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생태숲』 거무스름한 안개 속에서
이른 아침 숲은 거무스름한 안개로 휩싸여 있었습니다.
안개비도 부슬부슬 내렸지요.
수생식물원에 도착했을 때 길을 더 걸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우연찮게 답답한 풍경 속에서 밝은 빛을 내는 덩굴식물을 보았습니다.
연못 가장자리에서 물가를 향해 낭창 늘어진 줄기에 어여쁜 열매들이 매달려있더군요.
노박덩굴입니다.
노박덩굴은 반 그늘지니 나무 밑에서 생육하는 낙엽활엽덩굴식물입니다.
꽃은 5-6월애 황록색으로 피고 열매는 10월경 익기 시작하지요.
노랗게 익은 열매껍질이 입을 벌리니 붉은 옷을 입은 종자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방긋 웃습니다.
안개 속에서도 유난히 밝게 물기를 머금어 한껏 강렬한 빛깔로 누군가를 유혹합니다.
연못 너머 숲가장자리에서도 관목과 교목을 타고 오르다가 서로 얽히며 자라는 노박덩굴이 조롱조롱 열매를 매달고 있는 모습이 곱습니다.
이 정도이면 새들이 득달같이 모여들 텐데 안개 속 어디선가 나지막한 소리만 흘러올 뿐이었지요.
‘또르륵 또륵’
갑자기 또렷이 들려오는 새소리에 끌려 살금살금 안개를 헤치다보니 보리수나무에 앉아 쉬는 방울새들이 보입니다.
이 새들은 가까운 곳에 노박덩굴 열매가 껍질을 벗고 종자를 드러낸 것을 알고나 있었을까요?
그 곁에서 고개 숙인 갈대들이 조용히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