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32년 1월 12일. 제주도 구좌면 세화리에서 잠녀('해녀'는 일본식 표현)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신임 순시차 세화리를 통과하는 제주도사(島司) 겸 제주도해녀어업조합장인 다구치 일행을 향해 제주 동부지역인 구좌면 하도리, 종달리, 세화리, 연평리, 정의면 시흥리, 오조리 잠녀 1천여명이 호미와 빗창(전복을 따는 도구)을 들고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제주포럼C(공동대표 고희범)은 지난 빗창의 항쟁, 잠녀의 숨비소리 탐방을 실시했다.
고희범 대표는 “잠녀들은 세화리 연두막 동산에 집결한 뒤 세화 오일장으로 행진을 벌인 뒤 집회를 열고 각 리의 잠녀 대표들의 연설에 이어 도사에게 요구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도사는 잠녀들의 시위에 굴복해 5일 이내에 요구조건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일제 경찰은 목포에 있는 응원 경찰까지 파견하면서 구좌 정의 일대에서 관련자들의 검거에 나섰다고 말했다.
특히, 잠녀들은 검거에 나선 경찰에 맞서 호송차를 습격하기도 했고, 우도에서는 청년들을 검거하려는 경찰의 배를 둘러싸고 저지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는 것.
1931년 6월 하도리 잠녀들은 자신들이 착취하는 해녀조합을 상대로 투쟁을 결의한 이래 이듬해 3월까지 계속된 항일투쟁에는 연인원 1만7천여명이 참여했고,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가 238회에 이르는 등 대규모의 항일운동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 투쟁 이후 잠녀들의 요구사항은 대부분 받아들여졌고, 해녀조합 외에 각종 관제 조합이 폐지되거나 횡포가 줄어들었다는 것.
고 대표는 “이 사건은 잠녀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항일민족해방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이는 이 운동을 주도했던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등 잠녀 지도부가 하도강습소(하도보통학교 야간부) 제1회 졸업생으로 문무현 김태륜 부대현 등 청년 지식인 교사들로부터 민족교육을 받았던 데서도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들은 <농민독본> <노동독본> 등의 계몽서를 배우고 한글과 한문뿐만 아니라 저울 눈금 읽는 법까지 교육받았다.
이 투쟁으로 1백여명의 잠녀와 청년들이 붙잡혔으며, 잠녀투쟁의 주역 3인방은 6개월간 구금됐다 풀려났으나 청년 30여명은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조직의 혐의로 투옥됐다.
또, 1930년대 중반 이후 가혹한 일제의 탄압으로 전국의 항일운동 세력이 국외로 망명하거나 지하로 잠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제주에서는 항일운동을 하던 청년들이 잠녀투쟁을 계기로 대거 검거돼 항일운동의 맥이 끊기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잠녀들이 빗창을 들고 일어선 항일투쟁은 그 이전 제주의 잠녀들이 겪은 수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조선시대 잠녀들은 미역을 따 정기적으로 진상하거나 관아에 바쳐야 했다.
원래 전복 채취는 남자인 '포작'(鮑作, 보재기)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진상해야 하는 전복의 양이 너무 많아 이를 견디지 못하고 섬을 떠나 도망가기에 이르렀다.
관아에서는 섬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출륙금지령을 다 내렸다는 것.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포작의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자 전복 진상의 의무는 잠녀들에게 넘어왔으며, 남자들이 맡고 있던 군역(軍役)까지 여자들에게 안겨졌다.
제주에 어사로 왔던 김상헌은 "만약 사변을 만나 성을 지키게 되면 민가의 튼튼한 여자를 골라 살받이터 어구에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주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착취는 도를 넘어섰다.
