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한반도의 모양과 비슷..토평동(영천동)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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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한반도의 모양과 비슷..토평동(영천동)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6.26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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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는 제주돌인데 자연석의 모양을 그대로 남겨 오른쪽이 불쑥 나온 형태

토평동(영천동)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

 

위치 ; 서귀포시 토평동 산 15-1번지. 한라산 분화구 외륜산 북쪽 가장 낮은 곳
유형 ; 기념비
시대 ; 대한민국

 

 


4.3사건 막바지에 제주경찰은 무장대 섬멸을 위해 1952년 100전투 경찰사령부를 설치하는 등 엄청난 인력을 투입해 한라산을 샅샅이 뒤졌다.

토벌작전은 1954년까지 이어졌다. 그해 8월 새로 취임한 제주도경찰국장은 오랜 기간 잔존무장대 5명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자 9월 21일을 기해 금족령을 해제해 한라산을 전면 개방했다.

지역주민들에게 부과됐던 마을 성곽의 보초임무도 철폐했는데 이는 1948년 4·3사건 발생 후 6년 6개월만의 일로 사실상 도 전역을 평시 체제로 환원시킨 것이다.


한라산이 전면 개방됨에 따라 다시 등산의 발길이 이어지는데 그 시작이 같은 해 10월 5일 제주초급대학 학도호국단 주최로 120명 전원이 사각모를 쓰고 한라산을 오른 것이다.

당시 이들은 아흔아홉골과 어승생 사이로 올라 큰두레왓을 거쳐 정상에 올라 백록담 물을 떠다가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당시 산행에 참여했던 현용준 박사의 기록에 의하면 아직도 산에 무장대가 남아 있을지 몰라 총을 든 이들도 동행했다고 한다.


이어 10월10일에는 제주신보사가 주최한 '한라산 개방기념 답사'가 열려 길성운 도지사와 김창욱 검사장, 신상묵 경찰국장, 미 고문관 등 군경·교육·금융·언론계 인사 66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또 도청 산하 내무국, 산업국과 경찰국 합동으로 구성된 횡단도로 조사반이 한라산 횡단도로 공사를 위한 현지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제주대학 답사반은 한라산 전역에 대한 조사에 나서는 등 한라산 개방에 따른 도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외에도 한라산 개방을 기념하는 등반대회가 기관, 직장, 단체별로 잇따라 한라산 개방 후 1955년 봄까지 전국 15개 산악회가 한라산을 등반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개방 1년 뒤인 1955년 9월21일 이를 기념하여 백록담 북측에 '漢拏山開放平和紀念碑'(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를 세웠다.

신선부대장 허창욱이 글을 쓰고 동화임업 사장 이광철이 건립했다.


이와는 별도로 한국산악회 기록을 보면 백록담에는 개방평화기념비 말고도 평정기념비가 따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산악회는 1957년 1월 12일부터 29일까지 18일간 제2차 적설기 한라산 등반에 나서는데, 당시 홍종인 회장이 제주도 4·3사태 평정기념비를 바라보는 사진이 한국산악회 50년사에 실려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선배 산악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예전 백록담의 서쪽 정상부근에 비석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외륜의 절벽으로 밀어버렸다고 한다.

해서 예전 산악안전대 대원들이 백록담 서쪽 벽을 타고 오르는 훈련을 할 때 깨진 비석의 파편을 주의해서 살필 것을 부탁했었는데 확인할 수가 없었다.(제민일보 130419 강정효 글)


석재는 제주돌인데 자연석의 모양을 그대로 남겨 오른쪽이 불쑥 나온 형태이며 한반도의 모양과 비슷하다. 함경북도에 해당하는 위치에는 둥글게 연마하여 태극기를 음각하였고 글씨를 넣을 앞과 뒤 부분은 안으로 들어가게 연마했다.


빗돌 뒷면에는 '영원히 빛나리라. 제주도경찰국장 신상묵씨는 4·3사건으로 8년간 봉쇄되었던 한라보고를 갑오년 9월 21일 개방하였으니 오즉 영웅적 처사가 아니리요. 다만 전도는 기여된 자유와 복음에 감사할지어다.'라고 새겨져있다.


평화기념비가 들어섰지만 무장대 진압작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1957년까지 한라산 중턱에서 무장대와의 교전이 벌어졌다. 마지막 무장대 오원권을 그해 4월 생포해서야 한라산에서 총소리가 멈췄다.


필자의 선친의 증언에 따르면 1954년 늦은 가을 한라산 개방 기념으로 당시 제주상업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단체로 한라산을 등반했으며 이 때 카빈 총으로 무장한 경찰 두 사람이 동행하였다고 한다.
《작성 091018, 보완 1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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