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의병 모집..상모리 구제국의사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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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의병 모집..상모리 구제국의사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10.09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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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지민(最靈之民)이 어찌 은혜를 느끼는 마음이 없겠는가?

상모리 구제국의사묘
 

구제국 의사묘비 具濟國義士碑
위치 ; 대정읍 상모리 2760.
비신의 높이는 115cm, 전면 폭 47cm, 측면 폭 21cm이다.

▲ 상모리_구제국의사묘
▲ 상모리_구제국의사묘비


구제국 의사는 고려 정일품 구존유(具存裕)의 후손이며, 통훈대부 구보만(具普萬)의 아들이다.

순조12년(서기1812) 홍경래(洪景來)가 난을 일으키자 구제국·양위경(梁渭慶)·송익하(宋益河)·강상훈(姜尙勳)·고한일(高漢日)·박필기(朴弼基) 등은 1812년 3월에 전도에 격문(檄文)을 보내고 의병을 모집하여 관에 신고하고 바람을 기다리던 중 평란되었다는 소식에 출전을 중지했다.

이들은 철종11년(1860) 심동신(沈東臣) 어사에 의하여 복호되었으며, 1977년 남제주군이 묘 입구에 의사비를 세우고 의사의 충절을 기려 왔는데 1985년 후손들이 개건했다.

당시 삼읍에 돌렸던 격문(사발통문)은 다음과 같다.(남제주군, 남제주의 문화유적. 1992. 94-95쪽, 濟州鄕校誌 629쪽)


〈이 격문을 발하게 된 것은 酎北賊을 토벌하고자 함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소중한 것은 군친(君親)이요, 가장 귀중한 것은 충효(忠孝)이니 곧 부자지친(父子之親)과 군신지의(君臣之義)는 선지가 다하도록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만세에 걸쳐 어찌 사라지겠는가?

선유(先儒)도 말하기를 임금님과 어버이는 비록 같지는 않으나 충과 효는 두 가지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건대 신하와 자식된 자로서 임금님과 어버이가 위급함을 당하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만약 혹 아들이 어버이의 위태로움을 구하지 아니하고 신하가 임금님의 어려움을 급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이는 곧 충효의 문(門)에 죄가 될 뿐 아니라 또한 소와 말에 옷을 입힌 것과 다름없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위 임금님은 백성의 구가(謳歌) 속에 대통을 이으셨고, 요순(堯舜)의 바탕과 탕무(湯武)의 덕을 지녀서 등극하신 이래 온 강산을 덮고 사려가 만백성에 미쳤으니 백성들은 모름지기 생(生)의 즐거움과 덕화(德化)의 성(盛)함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지 않은 이가 없다.


천만 뜻밖에 흉적(兇賊)의 무리가 어리석은 무리들을 불러모아 의주(義州)와 정주(定州) 사이에서 난을 일으켰다. 어리석고 무식한 백성들은 순역(順逆)을 분별하지 못하고 왕왕 들어가서 적수(賊藪)가 된다고 한다.

오호라, 슬프도다. 이것이 무슨 변괴인가? 누천년 기자의 나라요, 400년 동안 열성조(列聖朝)의 예의와 문물이 중국의 유풍(遺風)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 선정(善政)은 실로 만세에 전함이 있으니 참으로 이른바 천부지지(天賦之地)요 반석지종(盤石之宗)이다.


그런데 이제 적괴(賊魁)는 역천지모(逆天之謀)를 품고 감히 임금을 업수이 여겨 악을 자행하고 있으니 어찌 홀로 조정 장신(將臣)의 힘만으로 분기토멸(奮起討滅)할 것인가?

실로 이는 온 백성의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인 것이다. 우리 나라 364현 중에서 강개(慷慨) 충의지사(忠義之士)가 반드시 분발하여 시골 가난한 집에서도 의병을 일으키고 순충(殉忠)으로써 국난에 나선다면 이 흉적들을 평정하지 못할 것이 없다.

본도 백성들은 더구나 육지와 달라서 참으로 천고에 잊지 못할 은혜가 있다. 우리는 외로운 섬 백성인 까닭에 임금님은 소의우식(宵衣旴食)하며 항상 굶주린 백성을 생각하며 배로 쌀을 보내어 구휼하고 과장(科場)을 베풀어 가난한 선들을 영광스럽게 하며 이역만리 먼 곳임에도 한결같이 돌보셨다.

특히 갑인년 흉년 때에는 백성들이 굶주려 장차 죽게 되었는데 선왕 정조께서 진휼하여 주신 은덕으로 부모처자가 오늘까지 보명(保命)하게 되었으니 오로지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다.

포목과 금수도 오히려 우로(雨露)의 혜택을 알거늘 하물려 최영지민(最靈之民)이 어찌 은혜를 느끼는 마음이 없겠는가?

이제 군부(君父)가 위난을 당하였으니 바로 이 때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여 보람있게 죽을 때이다.


오호라! 상하 사람은 선왕이 함육(涵育)한 백성으로서 지난 날 건져 살려주신 은혜를 입었으니 함께 적진(賊陣)을 찔러 죽음으로써 주상 전하께 보답하지 않겠는가?

옛날 기하(岐下) 야인(野人)들이 공마를 잡아먹었다 하여 법에 따라 죽음을 당하게 될 때 진나라 목(穆) 공이 그들에게 술을 내려 준 데 대하여 그 은혜를 갚고자 달려가서 진군(晋軍)과 싸워 죽음으로써 은헤에 보답하였으니 어찌 만고에 빛나는 이름이 아니겠는가?

말을 잡아먹던 야인의 무리도 이와 같은데 오히려 본도의 상하 백성은 유달리 나라의 은혜를 입었으니 홀로 야인들만 못하랴!


우리들 백면서생으로서 일편단심 순국의 결의를 삼읍 각도 상하 충의 인사에게 보내니 진실로 몸을 잊고 절(節)에 순(殉)할 사람이 있거든 곧 마땅히 함께 가서 살아 돌아오지 않을 것을 맹세할 일이다.

만일 나의 말을 우언(迂言)이라 하여 머물러 관망하거나 진퇴를 주저하지 말고 임금과 어버이를 위하여 나아가자.

이는 외면으로 거짓 꾸미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단심(丹心)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이 격문이 이르는 곳마다 무릇 혈기있는 남아는 팔뚝을 걷어부치고 뛰어나와 한 마음으로 먼저 의성(義聲)을 부르며 함께 국난에 나아갈 것을 서약하고 이 달 28일에 주성(州城) 서문 밖에 모여 면질심서(面質心誓)하며 영문(營門)에 아뢰어 출륙하고 같이 사생취의(捨生取義)한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다.

壬申 3월 10일 통덕랑 구제국, 유학 양위경, 고한일, 강상훈, 박필기, 송익하〉(濟州鄕校誌 629∼6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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