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법칙은 모두 어둠속에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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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법칙은 모두 어둠속에 숨겨져 있었다.."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9.02.04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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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신산리마을카페-표선해수욕장, 한 폭의 아름다운 바다의 향연
 

 

제주바다는 여전히 푸르기만 하다.

설날연휴가 시작된 지난 2일(토요일)은 거의 봄 날씨처럼 푸근하고 따뜻했다.

이런 날 오랜만에 지난번 반이 남은 제주올레3코스 신산리마을카페-표선해수욕장 구간을 걸었다.

약 한달간 걷지 못한 올레..

이번 올레걷기에는 친구 고광언과 서울에서 설을 새러 내려온 고광언의 친구 오태권 등 3명이 함께 걸었다.

성산에서 만나 신산마을카페로 가는 길에 출발전 오태권은 카페에서 차를 한잔 하고 걷자고 제안했다.

 
 
 

그가 자주 찾는다는 해안도로에 자리한,  입구에는 자전거가 있는 '바이 더 씨'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카페였다.

이 카페는 윈드서핑을 즐기는 자매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서핑보드는 물론 서핑을 하는 사진 등 카페 안에는 볼거리가 가득 했다.

사진을 찍고..그곳에 앉아 먼 바다를 함께 감상하며 차를 마셨다.

스트레스로 신장이 안 좋아져 먹거리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오태권..

돈도 많이 벌고 나름 성공한 그는 조릿대로 만든 액기스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먹어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제주에서 생산되는 삼다원의 후코이단이나 감귤진피액을 먹어보라고 권하고 ..걷기에 나섰다.

직접 오경덕 삼다원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의논을 해보라고 전화를 바꿔주었다.

건강이 더 나빠지면 투석까지 해야할 판이라고 해서 무엇이건 미리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 첫 번째가 많이 걷는 거라고..

 
 

우리가 걷는 제주올레3코스 해안도로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해안도로코스다.

돌길을 따라 걷는 곳도 있고..모래사장을 걷기도 한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곳..

이날은 유독 혼자 걷는 올레꾼이 많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고광언과 오태권은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나는 그들의 추억을 담아주는데도 열중했다.

둘이 찍은 사진만 50장이 넘었다.

 

건강을 위해 자주 내려와 함께 올레를 걷자고 했더니 오태권은 일부러라도 내려오겠다고 했다.

그는 표선에서 올레수첩을 사더니 올레꾼으로 나서기로 결정했다.

“걸어보니..그동안 지나가기만 했지 제주도의 이런 분위기를 전혀 몰랐다“며 제주올레 심층의 맛을 느꼈던 모양이다.

올레 선험자(?)인 나는 이들 둘에게 올레에 대한 정보를 친절하게 전해주려고 노력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때..

걷기보다 좋은 건 없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올레걷기의 묘미를 전했다.

고광언도 그렇게 해서 걷기 시작했지만..오태권도 그렇게 걷기에 나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사는 서울생활도 좋지만 이제 제주에 내려와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바램도 전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욕심은 버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버리면 버릴수록 그 삶의 무게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젊을 때의 열정이 지금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나 늘 많이 걸을 것을 권하고 있다.

 
 
 
 
 

양식장이 너무나 많은 3코스 올레길은 가는 곳마다 허옇게 하얀 밀가루를 덮은 듯 바다오염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어떤 곳은 무얼 버린 것인지 이름모를 찌꺼기와 함께 일부러 모레를 덮은 듯한 광경도 눈에 띄었다.

이런 모습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계속 되는 수많은 양식장을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양식장이 바다를 오염시키는 여러 요인 중에서 하나인 셈이다.

3코스에는 또 바닷가 넓은 목장지에 감귤껍질을 말리는 신풍목장이 자리하고 있다.

 
 
 
 

언제 가 봐도 많은 관광객들이 항상 찾는 곳이다.

이날도 입구에는 늘어선 차들이 가득 했다.

햇볕에 말리려고 드넓게 펼쳐진 노란 감귤박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곳은 바다절경과 함께 어우러진 조망으로 관광객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은..철조망이 쳐져 사람들이 감귤박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과 감귤박이 이제 분리된 상태다.

이제는 멀리서 노랗게 펼쳐진 감굴박을 바라만 봐야 한다.

 
 
 
 

그렇게 바닷길을 따라 걷다보니 신산포구에 다달았다.

이 포구에는 대규모 매립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보니..

항구와는 상관없는, 맥락없는 매립공사로 보여졌다.

항구를 넓히려는 의도같아 보이긴 했지만 항구와 연결되지 않는 매립이 수상한 것이었다.

지나다 만난 이 지역 주민에게 물어보니 항구를 넓히는 공사지만 앞으로 분양할 계획으로 매립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돈을 위한 개발은 도시나 농어촌이나 한결 같이 추구하는 목적이 되고 있는..

그냥 두어도 아름다운 포구가, 완전히 보잘 것 없는 곳으로 만들어지고 있어 참 안타깝기만 했다.

이렇게 야금야금 매립하고 개발하다보면 도대체 무엇으로 제주를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아쉬운 마음에 속절없이 사진만 찍어댔다.

 

또다시 길을 걷다보니..

어디선가 악취가 풍겼다.

공장으로 다가가 보니 요즘은 보기가 힘든 전분공장이었다.

그곳 폐수에서 나오는 악취였다.

이곳은 바닷가에 폐수처리시설을 했지만 처리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지 악취를 많이 풍기고 있었다.

길가 돌담에는 노란 유채꽃이 벌써 피었다.

계절은 2월이 되자 봄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표선해수욕장..

오늘의 종점이다.

이곳에서 오태권은 처음으로 올레스탬프를 찍고 뿌듯해 했다.

