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으로 잃어버린 마을 ‘큰터왓’,4․3 진실을 찾아가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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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으로 잃어버린 마을 ‘큰터왓’,4․3 진실을 찾아가는 전시
  • 김태홍
  • 승인 2020.01.1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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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으로 잃어버린 마을을 주제로 한 전시 '큰터왓'이 제주도의 후원으로 문화공간 양(관장 김범진)에서 1월 16일부터 3월 1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현승, 빈센트 쇼마즈, 스투디오, 율리안 오트, 이지연, 조은장, 허성우 등 7명의 작가가 참여해 사진, 소리채집, 음악, 인터뷰 영상, 일러스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지적도 등의 관련 자료를 선보인다.

큰터왓은 화북이동 부록마을 옆에 있었던 마을이었다. 10여 가구가 살았으나, 제주 4․3으로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4·3 때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남아있던 돌담도 대부분 사라졌다. 부록마을에서 큰터왓으로 가던 길도, 집에서 물통으로 가던 길도 수풀에 덮여 막혔다. 사람과 소와 말이 물을 마시던 물통도 흔적만 남았다. 그 흔적마저도 곧 사라질 듯 보인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갔다. 전시 '큰터왓'은 잃어버린 큰터왓을 다시 찾고자 시작됐다.

이번 전시는 4․3으로 잃어버린 마을, 큰터왓의 옛 기억을 쫓아가는 전시다. 그곳에 누가 살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4․3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추적해 보았다. 이번 전시는 어린 시절 큰터왓에 있던 밤나무 밭에 밤 따러 다녔던 양정현(89세) 씨의 기억에서 출발했다. 양정현씨는 잊혔던 큰터왓을 사람들에게 다시 기억하도록 몇 년 전부터 큰터왓의 이야기를 알려왔다. 그 노력이 이번 전시와 아카이브 작업으로 결실을 맺었다.

전시는 우선 과거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큰터왓에서 살았던 사람 중 현재 유일하게 살아있는 강세봉(93세)씨, 현재 큰터왓에서 농사를 짓는 강주민(64)씨, 큰터왓의 역사를 연구한 양영선씨, 큰터왓을 기억하는 양정현씨 등 거로마을 사람들을 촬영한 김현승의 인터뷰 영상이 선보인다. 마을 사람들의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았다면, 작가들은 현재 마을의 모습에서 4․3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큰터왓의 현재 모습과 거로마을 4․3 관련 장소는 조은장, 율리안 오토의 사진, 이지연의 일러스트, 스투디오의 소리와 영상, 허성우의 음악에 담겼다. 또한 빈센트 쇼마즈가 거로마을 4․3 관련 장소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도 소개된다.

거로마을 사람에게 큰터왓의 기억은 4·3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큰터왓이 불탔듯 거로마을도 불탔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힘든 세월을 살았다. 그들은 그 당시의 이야기를 세세하고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양영선(71)씨의 말처럼 “살려고 해서 살아지던 시절이 아니고, 죽지 않아서 살아졌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이번 전시는 전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큰터왓, 거로마을의 4․3 이야기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아카이브 작업과 두 마을의 4․3 관련 장소를 소개하는 웹사이트 제작으로 이어진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카이브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작품설명>

김현승

큰터왓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김현승의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하나의 공간, 하나의 사건이지만 기억하는 부분은 서로 달랐다. 서로 다른 기억과 관점이 모여 전체를 이루어갔다. 이 영상은 문화공간 양에 보관되어 찾아오는 관람객, 연구자 등 4․3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자료로 제공된다.

조은장

조은장은 현재 큰터왓의 모습과 거로마을의 4․3과 관련된 장소를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의 사진이 보여주는 현재의 모습 뒤로 과거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4·3 때 이야기와 현재 풍경 사이의 간극은 오랜만에 찾은 큰터왓의 낯선 풍경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바라보는 긴 침묵의 시간만큼이나 길다.

스투디오

큰터왓의 집터 옆에는 대형폐기물을 처리하는 공장이 들어섰다. 큰터왓 집터에 서 있으면 계속 기계 소리가 들린다. 김누리와 이현태가 함께하는 스투디오는 각 장소의 소리를 녹음하고, 풍경을 영상으로 찍었다. 자동차 소리, 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 너머로 새소리가 들린다.

빈센트 쇼마즈

빈센트 쇼마즈가 진행한 <과거의 메아리들>은 현재의 소리를 매개로 과거의 사건에 다가가는 프로젝트였다. 참가자들은 옛 공회당 터와 옛 만평 부지를 찾아 그곳의 소리에 집중했다. 그 소리는 그곳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단지 지식으로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했다.

이지연

이지연은 4·3 이전의 그곳을 상상하며 큰터왓과 늙은이터를 그렸다. 4·3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볼 수 있었을 풍경이기도 하다. 그때를 향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지금을 지켜야 한다는 동기가 된다.

허성우

큰터왓은 허성우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고목이 기억하고 있는 큰터왓의 역사가 허성우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 역사는 음악이 되었다. 작곡한 허성우가 피아노를 치고, 표진호가 클라리넷과 보컬을 맡았다. 표진호의 스캣(scat)은 역사를 들려주는 나무의 언어다.

율리안 오트

율리안 오트는 카메라 오브스쿠라 기법을 사용해 학살이 있었던 장소를 사진에 담았다. 늙은이터라 불렸던 이곳에는 이후 농협창고가 지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공장으로 둘러싸인 공영주차장이 되었다. 어둡게 만든 작가 작업실 창문의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빛은 주차장의 풍경이 된다. 천장, 벽, 캔버스 위에 거꾸로 비친 주차장의 풍경은 건물 안과 밖을, 과거와 현재를 만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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