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통물..서호동 절곡지물(절꼭지물)(용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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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통물..서호동 절곡지물(절꼭지물)(용천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10.16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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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는 용천수를 절에서 식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절곡지라고 불러

서호동 절곡지물(절꼭지물)(용천수)

 

서호동 절곡지물
위치 ; 서귀포시 서호동 각수바위 동쪽
유형 ; 수원지
시대 ; 일본강점기

▲ 서호동_절곡지물_수로
▲ 서호동_절곡지물_취수장

절곡지물은 호근동 중산간도로 북쪽으로 굽이굽이 가면 용천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서 북쪽으로 5분 정도 숲길을 가면 있다.

산에서 나는 용천수를 절에서 식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절곡지라고 불렀다는 말이 전한다. 지금의 용천사가 아니라 물의 동남쪽(지금은 감귤밭)에 고려 때부터 절이 있었다는 구전도 있다.(제민일보 2004년 10월 18일)

당시 서호리는 '통물'(물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잘 썩지 않는 나무로 통을 만들어 박아 놓았다 해서 붙은 이름)을 식수원으로 사용했으나 마을에서 거리가 멀어 물허벅으로 운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926년 당시 구장인 김익규씨와 허은씨를 중심으로 마을 유지들이 오사카에 거주하던 마을 출신 재일동포들과 수도시설을 하기로 결의했다.


수원지 조사를 거쳐 각시바위(鶴秀岩) 동쪽 절곡지물을 수원으로 결정하고 인접 마을인 호근리와 공동으로 수도시설을 하기로 했으나 급수량이 적어 경비만 손해보게 된다며 호근리에서 포기하자 서호리 단독으로 시설을 하게 되었다.

당초에는 대정읍 신평리에서 만든 옹기토관으로 수도관을 매설할 계획이었으나 파손 우려가 높아 철관으로 변경, 수도기성회를 조직하고 마을 출신 재일동포 5000원, 마을 주민 4670원 등 9690원을 모금해 1927년 1월 24일 착공, 마을 주민들이 모두 동원되어 서귀포항에서 절곡지까지 약 6㎞의 거리를 인력으로 철관을 운반하고 정과 해머로 암반지대를 파서 관을 매립하여 7월 7일 완공하였다.

절곡지물에서 마을에 이르는 수도관은 1900간 3454m에 이르렀고, 마을을 4개 구역으로 나누어 공동수도를 설치하여 물을 공급하였다.

1934년 2곳에 공동수도가 추가 설치되었고, 1935년 4월에는 수도조합에서 104원을 들여 2차 수도시설공사를 해서 서호간이학교 운동장과 숙직실에도 수도를 시설했다. 물사정이 좋지 않았던 '섯동네'도 주민들이 336원을 모금하여 수도를 설립했다. 비석은 이를 기념하여 1935년 세운 것이다.(제민일보 2004년 10월 18일)

서호동 우회도로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용천사를 찾아가면 절곡지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옛 시설들이 많이 부서졌지만 물은 위 사진처럼 여전히 깨끗하게 흐르고 있으며 용천사라는 절에서는 이 물을 먹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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