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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데스크칼럼
따뜻한 인간미가 있었던..천상 기자(추신)(데스크칼럼)무집착, 무소유의 삶을 즐긴 강삼 선배를 보내며..
고현준 기자  |  kohj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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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8.05.10  00: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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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앞바다..강삼 선배의 고향이다

 

강삼 선배는 늘 “무라 무라..”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이 결국은 무’라며 스스로 무집착, 무소유의 삶을 즐겼습니다.

호불호가 뚜렷한 성격인 그는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중간은 없었습니다.

항상 꼬장꼬장했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그는 천상 기자였습니다..최고참 현역 기자로써 그는 후배기자 들에게는 “중고컴퓨터만 들고 다니면 다 기자냐..”며 후배들의 나태함을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4월19일 오후 퇴근길(그날은 그의 생일 다음날이었습니다)에 오토바이에 치여 중상을 입고 각종 수술 등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5월9일 어버이날 다음날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홀연히 와서 살다가 그냥 떠난 느낌입니다.

거의 매일 만나 점심이든 저녁이든 같이 했던 필자로서는 지난 20여일간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그냥 먹먹했습니다.

오늘 부음을 듣고는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지요.

강삼 선배와 필자의 인연은 40여년전부터 시작됐습니다.

1977년부터 1978년까지 나는 제주신문 업무국에 근무하고 있었고, 강삼선배는 당시 성산포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교사였습니다.

78년 5월경 우리는 당시 북신로에 있던 제주신문 2층 편집국에 앉아 함께 수습기자 시험을 봤습니다.

며칠후 합격자 발표에서 나는 떨어졌고 강삼선배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당시 3명의 수습기자를 뽑았지만 신문사월급이 적다고 한사람은 한국광고공사로, 한사람은 농협 시험을 보고 자리를 옮겨가는 바람에 새로 뽑은 기자는 강삼선배 1명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김선희 제주신문 사장은 교사를 그만 두고 박봉인 기자를 지원한 때문인지 “이제 신문사에 인재가 들어오고 있다”며 전직원 봉급을 100% 인상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강삼 선배 입사로 전직원이 혜택을 보게 된 셈이였지요. 역사적으로도 그런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 파격일 것입니다.

이후 필자는 서울로 올라가 1년후 시사통신 수습기자로 합격해 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다시 그와 만날 기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제주에 내려와 30년이 지난 2008년 말 제주환경일보 기자를 하면서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강삼선배를 보았지만 나는 그가 그때 그 선배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몇 달후 둘이 저녁을 먹다가 제주신문 이야기가 나왔고 갑자기 “나 강래보 잖아”하는 소리에 바로 그를 기억했습니다.

강래보는 그의 옛이름입니다. 그동안 강삼이란 이름으로 개명했다고 하니 이름만 들어서는 알 수가 없었지요.

당시 1978년 5월의 어느날.. 제주신문 수습기자 합격자발표가 있었던 그날 나는 숙직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거의 새벽 2시가 다 되어갈 무렵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동문파출소인데 제주신문 기자라며 행패를 부리고 있어 확인하고 데려가라”는 전화였습니다.

당시 신문사에 그런 일을 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젊잖은 분위기여서 도무지 누구인지 상상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야밤에 뛰어서 동문파출소로 갔더니 술에 잔뜩 취한 강 선배가 그곳 소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파출소장은 내게 “이 사람 제주신문 기자가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수습기자로 합격한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더니 “수습기자가 파출소에 와서 행패를 부렸다”고 매우 분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있습니다.

일명 신병인수를 하고 나오니 강삼 선배가 “수습기자라는 말은 하지 말지..”하며 한마디 하더니 어둠속으로 걸어갔습니다.

그후 30년만에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그를 다시 만난 것입니다.

인연의 끈이란 그런 것일까요..?

강 선배는 그날 이후 만나면 “이왕 신병인수를 해 주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신병인수를 해줘야 한다”며 서로 웃곤 했지요.

