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벗의 전사 애도해 세운 기념비..귀덕1리 베트남전쟁전사자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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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벗의 전사 애도해 세운 기념비..귀덕1리 베트남전쟁전사자추모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11.05 0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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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한국군의 월남파병은 1964년 9월 제1이동외과병원 병력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 파견으로 시작

귀덕1리 베트남전쟁전사자추모비
 

海兵上兵故梁公榮弘追慕碑
위치 ; 한림읍 귀덕1리 '귀덕남5길' 도로변 1983-1번지.
유형 ; 비석(추모비)
시대 ; 대한민국

귀덕1리_양영홍추모비 뒤
귀덕1리_양영홍추모비 전경

 


월남전에 참전했던 벗의 전사를 애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최초의 한국군의 월남파병은 1964년 9월 제1이동외과병원 병력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의 파견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브라운 주미대사와 베트남 정부의 지원 요청을 받고, 1965년 1월 26일 국회의 동의를 얻어 1965년 2월 비둘기부대로 명명된 2,000여 명의 후방 군사원조지원단의 파병으로 본격화되었다.


전투부대의 파병은 1965년 7월 2일 결정되어 10월 9일 해병 청룡부대가, 10월 22일 육군 맹호부대가 베트남에 상륙하여 미국으로부터 전술책임지역을 인수받았다.

이외에도 군수지원부대인 십자성부대, 군수물자수송을 담당한 백구부대 등이 파병되었다. 1966년 미국의 전투부대 추가파병 요청에 의해 국회의 논의를 거쳐 4월 16일 혜산진부대가, 8월 15일 백마부대가 베트남에 상륙했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하여 월남파병 국군은 4만8,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1968년 5월부터 미국과 월맹 사이에 휴전협정이 시작되었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의 베트남화 계획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의 군대 철수가 1971년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1971년 11월 6일 한국과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주재 한국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데 합의하고, 12월 청룡부대 1만 명의 철수를 필두로 1973년 3월까지 철수를 끝마쳤다. 한국군 파병은 8여 년 동안 총 34만 여 명이 참전해 많은 전과를 올렸다.(브리태니커백과사전)

자연석의 가운데를 다듬어 윗부분에 태극기를 새기고 〔海兵上兵 故梁公榮弘追慕碑〕라 하였고, 뒷면에는 〔여기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온 세계의 자유를 위하여 이역만리 월남 땅 PS 589833 작전중 용전분투하다가 아직 다 피지도 못한 젊은 나이로 서기 1967년 2월 9일 산화한 양재순의 4남 영홍 상병의 영원불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남아 있는 벗들이 여기 이 비를 세우도다.

서기1980년 4월 27일 벗. 김홍철 홍경기 홍기흥 홍두영 홍인철 홍창기 홍창립〕이라 새겨져 있다. 해병상병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청룡부대에 속했던 분으로 보인다.
《작성 1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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