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대수동 바닷가..일과리 서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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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대수동 바닷가..일과리 서림연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3.0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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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연대의 원형에 가장 가깝게 복원한 것

일과리 서림연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22호
위치 ; 대정읍 일과리 1275-1.
유형 ; 방어유적(연대)
시대 ; 조선

 


봉수제도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국가의 위급을 알리는 군사 목적의 통신수단이었다.

제주도의 봉수(烽燧)로는 망(望)과 연대(烟臺)가 있었는데 망은 바닷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오름 정상에 둥글게 흙을 돋우고 도랑을 파서 만들었으며, 연대는 바닷가 언덕과 같이 다소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만들었다.

일과리 서림연대는 대수동 바닷가에 있다. 주변에 높은 곳이 없기 때문에 직접 바닷가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바닷가의 둥글둥글한 돌과 잡석을 이용하여 최근(1995년 전후)에 복원하였다. 올라가는 계단은 안쪽으로 들어가게 만들어졌고, 상부에는 돌 한 단 높이로 불을 피우는 곳이 둥글게 만들어졌다. 연대의 남과 북쪽으로 환해장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탐라순력도의 '한라장촉'에는 현 위치가 서림포(西琳浦)라고 기록되어 있다.

탐라방영총람(1760∼1770년刊)과 제주병제봉대총록·제주읍지(정조연간 刊), 제주대정정의읍지(1793년 刊) 탐라지초본(1842∼1843년 刊), 대정군읍지(1899년 刊) 등에 모두 '서림연대'로 표기되어 있다.

이 연대의 위치를 기록한 것을 보면 제주읍성에서 서쪽으로 103리, 대정현성에서는 서쪽으로 7리라고 되어 있다.

응소 연대는 동쪽으로 '무수연대', 서쪽으로는 차귀진 소속의 우두연대이다. 여기서 우두연대는 너무 멀다.


서림연대는 재료를 현지에서 조달했다는 점, 가로×세로×높이가 규격에 맞는 점, 상부에 방호벽을 만들지 않은 점, 계단을 내부로 축조한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제주도 연대의 원형에 가장 가깝게 복원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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