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청룡맥 동산..온평리 명오부인당(본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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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청룡맥 동산..온평리 명오부인당(본향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12.05 0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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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매라는 점에서 '삼성신화에 영향 미쳤다'는 주장도


온평리 명오부인당(본향당)


위치 ; 성산읍 온평리 695번지 진동산 상부
시대 ; 조선∼현대
유형 ; 민속신앙

▲ 온평리_본향당_내부
▲ 온평리_명오부인당마불림제

 

온평리 진동산은 동산이 산맥처럼 길게 뻗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조선초 정의현청이 고성리에 있을 때 병사들이 이 동산에서 진을 쳤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주민들은 이 동산이 청룡맥이라고 하여 이 마을에는 장사가 많이 난다고 믿고 있다. 이 동산에는 주민들이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평안을 기원하러 가는 본향당이 있다. 진동산본향한집 또는 신도릿빌레범성굴왓당이라고도 한다.

당신 명오부인은 맹호부인이라고도 한다. 제주에 함께 유배온 세 처녀신 중 막내 여신이다.

조천리 본향신인 정중부인이 큰언니, 김녕리 본향신인 관세전부인(=황새부인)이 둘째라고 전해진다. 명나라 명천자 따님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구전자에 따라 서울의 정승집 딸들이라거나 금성산 명진국대감의 딸들이라고도 한다.

남제주군문화유적실태조사보고서에서는 3자매라는 점에서 삼성신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남제주군·제주문화재단문화재연구소, 남제주군문화유적실태조사보고서. 2005. 319쪽)

명오부인은 원래 신산리 '신도릿빌레 범성굴왓'에 자리잡았는데 온평리의 신앙민들이 늘어나면서 가지갈라 지금은 온평리 황루알 해안의 '진동산'에도 별도의 당이 생겼다.

신산리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과 10월 보름 연2회의 정기제일을 갖는데 온평리에서는 정월에 '파제향회신과세', 7월 7일에 '마불림', 10월 7일에 '대제일'(고을시만국)을 치르는 등 제일이 서로 다르다. 고씨가 설립한 당이라고 한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326쪽)

본향당에는 일곱 살까지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며 애기구덕 밖을 나오지 못하고 누워서만 살았다는 문씨 영감에 관한 전설이 있다.

문씨 영감은 황노알에 떨어져서 물 위에 떠다니다가 무쇠갓과 유리잔을 들고 나와 본향당신인 '맹오부인' 밑에서 마을의 생산·호적 등 제반 사항을 거느리는 종사관(매인심방)이 되었다고 한다. 문씨 영감의 묘는 바로 진동산 근처에 있다고 한다.(제주일보 1997년 4월 20일)

당집 안에는 벽장 위 집 모양을 한 공간 왼쪽에〈司戶令監文公之神位〉, 오른쪽에 〈明五夫人柳氏之神位〉라는 楷書體로 된 금색 글씨, 금색 받침대의 위패가 세워져 있다. 위패는 30cm 정도이며 검은색이다. 또한 각종 제기가 있는데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최근까지도 명오부인 위패는 벽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2008년 3월 필자 일행의 답사 때에 바르게 돌려 세웠다. 뒷면에는 '在大阪溫平里靑年會'라고 새겨져 있고 건물 상량문에 〈昭和十六年〉이라 쓰여 있는 점을 감안하면 1940년에 당집을 지을 때 일본에서 위패를 만들어 보낸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벽장 아래 방바닥에는 제상이 있고, 제상 앞에는 쌀이 모아져 있을 때가 있다.

온평리의 신과세제는 포제와 혼합해서 치르는 점이 다른 마을에 비해서 특이하다. 제일은 포제일로서 정월 첫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택한다. 제물은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본향신의 식성에 따라 쇠고기를 준비한다. 포제를 시작하기 전에 당에 들어 신고를 하고 출발하며 포제가 끝나면 다시 당으로 돌아와 삼헌관이 당굿에 참여한다.

온평리의 명오부인당에는 영험있는 당맨심방이었던 '문씨영감'의 신화가 별도로 전해온다. 문씨영감은 어린 때 일곱 살이 되도록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보름만인 음력 10월 초이레 달이 질 무렵에 개 옆 용머리 바다로부터 걸어나왔다. 청색 도포를 입고 무쇠갓을 쓰고 한 손에 유리잔 또 한 손에 유리대를 든 의젓한 모습이었다.

문영감은 그 때부터 명오부인의 신하가 되어 늙어 죽을 때까지 당을 지켰는데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명오부인이 썼던 댕기머리, 겹저고리, 치마, 장옷, 노리개와 영감이 바다에서 입고 나온 도포와 갓, 유리잔, 유리대 등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대제일인 10월 7일은 본향신의 생일이면서 문영감이 바다에서 솟아난 날이기도 하다.(남제주군, 郡制60周年 南濟州郡誌 제Ⅲ권. 2006. 859∼860쪽)

본풀이 ; 옛날 서울서 정승의 딸 애기가 지장밭을 돌아보라고 했더니 지장밭에 가서 지장의 고고리(이삭)을 꺾었던 모양이라마씀. 꺾어 버리니까 아버지가 제주도로 귀양을 보내 버렸는데 큰딸(정중부인)은 조천이고, 샛딸(이주부인)은 김녕이고, 작은딸은 맹호부인이라고 열운이를 주로 삼아 와서 보니까 열운이는 은신할 디가 없거든. 신산리 그등애라고 해서 거기를 가서 바라보니까 묵은열운이가 적당하니까 그딜 와서 좌정하였다 합니다.

우리 온평리는 옛날에는 아마 그 한집을 위하지 않다가 문씨라는 분이 아홉 살에 '황날'(고량부 삼성 각시가 올라오라난 포구, 황루알) 옆에 빠져서 물 아래도 두 일뤠, 물 위도 두 일뤠 열나흘을 보내고 '게얌용머리'로 유리잔과 금붓대니 금벼루니 하는 걸 가지고 나올 때는 무쇠갓을 쓰고 나왔답니다.

문씨가 몸이 아파가니 한집 집사관으로 들어가 한집을 위하면서 가지갈라단 모시고 밤인 들민 불싼 가호, 낮인 들민 내 난 가호 하며 돌아댕기면서 심방질하고 호적·장적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양반은 돼기고길 일절 안 먹으니까 온평리에선 돼지고길 먹고 당에 가지 않습니다.

당에 강 보민 당신의 이름은 '유씨부인'이라 써 붙였는디 유씨부인이 아니라 맹호부인이 맞수다. 정월에 '포젯굿' 하고 칠월 초일뤠에는 '마풀림제'라고 해서 한집 옷을 해서 갑니다.

옛날에는 '한집머리'라고 한 발 이상 땋은 거 참 윤도 나고 좋은 게 이서나신디 다 도적맞고 지금은 문씨 영감이 쓰던 갓이 남아 이실 거우다.(1989년 8월 18일 78세 남 현여정 증언)(온평리지 269∼270쪽) 이 분의 말대로 당에는 무쇠갓이 모셔지고 있으나 실제 사람이 쓸 만한 크기가 아니라 장난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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