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고냉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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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고냉이술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12.2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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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 304.5m 비고:69m 둘레:4,310m 면적:1,136,315㎡ 형태:원형

 고냉이술 

별칭 : 고냉이굴

위치 : 제주시 봉개동 산 165번지 

표고 : 304.5m  비고:69m  둘레:4,310m 면적:1,136,315㎡  형태:원형  난이도:☆☆☆

 

고양이가 주인공이 되나 거대한 굼부리와 자연 궤가 특별하며 변화가 심하게 이뤄진 오름.

대부분 오름이나 악(岳) 또는 봉(峰)으로 명칭이 붙는데 이 오름은 유별나다. 오름 일대에 고양이가 많이 살았음에 연유해서 고냉이술이라 했으며 고냉이는 제주의 방언이다. 또한 ‘술’은 일정한 거처나 터전(살아가는)을 의미하며 야생 짐승인 점을 고려하면 ‘굴’이나 구멍 또는 곳, 공간 정도로 풀이가 된다.

따라서 고냉이술이라 함은 고양이들의 터전이거나 서식지로 이용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지금의 봉개 권역에서 고냉이술이 있는 명도암 지역은 과거 집터들이 많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여러 동물들이 집단적으로 살았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유독 고양이를 모체로 오름의 명칭이 정해진 것을 보면 흥미로운 점도 있다. 

옛 문헌에 제주목성(市) 동남쪽 23리(약 9㎞)쯤 되는 위치에 고양이 숲을 뜻하는 고냉이술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과거 거리 측정이 정확하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이 위치가 봉개동의 고냉이술이거나 다른 지역인 와흘리 소재의 궷드르곶일 거라고 전하고 있다. 짐작 하건대  이 오름의 분화구와 기슭의 구석에 있는 궤(동굴)가 고냉이들의 터전이라서 고냉이술이나 고냉이숲. 궤 등으로 불렀던 것 같다.

다만 오래전부터 곶자왈이나 여러 숲길을 다니면서도 아직까지 야생 고양이를 만나는 적이 잘 없기 때문에 세월을 거슬러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비하여 여러 생태 환경의 변화가 이뤄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선인들의 판단과 결정은 그 시대적 상황을 참고한 게 맞을 것이다. 달리 생각한다면 고냉이술은 오름으로서의 가치나 특징보다는 한 장소를 두고 적당한 표기를 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명칭이라는 뜻도 포함을 하여 정해졌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사실 고냉이술의 백미는 궤(동굴)보다는 엄청난 크기의 분화구가 우선이다. 오름의 산정부에 낮은 외륜산릉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화구를 지니고 있는 독립형의 소화산체이다. 분화구 내부는 분지형 함몰지로 일컫는 여러 개의 피트 분화구(pit crater)를 지닌 용암 순상 화산체로서 높이나 산 체의 크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콜롯세움 경기장을 만들고 보조 경기장과 관중석을 만들어도 충분한 넓이이다. 분화구의 크기만 논한다면 하논 분화구나 큰방에 오름을 떠올리게 되겠지만 고냉이술의 존재는 이에 버금가는 면적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개간과 활용을 통하여 변화가 이뤄졌지만 원형의 모습은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오름의 허리와 어깨까지 이어지는 능선에는 언제부터인가 감나무 묘목들이 심어져 있다. 탐방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오가는 동안에 만나는 모습은 다소 아쉬움도 따를 수밖에 없다. 사유지를 포함하는 고냉이술인지라 기슭과 능선의 일부를 활용해야 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비고(高)는 69m로서 원형의 화산체이며 낮으나 면적이 말해주듯 부분적으로 개간이 되었긴 해도 그 가치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고냉이술 탐방기-

칡오름 탐방을 마치고 고냉이술로 향했다. 칡오름과는 소로를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때문에 차량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다. 우선은 능선을 오르기보다는 분화구 안을 살피고 고냉이궤를 찾아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 오름의 대세는 분화구와 궤이기 때문에 필수 코스가 되는 셈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말 그대로 대략난감이었다.