고 대표는 이날 항일현장으로 안내한 박찬식 박사는 "제주 여성의 기질이 원래 강인한 게 아니라 수난의 역사 속에서 길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갑오개혁을 거치면서 잠녀들은 비로소 진상이나 공물의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1876년 개항 이후 일본 어민들이 제주 바다로 진출하게 됨에 따라 제주어장이 황폐해져갔다. 잠녀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게 되자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출가'가 시작됐다. 1887년 부산의 영도로 간 것이 출가의 시초였다고 밝혔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 남부지역 뿐 아니라 북부지역과 일본, 중국의 따롄, 칭다오, 블라디보스톡까지 진출하게 된다. 출가 잠녀 수가 1910년대 2500여명이던 것이 1930년대에는 4천여명에 이르렀다.
잠녀들은 4월이 오면 출가해 9월까지 일을 하고 추석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와 겨울을 난 뒤 이듬해 봄 다시 나가는 것이다.
출가 잠녀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이들은 그 지방 어민들과 분쟁으로 시달렸으며, 잠녀들은 채취물을 객주에게 팔았지만 채취량과 가격을 속이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몇년뒤 일본인 제주도사(島司)가 조합장을 겸임하면서 몇몇 상인과 결탁해 잠녀들의 자유 판매를 금지하고 지정가격을 매기는 방법으로 잠녀들을 수탈했다.
잠녀들의 고조되는 불만은 해녀조합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고 결국 1932년 잠녀투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제주의 상징, 잠녀
잠녀, 또는 해녀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와 일본 밖에는 없는 직업이다. 우리나라의 잠녀들은 모두 제주에서 출가한 뒤 그 지역에 정착하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됐다.
제주도에서는 예로부터 동부지역에 잠녀가 많았다. 제주의 동부는 땅이 척박해 농사를 짓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으나 해조류는 질도 좋고 풍성했다. 해조류를 먹고 사는 전복과 소라도 풍성했으니 이 지역이 잠녀들의 고향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감태는 일제 강점기 화장품과 화약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양갱을 만드는 데도 필요해 비싼 값에 팔리던 해조류였다.
우도에서는 바람이 불고난 다음날이면 감태가 바닷가에 널려있을 정도로 풍성했고, 우뭇가사리도 질이 좋았다고 한다. 지금도 구좌 성산지역에는 잠녀들이 많다.
고 대표는 “우리는 겨울철새가 찾아드는 구좌읍 하도리 철새도래지로 향했다. 하도리는 동쪽으로 농경지와 지미봉이 있고, 북쪽에는 둑 너머 바다가, 남쪽에는 갈대밭이 펼쳐져 있어 철새들이 서식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곳은 겨울이 되면 30여종, 3천~5천 마리의 철새가 찾아들며, 희귀종인 저어새, 천연기념무인 노랑부리저어새와 고니를 비롯해 황조롱이, 참매, 물수리 등의 맹금류와 홍머리오리, 흰뺨검둥오리, 댕기흰죽지 등 오리류, 물떼새류와 도요새류, 논병아리류 등의 철새들이 모여드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고 대표는 기대와는 달리 습지를 가득 채우고 새까맣게 군무를 추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실망해 했다.
고 대표는 인근 지미봉으로 발길을 돌렸으며, 160m의 그리 높지 않은 오름이었지만 동부지역의 상당부분을 조망할 수 있었다면서 구좌와 성산 일대의 농경지, 우도와 성산 일출봉을 포함한 동쪽 해안, 남서쪽으로 한라산까지 눈앞에 펼쳐 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미봉에서는 매년 1월 1일 새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일출봉 다음으로 가장 동쪽에 있는 오름이기 때문이다.
지미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우도(맨 위), 성산 일출봉(가운데), 구좌읍 일대(아래 사진).
고희범 대표는 우리는 미리 준비한 샴페인으로 새해 첫 탐방을 축하하면서 "새해에는 제주가 평화와 풍요를 누릴 수 있기를! 새해에는 제주의 어떤 작은 마을이나 소수그룹도 무시당하거나 소외되는 일이 없기를!" 기원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