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지금도 옛 모습 남은..낙천리 방사용성담(방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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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지금도 옛 모습 남은..낙천리 방사용성담(방사벽)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11.17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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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재앙,고산리 당산봉의 봉우리만 보여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믿었다.

낙천리 방사용성담(방사벽)
 

위 치 : 한경면 낙천리 2106번지
시 대 : 1920년대
유 형 : 방사용성담

 

 

성담의 크기는 밑너비 1.5m, 높이 3.4m, 길이 30m 이나 온전한 성담 길이는 20여m이다. 낙천리 마을은 북동ㆍ남동쪽은 높은 지경이고, 서ㆍ북쪽인 바다쪽 고산리 방향은 낮은 곳이다.

큰비가 내리면 경사가 낮은 서쪽으로 물이 흐른다고 한다. 1920년경에 새물동네에 원인불명의 크고 작은 화재가 연이어 발생하여 가옥이 소실되는 등 많은 재앙을 입게 되었다.

마을의 주민들은 이러한 징조를 풍수지리설에 의한 동서강약으로 인한 재해라 여겼고, 또한 고산리 당산봉의 봉우리만 보여서 (봉우리만 보이면 나쁘다는 속설) 일어난 현상이라고 믿었다.

이를 막기 위하여 1940년경에 새물동네에 팽나무를 심었고, 성담을 쌓았다. 그리고 성담과 400여m 오빼미물 곁에는 방사탑을 쌓았다고 한다.


방사탑은 1950년대 이후에 없어지고 팽나무는 2002년 북제주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되다가 태풍 루사와 매미의 피해를 입어 고사되었다.

그러나 성담은 지금도 옛 모습이 남아있다. 나무와 잡풀로 둘러져 있고, 남ㆍ북으로 쌓여있는 성담은 밑에는 큰돌을 이용하였고, 그 위로 밭담을 차례로 쌓으면서 위에는 외담으로 반원을 그리고 있다.

남쪽방향의 끝 담은 밭의 입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헐어져 있으며 반대편의 담 끝은 밭을 경작하면서 다른 큰 돌들과 함께 뒤엉켜 있다.


동네주민인 김명옥(77) 할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마을에 3~4기 정도 있었던 방사탑은 무지한 리민들이 길을(거와지길) 포장하면서 허물어 사용해 버려 지금은 흔적이 없고, 방사축성탑은 4ㆍ3때에 마을방어성담과 연결하여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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