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방주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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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방주오름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12.0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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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163.3m 비고:8m 둘레:365m 면적:9,975㎡ 형태:원추형

 

방주오름

별칭: 방제오름. 방지오름. 방저악(放猪岳). 방제악(芳齊岳)

위치: 한림읍 명월리 679번지

표고: 163.3m 비고:8m 둘레:365m 면적:9,975㎡ 형태:원추형 난이도:☆☆

 

 

자신의 전부를 농경지로 내어주고 터와 흔적만 남은 슬프고 착한 화산체...

 

워낙 비고(高)가 낮은 때문에 오름으로 인식하기조차 어려운 데다 동산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기슭을 비롯하여 정상부 역시 경작지로 개간이 된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낮고 펑퍼짐하게 이어지는 능선은 땅 한 평이라도 더 차지하여 농사를 짓겠다는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에 기꺼이 참여하는 선행을 한 겪이다.

훼손이라고 하기보다는 개간을 통한 생활의 수단에 변화가 이뤄져 사라진 오름이 맞는 표현일 것 같다. 현지 상황의 낮은 경사와 높이를 감안할 때 일찍이 조상들은 농작지로 선택하기에 적합하게 여겼을 것이다.  많은 노력과 세월이 반영을 하겠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화산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심한 폭발이나 침식 등 복잡한 경로를 거치지 않은 모양이다.

정상부 일부의 소나무와 더불어 층을 이룬 농경지의 모습을 보면 예전에 오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너무 많은 변화를 거친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낮게 이어진 동산 정도로 여길 수밖에 없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 중에서 비고(高)가 가장 낮은 오름은 가메창이며 불과 6m로 기록이 되어 있고 두 번 째가 바로 방주오름이다.

방주가 있는 위치를 보면 웃드리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해안가라고 하기에도 모호하다. 해안과 웃드리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이 일대는 방주오름왓이라고 부를 정도로 옛 방주의 존재를 간직하고 있다. 왓은 제주 방언으로 일정한 터나 지역 등을 일컫는 말로서 농지나 농장으로 변한 방주의 주변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해도 방주오름은 소재지인 명월리 마을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세월과 변화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직도 그 터는 남아서 자신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고나 할까. 제주의 농지는 보통 질왓과 작지왓으로 구분을 한다.

질왓은 흙이 대부분인 토양이며 작지왓은 작은 돌멩이들이 섞인 밭을 말한다.얼른 생각하기에는 질왓이 좋은 것 같지만 화산섬인 제주에서 작지왓은 여러모로 그 가치가 나타난다. 배수가 용이할 뿐 아니라 곡식의 씨앗을 덮어주는 역할을 하는 작지(작은 돌)들은 때로 도움이 되는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방주의 허리와 어깨 층은 대부분 작지왓이다.

 

 

처음부터 지금처럼 비옥한 토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밭을 일구면서 점차 단장을 했을 것이고 농사를 짓는 동안 큰 돌들은 한쪽으로 치우는 작업을 한 것이 지금의 모습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한자로 방저악(放猪)이나 방제악(芳齊)으로 표기를 하지만 두 명칭의 뜻은 판이하게 다르다. 돼지(멧돼지)를 방목했던 장소나 방목하기 좋은 터를 지칭하는 내용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다른 표현과는 엇갈린다.

등성이 사라지고 농경지로 변한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바가 없지만 멧돼지들이 출몰했다는 정확한 기록 역시 찾아볼 수가 없다. 개간을 통한 변화가 이뤄지면서 방제오름의 명칭에 대한 유래와 관련한 내용도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고나 할까. 특히나 꽃으로 표기를 한(방제) 내용은 어떤 연유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야생화를 포함하는 꽃이 널려있는 정도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명월리(明月)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장소로 여겨서 그런 표현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정상부 주변 한쪽에는 소나무들이 있고 일부 베어낸 흔적을 비롯하여 팽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기슭의 경사가 낮은 점과 이러한 상황을 참고한다면 예전에 마소들의 방목장으로 사용이 되었을 법하다. 

 

-방주오름 탐방기-

명월리는 제주의 정취가 묻어나는 소박하고 정겨운 마을이다. 마을 안 길을 따라 방주를 만나러 가는 길은 시멘트로 잘 포장이 되었으며 농로는 오름 정상부까지 이어진다. 애써 오름 탐방이라는데 목적을 두고 찾기에는 어설프지만 어차피 한 번은 만나야 하기에 이웃 밝은오름과 함께 찾았다.   고향 인근에서 벌초를 마치고 난 후 날씨는 더 화창했다.

구태여 이날 만나러 가는 데에는 날씨가 한몫을 했고 이동성에 대한 부담이 적은 때문이었다. 기슭 아래에는 농지 외에 가족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이곳 역시 벌초시기를 맞아 막 단장을 한 상태였다. 소로를 따라 좀 더 갈 수 있지만 애써 입구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이동을 했는데 어디가 오름인지 도대체가 알 수 없을 만큼 낮은 등성이었다.

주변의 전부가 작지왓이고 기슭이었던 흔적조차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오름으로서의 가치는 사라진 상태였다. 농지의 일부에는 산담이 둘러진 묘들도 보였는데 한쪽에는 일부 방문자들이 정상임을 알리는 리본들을 매달아 놓았다. 어이 꼭대기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공교롭게도 정상에 묘 한 기가 있었는데 벌초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묘 역시 밭으로 개간이 된 곳을 차지하였다.

 

밭으로 내어주고 망자의 한을 품어준 착한 방주임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산담에 올라서서 뒤꿈치를 들으니 두 산체가 보였는데 갯거리오름과 선소오름이다. 역시 명월리의 중심에 위치한 오름들로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다. 방향을 돌리니 이번에는 세 오름이 나란히 보였다.

느지리(망)오름과 밝은오름(상명), 저지리의 닥몰(저지)오름이다. 이곳에서 오름 풍경이 열리는 곳의 농지에는 마르지 않은 연 초록색의 밭작물들이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초록의 여름이지만 아직 풋풋하게 보이는 이 주인공들은 성숙을 이어가는 어린 양배추들이다. 거리상으로 가깝지는 않지만 높이가 있어서 바다 풍경도 열렸고 비양도 역시 그 사정권을 벗어나지 않았다.

역시나 낮은 화산체인 밝은오름이 비양도 섬과 일직선이 되어 수면 가까이를 가리고 있었다. 시멘트로 포장이 된 농로를 따라 돌아가는 과정은 씁쓸함도 생겼는데 오름 탐방을 했다고 하기에는 쑥스럽지만 그보다는 허탈한 생각도 들었다. 멧돼지가 출몰을 했던 곳인지 우마를 방목했던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름의 명칭과 연유하여 상황을 짐작해봤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이동을 했다. 원점으로 오면서 다시 정상 기슭을 바라봤는데 어느 오름이건 늘 습관처럼 이뤄지는 과정이다. 사라진 오름. 잃어버린 산 체. 먹고 살 수 있게 터전으로 내어준 착한 오름. 작고 낮은 산 체이지만 이웃하는 밝은오름(명월오름)과 더불어 알콩달콩 마주했을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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