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성 쌓아 집단생활..대흘1리 마을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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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성 쌓아 집단생활..대흘1리 마을성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6.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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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학교 부지를 확장하여 주차장을 만들면서 철거되었다.

대흘1리 마을성담
 

위치 ; 조천읍 대흘1리 1672-1번지 대흘초등학교
유형 ; 방어유적(성)
시대 ; 대한민국

 


1948년 11월 20일경에 대흘리에 소개령이 내려지고 마을의 모든 집들은 토벌대에 의해 소각되었다.

이후 살아남은 주민들은 조천, 함덕, 신흥 등지에서 소개생활을 했고, 일부는 새미오름, 바농오름 근처의 야산에서 피신생활을 했다.

1950년 4월 마을 재건 명령에 따라 대흘, 와흘, 와산, 교래리 주민들은 대흘초등학교 부지에 성을 쌓고 함바집을 지어 2년간 거주했다.

대흘국민학교는 일제강점기에 기와집 1동으로 이루어진 3년 과정의 간이학교였다. 이 기와 건물에는 1948년 여름에 군인들이 2개월 개량 주둔하기도 했다.

성을 쌓아 함바집에 살던 시기에는 경찰파출소가 성내에 초가를 지어 주둔했다. 파출소에 근무하던 이북 출신 문봉직(당시 35세) 순경은 갖가지 악행으로 주민들을 괴롭혔으며, 대흘리 처녀를 아내로 삼아 살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혼자 육지로 떠나 버렸다.

대흘국민학교에 성을 쌓아 집단생활을 하던 와흘리, 대흘2리(고븐다리), 와산리 주민들은 1952년 본래 마을을 재건하는 것이 허가되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학교 둘레에 쌓았던 성담은 밭담, 산담 등으로 원위치되었으나, 현재 학교 뒷담으로 쓰이는 40여m가 남아 있다. 높이는 2m 이내로 많이 훼손되었다.

2016년 학교 부지를 확장하여 주차장을 만들면서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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