도 섬을 창조한 상징적인 여인이며 전설 속의 인물인 설문대할망도 이곳에 빠져서 죽었다고 한다. 설문대 할망 역시 물장오리의 깊이를 알지 못하고 들어갔다가 영영 나오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장오리의 정확한 뜻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추측과 구전되는 내용을 정리하면 어렵게 느껴지지 지는 않는다.

이 일대에는 물장오리 외에도 테역장오리와 쌀손장오리, 불칸디오리(오름) 등 4인방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 이들을 합쳐 장오리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따라서 물장오리의 쉬운 풀이를 한다면 물이 있어서 덧붙여진 것이 오름의 유래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행여 이 명칭을 두고서 물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의 궁금함도 포함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정리를 한다면 물이 있는(水) + 길고(長) + 높은(우뚝 솟은. 兀) 오름이라 한 것에 기초하여 한자로 표기한 것은 맞다. 산정호수의 정확한 깊이를 알 수 없지만 대략 2m 정도로 추측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구전되는 여러 내용을 참고한다면 옛날보다는 수량이 적은 것으로 짐작이 된다.

 

생태의 변화와 중산간 지역의 개발을 타고서 지하층이나 산수로(水路)가 줄어들면서 변화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인근 골프장에서는 이곳에 파이프를 연결해서 물을 빼 썼다는 불편한 진실도 사실로 확인이 되었으며 실제 지금도 녹슨 파이프와 흔적들이 있어서 변명할 여지가 없다. 당시에는 물장오리 근처에 골프장은 한 곳뿐이었으니까 구태여 어디라고 밝히지 않아도 잘 알 수가 있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했으며 산정호수를 만나기 위하여 진행을 하는 산세나 현장의 자연스러움이 깊고 그윽하게 펼쳐지므로 탐방의 맛이 나는 오름이다. 근년에 통제가 이뤄지면서 장오리 일대의 생태 변화가 더 자연스러워진 것도 이에 한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 아쉬움도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물장오리에게 주어진 명예와 칭호는 영광스러울 정도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을 시작으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지난 2008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이 되었다. 그러기에 제주의 다른 람사르습지(물영아리, 1100고지 습지 등)와 비교를 한다는 자체가 물장오리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그만큼 영험하고 신성한 곳이라는데 있어서 누구 하나 반문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물장오리 탐방기-

현장의 환경과 식생에 관련한 생태 등을 조사하기 위하여 관계처의 허락을 사전에 받았고, 입구에서 확인을 거쳐야 하기에 조랑말 방목지에서 일행들과 미팅을 했다. 여름이 열리고도 연일 하늘색은 제 빛을 보여주지 않고 가시거리 역시 인색하기만 한 이즈음인데 모처럼 한라산이 뚜렷하게 보였다.

물장오리가 우리를 받아주는데 있어서 기(氣)를 보내고 환영이라도 하는 것일까. 견월악 맞은 편이나 물장올교에서 진입이 가능한데 후자를 택했다. 행여 기회가 되면 태역장오리나 쌀손장오리를 전진 코스로 연계하려는 의도도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제주의 오름 탐방로에 비하여 입구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초소처럼 관리를 위한 건물이 있고 무단출입시 과태료 부과 등에 관한 안내문이 있었다. 출발에 앞서 주변을 살피니 태역장오리와 성진이(오름) 방향이 보였는데 이 일대에는 테역장오리 외에 쌀손장오리와 불칸디오리(오름) 등이 있으며 물장오리와 더불어 장오리라고 칭하기도 한다.

장오리 주변은 제주 4.3 당시 유격대 훈련장이 있었던 곳으로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곳곳에서 그 흔적들을 만날 수가 있다. 안내판 뒤쪽을 통하여 작은 계곡을 지나니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그 사이로 길 흔적이 있다. 허락을 통한 탐방이 이뤄지는 경우나 관리와 보존 차원의 방문 등으로 드나들며 만들어진 길인 셈이다.

사실 그보다는 통제 이전에 오르미들이 다닌 흔적이기도 하다. 뚜렷하게 길의 구성이 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끈이 묶여있고 다닌 흔적들이 있어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 바닥 층은 그 흔한 타이어매트조차 깔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고 아침 햇살을 받아서 짙게 풍겨오는 숲 향을 맡으며 지나는 과정 자체가 아름다움이었다.

급하지 않은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주변으로 눈싸움 대상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오름의 허리를 둘러 지나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았는데 깔딱 고개로 길게 이어지는 현장은 거친 숨을 몰아쉬게 하며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게 했다. 경쟁 없이 느리게 진행을 한다지만 물장오리는 자신을 만나는 과정에 어느 정도 체력의 요소를 포함하라고 명령을 했다.

