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슬로 푸드 (Slow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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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슬로 푸드 (Slow Food)
  • 김종덕
  • 승인 2012.05.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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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김종덕(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가 사는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먹지 않고는 누구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은 음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왜곡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 재료의 대부분은 우리가 그 생산자나 생산과정을 알 수 없는 먼 곳에서 온 것이다.

그러한 음식재료를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서 재배가 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연료와 수송비를 들여서 수천, 수만 킬로미터를 수송해 온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어떤 사람이 생산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생산했는지, 그리고 생산과정에서 어떤 농약을 어느 정도 썼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역으로 그러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은 그것을 먹는 우리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는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므로 그것을 누가 먹을 것인지, 그것이 안전한지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시장에서 경쟁하여 이기고, 또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가급적 적은 비용으로 그리고 가급적 빨리 생산하는 것이다. 적은 비용과 빠른 자본회전은 경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농업에 대규모 기업농이 자리하고, 농산물 재배에 성장호르몬이 사용되고 유전자 조작이 이루어지고, 소, 돼지, 닭 등을 공장형 방식으로 사육하게 된 것도 경쟁의 산물이다. 영국에서 발병한 광우병 또한 경쟁 때문에 생긴 것이다. 남보다 소를 더 빨리 키우기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인 양의 내장을 먹인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현대의 먹거리와 농업이 이처럼 문제가 되자 이를 문제삼고 바로 잡기 위해 생겨난 운동이 슬로푸드 운동이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은 처음에는 패스트푸드를 대상으로 삼았다.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 광장 옆에 미국의 맥도날드가 진출하자 이탈리아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패스트푸드가 가져올 맛의 획일화를 반대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89년 슬로푸드 선언문을 공표하면서 슬로푸드 운동은 국제적인 규모로 발전하게 되었다. 슬로푸드 운동의 본부는 이탈리아 브라(bra)에 있으며 전 세계 50여개 국가에 550여개의 지부 그리고 70,000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2012년 현재는, 전 세계 153여개 국가에 1,300여개의 지부 그리고 100,000명의 회원) 오늘날 슬로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를 넘어 먹거리를 안전하게 생산하기 위한 영농방식, 생물학적 다양성 보호, 지구 생태계 보호, 느리게 살기 운동 등으로 그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의 활동은 본부와 지부의 행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슬로푸드 본부가 주도하는 주요 행사로는 "포도주 컨벤션", "미각의 전당"(Hall of Taste), "슬로푸드 시상대회" 등이 있다. 이중 슬로푸드 시상대회의 수상자들의 업적을 보면 이 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이들의 업적은 음식이나 요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영농과 생활방식의 복원과 보존, 토종 종자 및 식물의 보존, 토종을 이용한 지역경제에의 기여 등과 관련되어 있다. 각 국가에 설치된 지부에서도 매우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 중 일부를 보면, 포도농장 방문 및 시음, 특정나라의 음식으로 된 저녁식사, 토론회, 칼로리 저녁식사, 시음 및 시식회, 생산자들과의 대화, 술과 음식 궁합 찾기,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간담회, 특별 저녁식사, 음악을 곁들인 식사, 슬로 생활 심포지엄 및 식사, 다른 지부의 방문여행을 통한 상호이해의 증진, 가정음식 및 과일경연대회, 시음 워크숍, 초청특강 등이다.

 

슬로푸드 운동이 중점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지금은 많이 소멸된 슬로푸드의 복원이다. 현대에는 음식의 대부분이 패스트푸드가 되었지만, 전통사회의 음식은 모두 슬로푸드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철이 분명하여 좋은 음식재료가 생산되었고, 여기에다가 조상들의 뛰어난 지혜가 합쳐져 훌륭한 슬로푸드가 발전했다.

메주로 담근 된장과 간장, 고추장, 김치, 젓갈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곰탕, 설렁탕, 삼계탕, 각종 떡이나 묵 등은 현재의 과학기준에서 보더라도 완벽한 슬로푸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 훌륭한 슬로푸드들이 일부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일부는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늘날 이들 음식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수입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다. 또 이들 음식을 만드는 방법의 전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집에서 이들 음식을 직접적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드물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품화된 음식에 의존한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패스트푸드의 입맛에 빠져들어 우리나라의 음식을 외면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간편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패스트푸드를 선호한다.

 

소멸 위기에 처한 우리의 슬로푸드를 되살리려면 우리의 농업이 좋은 음식재료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소비자들이 우리의 슬로푸드를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애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음식재료를 생산하고, 그것으로 좋은 슬로푸드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면 슬로푸드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자라는 아이들 세대에게 우리나라 음식과 음식에 대한 입맛을 가르치는 일이 매우 소중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슬로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 반대로 시작되었지만, 그 운동이 지향하는 바는 음식을 넘어서 느린 삶을 실천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이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된다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슬로푸드 운동은 현대 음식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기여한다. 현대 음식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패스트푸드는 많은 양의 지방, 콜레스테롤, 소금, 설탕 등을 포함하고 있어 비만, 고혈압 등을 가져온다. 현대 농업의 특징인 대규모 기업형 농업이 공급하는 농산물이나 음식재료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기업형 농업은 화학비료와 농약 등이 대량으로 투입되는 高投入 농업인데, 이러한 농업 경영에 의해 재배된 농산물은 크롬, 납, 수은 등의 중금속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전통적인 농법으로 생산되는 농업과 농산물을 중시하는 슬로푸드 운동은 현대 음식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둘째, 슬로푸드 운동은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는 방법론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처럼 농업여건이 빈약한 나라에서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농업여건이 좋은 나라와 차별되는 농업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슬로푸드 운동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슬로푸드 운동은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친환경적인 영농활동을 할 수 있는 소생산자를 중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업인 대부분이 소생산자 이므로 이들을 중심으로 농업을 살리면 된다. 슬로푸드 운동은 어린아이들에 대한 미각 교육을 중시한다.

아무리 질적으로 우수한 농산물을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가 무관심하게 되면 그러한 생산을 계속할 수 없다. 슬로푸드에서 펴고 있는 미각교육을 도입하여 자라는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 농산물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우리 농업을 살리는데 매우 중요하다.

 

셋째, 슬로푸드 운동이 우리 사회의 빨리 빨리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라고 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빨리 빨리에 익숙해있고, 생활에 빨리 빨리가 일상화되어 있다.

빨리 빨리가 단기간에 고도의 성장을 가져오는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빨리 빨리가 가져온 부작용도 적지 않다. 공사기간의 단축은 건물과 시설의 붕괴를 가져왔고, 과속은 세계 제1위의 교통사고율과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또한 계속되는 경쟁에 의한 스트레스는 술과 흡연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고, 40대 남자 사망률 세계 1위를 가져왔다. 근래에 우리 사회에 문제가 되는 이혼의 증대, 그 중에서도 신혼이혼의 증대도 빨리 빨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느림을 강조하는 슬로푸드 운동이 확산된다면 빨리 빨리의 부작용이 많이 줄어 들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슬로푸드 운동이 확산되고 발전된다면, 수천년간 지속되온 우리의 농업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먹는 즐거움도 되찾게 될 것이다. 나아가 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속도의 폐해를 극복하는데도 일익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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