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315년 전 탐라순력도의 정교함에 감탄..가시리 산장구마의 현장(두원장, 사장, 미원장) 
상태바
[향토문화] 315년 전 탐라순력도의 정교함에 감탄..가시리 산장구마의 현장(두원장, 사장, 미원장)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9.18 0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 그림의 모양이 현재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가시리 산장구마의 현장(두원장, 사장, 미원장) 

 

위치 ; 표선면 가시리 산76번지의 맨 북쪽
시대 ; 조선
유형 ; 산업시설(목장)

가시리_미원장사장두원장_비교
가시리_두원장

 

이곳에는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 〈산장구마(山場駈馬)〉에 나오는 미원장(尾圓場), 사장(蛇場), 두원장(頭圓場)이 남아 있다.

미원장으로 말을 몰아들인(駈馬) 다음 사장(蛇場)을 통과하도록 하여 한 마리씩 말의 상태를 점검하여 두원장에서 선별하는 등 목장에 방목하던 말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원래 제주도에는 3개의 구마(驅馬) 장소가 있었는데 효생장, 괴종장(용강동 지역), 장수물장(물영아리 남동쪽 지역)이다. 이곳은 효생장에 속하며 북동쪽으로는 중잣이 이어진다.

이곳은 교래리와 가시리의 경계 지역이며 원장이 있는 곳은 모두 표선면 가시리 산76번지의 맨 북쪽에 속한다. 바로 북쪽은 교래리 산12-3번지이다.

위 그림에서 빨간 선은 현재 교래리와 가시리 경계이며 조선시대에는 제주목과 정의현의 경계였다. 오늘날 지도에서는 반원형 선(좁은 농로)이 보이는데 반원을 원형(노란색)으로 보충하면 그곳이 미원장이고 오른쪽 작은 반원을 온전하게 이으면 그곳이 두원장이다. 1967년 항공사진에서는 온전한 원 모양으로 남아 있다.

탐라순력도(탐라순력도는 위가 남쪽으로 그려져 있는데 비교를 위해서 위아래를 바꾸었다)의 그림과 비교해 보면 항공사진에 나타난 선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그림의 모양이 현재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702년(탐라순력도), 1967년(항공사진), 2017년(다음지도 스카이뷰)을 위와 같이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이걸 보면 315년 전 탐라순력도의 정교함에 감탄을, 또한 무지와 무관심이 유적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한 한탄을 금할 수 없다.

미원장은 담이 많이 낮아지고 무너진 곳이 많은데다 가시덤불과 잡목으로 뒤덮여 있어서 사진을 찍을 형편이 안 되었지만 사장과 두원장은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그 모습을 훤히 드러내 주었다.

남아 있는 잣담 중 사장의 규모는 높이 170㎝, 폭 140㎝ 정도였으며, 길이는 50m에 이른다. 두원장은 높이와 폭이 다소 작게 보이고 길이는 80m 정도이다. 현장 사진은 두원장의 남동쪽 부분이다.

문화재 지정을 신청한 상태인데 필자는 문화재로 지정되면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손대지 말고 완전히 없어져 버린 부분만 재현하여 비교할 수 있도록 하길 바란다.

복원한다고 다른 곳의 돌들을 운반해다가 함부로 쌓으면 그나마 남아 있던 것조차 사라지면서 엉뚱한 모양으로 바뀌어 본질은 없어져 버리고 전시용(展示用) 유적으로만 남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목장 잣담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한상봉씨가 찾아낸 것이며, 제주환경일보(170614)에 특종으로 보도되었다.
《작성 17061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