박학다식했던 강 선배는 기억력도 좋아 많은 이야기꺼리가 있었고, 우린 함께 있으면 늘 세상을 낄낄대며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도 따뜻했습니다.

함께 저녁이라도 먹을 때 일하는 종업원이 나이 어린 외국인이라도 만나면 객지에 와서 고생한다고 팁이라도 꼭 쥐어주었고, 자주 가는 음식점에서 만나는 아즘마에게도 가끔 5천원짜리 상품권이라도 주는 등 인간미가 있었고 욕심이 없었습니다.

얼마전 생일날에는 딸들이 최고급 지갑을 사줬다고 제게 많이 자랑하기도 한 순수한 사람이었고, 아들이 서울에서 의사를 한다고 뿌듯해 하기도 했었지요.

그는 갔지만 아마 그런 그의 사랑만은 세상에 남을 것입니다..

그의 성격이 호불호가 뚜렷했듯이, 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립니다만 이제는 영영 그 선배를 볼 수 없게 됐습니다.

40년전 5월에 만나, 40년후.. 그와 다시 이 따사로운 5월에 헤어지는 중입니다.

강 선배..

다음에 만날 때는 나도 술을 좀 배워서 함께 한잔을 겨루며 또 한번 세상을 낄낄대기도 하는 날이 또 오겠지요.

저 세상에 가셔서 그동안 너무나 고마워했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으셨다는 어머님도 만나 뵙고, 함께 술을 즐겼던 홍실장도 만나 회포도 푸시기 바랍니다.

선배 만나는 동안 참 즐거웠습니다.

잘 가세요.

 

(일포)10일 S중앙병원 6분향실,(발인)11일 양지공원

   
 

(추신)강삼 선배의 장례식을 무사히 치렀습니다.

 

기자와 도지사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교류를 했던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님은 강삼 선배가 병원 입원때부터 관심을 가져주셨고, 일포날, 발인날 오전에도 오셔서 마지막 가는 길을 직접 배웅해 주셨습니다.

평소 가까운 선후배로 지냈던 김부일 전 제주도 환경부지사님과 이상순 서귀포시장님, 박영부 전 서귀포시장님, 김정학 전 도기획실장님과 강창훈 도 청소년육성담당님,제주시청 강봉수 보도담당님께서도 바쁜 시간에 조문해 주셨습니다.

고병기 농협제주지역본부장님과 제주시농협 양용창 조합장님 등 농협에서 거의 모든 분이 조문해 주셨고, 가족들의 병원비와 장례비까지 걱정해 주신 오경덕 삼다원 대표님과 대한항공 박종모 차장님도 오셨습니다.

하주홍 전 미디어제주 대기자님, 고홍철 제주의 소리 전 대표님, 고창범 언론중재위원님, 김동훈 김만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님, 양대영 영주일보 대표이사님, 윤정웅 제주신화월드 상무이사님, 김용덕 제주신문 편집국장님, 김승범 연합뉴스 제주본부장님, 곽상필 사진기자님, 제주신보 고동수 논설위원님, 박훈석 전 제민일보 편집국장님 등(이 외에 다른 기자님들과 방송사 기자님들도 많이 조문해 주셨으나 제가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 못해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후배 기자님들 거의 모두가 찾아와 강삼 선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주셨습니다.(특히 함께 근무했던 양진영 제주관광신문 대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삼 선배의 마지막 걸음을 가족처럼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주도기자협회와 언론인클럽과 농협제주본부 제주은행 등에서 조화를 보내주셨습니다.

강삼 선배는 평소 많은 사람과 교류를 하지 않았지만..조문때 보여준 여러 분들의 의리에 많이 감사할 것입니다.

그런 관계로 가족들조차 강 선배의 인간관계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더욱이 사망한 다음날 일포로 급히 장례를 치르느라 부고를 할 새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찾아와 조문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가족들을 대신하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감삼 선배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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