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배개포구..보목동 도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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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배개포구..보목동 도대불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11.2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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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람들의 아낙들 비바람 부는 밤이면 횃불 들고 지아비 마중 나가

보목동 도대불
 

소재지:서귀포시 송산동 보목마을 배개 포구
시 기:1937년경
유 형 ; 어로 조명시설
문화재 지정사항:비지정

▲ 보목동_도대불(1108)조형물추가
▲ 보목동_도대불

보목동은 행정구역상으로는 1981년 서귀포시제 실시가 되면서 서귀동 일부 및 동홍동, 토평동의 일부와 함께 서귀포시 송산동에 포함되었다.

동으로는 지금 제주방송국 서귀포중계소가 있는 〈세경물〉을 경계로 하효동과 나누이며, 북쪽으로는 신효동의 〈소학남모루〉와 토평동의 〈모시물〉, 서쪽으로는 〈빌레통〉분지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은 한라산의 정남으로 펼쳐져 있어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을 이루면서 완만하게 내려뻗은 평원은 해안선을 따라 낮은 사면을 이루고 있어 비교적 광대한 조면암질이 잘 발달한 농암갈색의 화산회토로 되어 있어 배수가 잘 되고 토심이 그리 깊지 않으며 비옥하여 일찍이 보리, 조, 콩, 고구마, 유채 등을 재배해 오다가 1950년대 이후부터는 감귤재배의 붐을 이루면서 최근에 와서는 바나나, 파인애플, 화훼 재배의 적정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바다와 인접해 있는 입지적 조건을 이용하여 어류 양식장도 마을의 동서 두 군데에 조성되어 있다.

기후는 매우 온화하여 겨울에도 눈이 오는 날이 거의 없으므로 "눈이 오면 개가 짖는다"는 말이 전해 올만큼 연평균온도가 15.7℃의 기온을 이루면서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하여 최고기온 26.1℃로 비교적 식물이 자라거나 사람이 생활하기에 최적의 기온을 갖고 있다.

마을의 중심부를 남쪽으로 내리는 〈정술내〉를 중심으로 이 마을은 동서로 나뉘어져 취락이 형성되고 있다.

동동네는 지형이 낮고 해풍의 영향으로 수목들이 잘 자라지 않으므로 어업에 생활 의존도가 높고, 섯동네는 지대가 높고 토질이 비옥하며 숲이 우거져 있어 농업에 생활 의존도가 높다.

옛날 등대가 세워지기 이전 뱃사람들의 아낙들은 비바람이라도 부는 밤이면 횃불을 들고 지아비를 마중 나가곤 하였다. 이것을 '갯불'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를 대신하여 1915년을 근간으로 제주의 포구에는 소위 '도대'라는 옛 민간등대가 1960년대까지 축조되었다.(한라일보 2010년 3월 12일 백종진·제주문화원 문화기획부장 글)


보목동 도대불은 서귀포시 보목동 제지기오름 앞 배개 포구에 자리하고 있다.

배개는 이 동네 앞 해변에 있는 포구인데 고깃배의 선착장으로 입지적인 조건이 좋아서 선박들이 정박하고 배를 매는 포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도대불은 1937년경에 주민들이 축항공사를 하면서 제작한 것으로, 하단부가 넓고 상단부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자연석 현무암을 사각형으로 다듬어서 층쌓기를 하였다.


기단부는 규격 180×189㎝, 높이 53㎝로 한 단을 두었고, 그 위에는 규격 138×43㎝, 높이 169㎝ 높이로 몸체를 만들었으며, 등을 밝히는 상단부는 규격 95×97㎝이고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들었으며 볼트 2개가 있다.

북쪽에는 상단부로 올라가는 3단의 계단을 만들었으며, 도대불 바로 동쪽에는 기름 탱크가 있다.

이 도대불은 당시 이장이 관할하였고, 등화 재료로는 복어기름을 사용하였으며, 1960년대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제주도청 홈페이지 제주의 마을)


2011년 8월에 답사해 보니 위 사진처럼 불꽃 모양 조형물이 추가돼 있었다. 옳은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석유를 이용할 당시 설치했던 원래의 모습을 고증해서 복원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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