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하르방과 할망..무릉2리 좌기동본향당(포제동산할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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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하르방과 할망..무릉2리 좌기동본향당(포제동산할망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6.02 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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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 가을에 수확한 새 쌀과 과일, 백지, 실, 돈 등을 제단에 바치는 풍습 유지

무릉2리 좌기동본향당(포제동산할망당)
 

위치 : 무릉리 650-2번지. 무릉2리사무소에서 동쪽으로 130m 지점에서 시멘트 길이 북쪽으로 향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길 끝에 있는 밭 안 오른쪽을 돌아보면 숲이 보이는데 그 곳에 있다. 출입구는 그 남쪽 밭인 무릉리 638번지로 나 있다.
유형 ; 민속신앙(본향당)
시대 ; 조선~현대

 


무릉2리 좌기동의 본향당이다. 포제동산 앞에 있다. 당은 과수원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들어가면 돌담을 두른 모양으로 있다.

돌들을 평평하게 놓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덧발라 제단을 만들었다. 제단의 크기는 가로 250㎝, 세로 65㎝, 높이 20㎝ 정도이고 제단 안쪽에 설치된 궤는 4개이다.

궤를 덮은 뚜껑돌의 크기는 약 45㎝ 정도이다. 장축 5m, 단축 3.6m 정도의 타원형 돌담 울타리가 약 1m 높이로 둘려 있다. 울타리 주변에는 잡목과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으며 입구도 명확하지 않다.


신목은 다강주나무라고 쓴 사람이 있으나 실제 다강주나무라는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피는 갈라지지 않고 비교적 매끈하여 예덕나무처럼 보이고, 잎은 소태나무, 머귀나무, 솔비나무처럼 보이는데 수종을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합다리나무인 것 같다.


2007년에는 낡은 물색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2017년 1월)은 아무 것도 걸려 있지 않다.


1800년대말에 대정고을 동문밧산짓당에서 몇 개의 돌멩이를 김수홍씨(김만평씨의 증조부 4촌, 1854년생)와 대정고을 송씨할망(고완범씨 조모 1870년생) 두 분이 모시고 와서 현위치에 봉안하였다.


“우리 시할아버지인 창뒷할으방(대정현 창고 뒤에 살았으므로 붙여진 이름)하고 송씨 할망하고 대정골에서 분짓해왔는데 어린 아이들이 발병하면 도와주는 수호신 할망을 모셨다.”(1908년생 고공옥 할머니=김만평 모친, 2006년 증언)


“친정 어머니가 생존해 계실 때 늘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시어머니인 송씨할망이 대정골에서 사기수로 시집을 왔는데 2∼3년을 산짓당에 열심히 다니다가 임신을 하셨는지 몸이 불편하여 창뒷할으방하고 같이 가서 당을 업어왔다고 하셨다.”(1940년생 고정자 2006년 증언)


축일본향으로 하르방과 할망 두 부부신을 모시고 있다. 당신은 마을의 생산, 물고, 호적, 장적을 차지한 토주관이다. 큰 메 1그릇, 작은 메 3그릇, 해어(海魚), 과일(유자), 돌레떡(돌레떡은 하지 않는 집도 있음), 감주를 올린다.

메를 올릴 때에는 숟가락 대신 새(띠)를 끊어서 2개씩 꽂는다. 제물을 다 진설한 다음에 ‘어느 올레에 사는 누구우다’ 하고 3번 절한 후 가지고 간 백지 여러 장을 아이들 이름을 거명하며 손으로 위에서 아래로 찢는데 잘 찢어지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소원을 들어줍서’하면서 새 종이를 다시 찢는다.


제일(祭日)은 매년 정월 3일이나 7일, 17일인데 택일하여 가기도 한다. 정월에 못 가면 3월에 길일을 택하여 간다. 정월이 되어도 새철(입춘)이 들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 당에는 현재에도 부녀자들이 전년 가을에 수확한 새 쌀과 과일, 백지, 실, 돈 등을 제단에 바치는 풍습이 있으며 타향에 나가 살고 있는 사람도 가정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당을 찾기도 한다.
《작성 070904, 보완 1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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