행여 정갈하고 차분한 몸가짐 외에는 모두 다 떨쳐버리고 오라는 계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르기를 진행한 끝에 마침내 호수 주변에 도착을 했다. 보통의 오름들처럼 일단 등성에 오른 후 다시 아래로 내려가서 만나는 화구가 아니고 갑자기 나타난 때문에 순간적으로 놀랐다. 

깔딱 고개 능선을 오르는 일이 마무리될 즈음에 갑자기 나타난 산정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는데 허리를 지나는 과정을 거쳐 어깨에 도착하는 동안 길게 경사면을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둘씩 도착하는 여섯 일행 모두가 차례대로 탄성과 감동으로 소리를 쳤다.

엄숙과 경건 속의 마주함을 요구하는 물장오리인지라 작은 탄성으로 일관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거친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신성한 오름! 영험한 분화구! 신비스러운 산정호수! 마침내 물장오리의 백미를 만난 것이다. 지난번 물찻오름 호수의 물을 보면서 실망을 했던 것처럼 흙탕물로 변하지나 않았을까. 비의 양이 많지 않아서 바닥 층을 내보이지는 않을까. 주변의 환경과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생태가 어지럽게 보이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 모든 가난한 염려를 후련하게 떨치게 해준 현장이었다. 성숙한 계절을 맞은 호수와 주변은 맑은 물과 푸름으로 맞아줬고 신비의 호수와 주변은 그림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졌지만 호수는 역시 말이 없었다.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호수 안에는 어떤 동식물이 사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영적인 기운마저 맴도는 가운데 이곳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속의 설문대 할망이 불쑥 솟아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장오리의 호수는 아무리 심한 가뭄이 겹쳐도 물이 말랐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집중호우나 태풍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도 범람하거나 호수 밖으로 역류되는 일이 없었다.

실로 신령스럽고 영험한 호수이다. 분화구를 잠시 벗어나고 오름 등성을 따라 이동을 한 후 정상부에 도착을 했는데 비고점이나 삼각점의 표시는 없지만 주봉으로 보이는 지점에 전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공간 한 쪽으로 좁은 바위가 있어서 그곳에 차례로 올라 주변을 전망했다. 실상 그 돌에 오르는 것이 동북부권을 전망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이기도 하며 다른 방향으로는 깊은 숲으로 이뤄진 때문에 전망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입지였다.

오름의 정상부 둘레를 돌아보다가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쓰러진 고목 옆으로 그럴싸한 공간이 있어 자리를 잡았다. 일행들 배낭 안에서 이것저것 꺼내니 '혼상가득' 차림이 되었다. 신령스러운 곳이라 차분하고 엄숙한 가운데 간식을 먹으려 했지만 이미 신비와 위대함을 느끼고 작은 흥분을 한 상태였다. 정상부 둘레를 지나는 동안에도 몇 곳에서 산정호수 쪽이 열렸는데 울창한 숲에 가리지만 틈새로 보는 호수도 운치가 있었다.

오름 둘레를 돌아보는 과정에서도 곳곳에서 만나는 볼거리들이 많아서 빠른 진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산수국이 군락을 이룬 곳도 검문소이고 바위를 본거지로 아파트를 건설한 이끼류와 야생 버섯도 불심검문 통제소가 되었기에 일단정지의 요구를 다 받아들여야만 했다. 오름 둘레를 한 바퀴 돌다가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큰 까닭에 다른 쪽에서 다시 화구 가까이로 가봤다.

영험하고 신성시되는 곳... 마치 기(氣)가 흐르는 듯 묘한 느낌이 들고 고요함만 맴돌았다. 행여 설문대할망의 영혼이 주변 곳곳을 돌며 모든 것을 잠재우고 있는 것일까. 조용함이 넘쳐나고 평화로움마저 느껴지는 화구호 주변이었다. 파란 하늘과 푸른 숲이 호수를 에워싸며 분위기를 더한층 고조 시켰는데 물장오리 앞에서는 숲도 하늘도 제 빛을 내보이며 산정호수를 빛나게 했다.

물장오리 호수를 두고서는 이른바 하늘 호수이며 하늘 연못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정밀 조사를 통하여 호수 주변이나 내부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파악한다면 그 개체 수는 대단할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골풀이나 송이고랭이 등을 시작으로 습지 식물들의 종류도 다양하게 자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행여 개구리라도 튀어나올 것 같고 특히 뱀 종류를 만나게 될 것은 당연하게 예상했지만 다행인지 아쉬움인지 만나지를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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