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시인과 묵객들의 휴식 조망 터..건입동 달관대(達觀臺)터(멸실)
상태바
[향토문화] 시인과 묵객들의 휴식 조망 터..건입동 달관대(達觀臺)터(멸실)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10.18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치를 감상하며 사물의 이치를 통달한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 추정

건입동 달관대(達觀臺)터(멸실)

 

지역 ; 건입동 1146번지
시대 ; 조선/조선후기
유형 ; 활터

건입동_달관대터

 


조선 시대 활터이다. 중앙감리교회 남서쪽 길 건너편에 표석이 있다. 달관대는 조선 후기에 제주목사 김정(1670~1737)이 돌에 달관대(達觀臺)라 새기고 그 위에 과녁을 설치해서 활을 쏘는 장소로 삼았던 곳이다.

기상청 서쪽 언덕을 해산대, 남쪽 언덕을 달관대라고 했다. 해산대는 넓은 공간이 있었지만 달관대는 가파른 바위 위에 좁은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신광수(申光洙)가 지은 『탐라록(耽羅錄)』에 '재삼천서당방(在三泉書堂傍)'이라고 쓰여 있듯, 근처에 역시 김정 목사가 설립한 삼천서당이 자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도로가 새로 나면서 지금은 그 위치만을 확인할 수 있다. 인근에 있던 관덕정과 삼천서당, 색취당 등과 더불어 옛 관리의 일상을 추적할 수 있는 좋은 유적지이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 김동전)

제주동북성 높은 언덕에 위치한 이곳에는 오랜 고목과 함께 용린병, 중장병, 호반병 등 기암이 병풍처럼 둘려 있어 절경이 아름다워 시인과 묵객들의 휴식 조망 터가 되었다.

이 이름들은 김정 목사가 지어 붙인 것이다. 달관대 바로 밑에는 감액천과 급고천이 있었고 해산대 밑에는 산지천이 솟았다.

동문시장 동쪽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언덕은 광복 직후까지만 해도 온갖 고목과 계곡 주변이 울창하여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였으나 지금은 동문로가 뚫리면서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풍수지리를 하는 분 중에는 산지천 동쪽 언덕은 한라산의 지맥이 뻗어가는 곳이라며 동문로 개설로 맥이 단절되었다고 아쉬워한다.(네이버 블로그 길)


참고로 안동의 하회마을 부용정 부근 절벽에도 달관대(達觀臺)라 새겨진 글씨가 있었는데 2008년 그 부분이 무너졌다고 한다.

제주의 달관대와는 달리 이곳은 경치를 감상하며 사물의 이치를 통달한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제주의 달관대에서도 기암절벽과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활을 쏘다 보면 달관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작성 12091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