우리는 출발점인 신산리마을카페에서 오전 11시30에 출발하여 표선헤수욕장에는 14시 20분경 도착했으니 거의 3시간여를 걸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바다의 향연을 마음껏 즐긴 하루였다.

매화는 이미 흐드러지게 피었고..

유채꽃도 만발한 이 날..

분명 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박영만이 ‘인생열전’에서 스물네번째로 소개한 인물은 아이작 뉴턴(1642-1727)이다.

‘유럽의 문화를 탄생시킨 것은 네 개의 사과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금단의 사과, 세 여신이 불화를 일으켜 트로이전쟁을 초래한 ‘파리스의 사과’, 오스트리아로부터 스위스를 독립시킨 ‘빌헬름 텔의 사과’, 그리고 만유인력 발견의 계기가 된 ‘뉴턴의 사과’가 그것이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뉴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모두 어둠속에 숨겨져 있었다. 신이 ‘뉴턴이여 나오라!라고 하였다. 그 이후 빛은 모든 것을 비추었다“

뉴턴은 갈릴레오가 죽은 해의 크리스마스날, 영국 링컨셔 올즈소프에서 자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했고, 갓 태어난 뉴턴은 아주 작고 연약해서 나중에 그의 어머니가 한 말에 의하면 맥주잔에 집어넣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그가 성장하여 인류에 끼친 영향은 실로 어느 거인도 따라가지 못할 그러한 것들이었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면서, 일생을 통해 만유인력의 발견 뿐만 아니라 빛의 입자성 정립, 미.적분의 기초 확립, 역학의 3법칙 완성, 반사 망원경의 발명 등 이른 바 근대이론과학의 시조로 인류의 문명과 문화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프랑스 사람이었던 볼테르는 그의 ‘영국에 관한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뉴턴은 유행병을 피해 케임브리지에서 가까운 어느 벽지로 피난을 가서 살았는데,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가 우연히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목격했다. 이때 그는 저 유명한 지구의 인력에 관하여 깊은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볼테르와는 달리 독일사람이었던 가우스는 뉴턴에 관한 정보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런 사과 알 이야기는 밑도 끝도 없는 낭설이다. 사과 알이 떨어지건 떨어지지 않건 그 같은 발견이 사과 알 때문에 이뤄졌다고 누가 믿겠는가?..예컨대 뉴턴이 태어나던 해에 죽은 갈릴레이는 이미 지구의 인력에 관한 지식에 공헌한 바가 크다. 사과 알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사연임에 틀림없다. ‘어느 날 멍텅구리에다 짓궂은 사나이 하나가 뉴턴을 찿아와서 이렇게 그런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느냐고 시시콜콜 캐묻게 되었다. 뉴턴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대가 아주 멍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서 바삐 그를 떼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임기웅변적 발상으로 사과 알이 자신의 코 위에 떨어지는 통에 지구의 인력을 생각하기 시작했노라고 말해준 것이 사실처럼 퍼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우스의 이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뉴턴의 주치의였던 수트크레 박사가 쓴 ‘뉴턴의 전기’가 세상에 나옴으로써, 사과 알 이야기는 세인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 전기는 사실상 2백년 가까이 알려지지 않은 채 원고상태로 남아있던 것이었다. 그 전기에서 수트크레 박사는 자신이 아는 사실만을 근거로 해서 썼으며, 전해 들은 이야기 따위는 일체 관심두지 않고 적었다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726년 4월15일, 나는 아이작 뉴턴 경을 방문하여 그와 식사를 하고 종일토록 함께 지냈다. 점심 식사 뒤, 날씨가 따뜻하여 우리는 정원으로 나갔다. 사과나무 밑에서 그와 나는 단 둘이 차를 마셨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다른 발견들은 고사하고 전에 지구의 인력에 관한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내가 명상적인 상태로 앉아있을 때 사과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왜 옆으로나 위로는 가지 않고 반드시 지구의 중심만을 향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지구가 그것을 끌어당기기 때문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 중언에는 전혀 반론의 여지가 없다. 뉴턴이 사과가 지면에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에 인력에 관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아무튼 18세기말,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 지방 울즈소프 마을의 한 정원에 있는 사과나무 중 특정한 어느 나무에 ‘만유인력을 발견케 한 문제의 사과나무’라는 푯말이 붙여졌다. 그 후 이 나무는 1829년이 되자 완전히 썩어버렸기 때문에 베어버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고목은 정성껏 보존되었고, 그 목재의 일부로서 의자 하나가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오늘날까지 전해온다.(중략)..

뉴턴은 비교적 장수를 누렸다. 80세의 나이에도 영국왕립학회의 회장과 조폐국장을 지냈으며, 1727년 3월20일 방광결석이 재발하는 바람에 세상을 하직하개 되었을 때, 그이 나이는 84세였다.

알렉산더 포프의 또 다른 언급, ‘모든 천재들을 능가한 사람 뉴턴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배로 성장하여..’라는 말대로 그는 사과 알처럼 영글어 인류 발전에 한줄기 찬란한 빛을 비추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유골은 켄싱턴에서 런던으로 옮겨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경건히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여기에 아이작 뉴턴경이 잠들다. 그는 사물과 자연과 신학을 연구하여 전능한 신의 위대함을 그 철학에서 증명하였고, 복음서와 같은 경건한 생활을 으뜸으로 삼았다. 이 인류의 자랑이 임무를 마치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됨은 하늘나라에 있는 모두의 영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늘날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대학 예배당에는 이 대학이 배출한 유명 인사들의 동상이 늘어서 있는데, 뉴턴 역시 프란시스 베이컨, 알프레드 데니슨 등과 함께 나란히 모교의 영광으로 자리잡고 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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