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생태숲』 뙤약볕 아래서도 고운
그늘진 숲의 막바지, 레비호랑거미가 낮은 곳 풀숲 사이에 X자 모양의 흰 띠줄이 있는 둥근 그물을 치고 누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미줄을 지나면 바로 뙤약볕이 내리쬐는 길을 걸어야하는데 생각만 하여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더군요.
어쩔 수 없지요. 여름 날씨가 더운 것이 당연한 것을.
드디어 여름 볕 아래 진녹색 억새물결이 출렁이는 사이길로 들어섰습니다.
억새 사이에 언제 꽃이 피었던지 열매를 부풀린 엉겅퀴가 보이더군요.
그리고 엉겅퀴 옆으로 분홍색 꽃을 피운 긴 꽃차례가 보입니다.
아, 타래난초 꽃이 피었습니다.
여름 볕이 막 피어난 꽃들을 진하게 물들이고 있더군요.
더위를 잊고 잠시 꽃과 눈높이를 함께 해봅니다.
타래난초는 5-8월에 분홍색 또는 흰색 꽃을 피우는데 나선상으로 꼬인 이삭꽃차례에 작은 꽃들이 여을 향해 달린 모습이 특이합니다.
작은 벌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타래난초 주변을 맴돌다가 작은 꽃 속으로 폭 빠져듭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지요.
벌의 주둥이에 노란 꽃밥이 매달려 도통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소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벌은 용케 해결하고 다른 꽃으로 날아가더군요.
볕이 점점 뜨거워집니다.
분홍 꽃에 부딪혀 쨍하고 부서지는 볕 조각이 날카롭게 날아들어 눈을 찌르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여름 볕 아래서도 숲의 존재들은 아름답기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