넓고 길게 이어지는 분화구는 진입로조차 남기지 않고 목초들이 빽빽하게 장악을 한 상태였고, 사방으로 둘러싸인 능선만 보일 뿐 목초가 차지한 원형의 공간은 한동안 망설임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서구형의 수수라 불러도 될 법한 이 식물은 수입산으로서 수단그라스라고 부르는 화본과 목초였다.

이른 아침에 출발을 한 후 두 번째 만나게 되면서 시간이 흘렀지만 날씨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시계도 안 좋은 데다 진행을 할 마땅한 곳이 없었지만 한쪽 구석의 고랑 옆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키 재기조차 업신여기는 수단그라스의 성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고냉이술에는 뚜렷하게 나타나는 두 개의 궤가 있으며 기슭 어디엔가 작은 궤도 있다고 들었지만 주변 상황을 고려할 때 진행에 어려움이 따라서 한 곳만 찾았다. 

보잘 것 없는 조그만 동굴로 보이지만 이 오름의 유래와 밀접한 상관이 있는 때문에 더한 의미를 부여하고 살폈다. 궤 안은 꽤 넓은 공간이며 안으로 들어가면 좁은 통로가 더 이어진다고 들었다. 하지만 입구를 서성거리며 안으로 들여다봤을 뿐 더 이상 진입은 엄두를 못 냈다. 여름날인데다 습한 날씨라면 꼬물이를 비롯한 방해꾼들이 있을 게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좀 더 안쪽을 살피니 궤 천정이 무너진 흔적이 있고 그 아래에는 떨어진 바위체가 보였다.붕괴가 맞는 표현이겠지만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로 여겨졌다. 습한 기온을 갈아치우는 냉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동굴의 길이가 꽤 될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분화구를 빠져나와 이번에는 정상부로 가기 위하여 숲길 옆으로 향했다.

농로를 겸하는 소로를 지나 우측 허리 능선을 따르는 동안에도 역시 감나무들이 보였고 정상으로 가는 길목도 역시나 과수원으로 변해있었다. 제주에서 감나무는 사과나 배 등과 더불어 작목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보통 이상의 광경이다. 아마도 유기농 등을 이용하는 시험재배일 수도 있지만 이미 뿌리를 내리고 수확의 단계를 거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분명한 것은 화산활동으로 인한 화산재나 송이(스코리어) 등이 많은 토양이 아니기에 이런 상황이리라 짐작이 되었다.

오름으로써의 특징보다는 잘 관리가 된 과수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삼나무를 심어서 구역과 바람막이 작용을 겸하게 한 것도 그렇고 바닥 층의 상태 역시 보통의 오름 능선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정상부라고는 하지만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데다 전망을 기대하기란 하나의 사치가 되어버렸다.

허탈이나 아쉬움을 느꼈지만 변화가 이뤄진 등성과 주변을 살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새삼 고냉이술의 심벌이자 치부는 굼부리와 궤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등성의 끝을 향해 전진을 했지만 굼부리 너머 숲이 우거진 기슭만 보였다. 고냉이술에서의 전망은 오는 과정에서 만나는 북향의 모습들이며 날씨가 좋다면 정상에서 한라산 기슭 정도를 바라보는 것이 전부 일 것 같았다. 한 발... 두 발... 그리고 더 등성의 끝을 향해 전진을 했지만 굼부리 너머로 숲이 우거진 기슭만 보였다.

등성으로 이어지는 아래쪽 공간은 궤가 있는 분화구이며 목초지인 셈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다른 방향의 기슭 아래를 보니 더덕 재배를 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이미 밭으로 변한지 오랜 된 것으로 여겨지는 현장이고 꽤나 넓은 면적이었다. 고냉이술 일대의 변화는 오름으로써의 가치나 기능보다는 비교적 잘 정돈이 된 농지와 과수원을 연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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