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해마다 입춘 전후 포제..장전리 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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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해마다 입춘 전후 포제..장전리 포제단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10.27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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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크고 평평한 현무암 자연석 다듬지 않고 받침돌 위에 놓아 상석을 설치하였다.

장전리 포제단

 

위치 ; 장전리 장전4길89번지
유형 ; 민간신앙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장전리_포제단상석
장전리_포제단

 


포제단은 장전리사무소 서남쪽 700m지점 ‘포젯동산’에 마련되어 있으며 마을의 액을 막고 복을 줄 것을 빌던 제단이다.

밭담 형태로 울타리를 둘러 한식 기와 건물을 짓고 매우 크고 평평한 현무암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받침돌 위에 얹어 놓아 상석을 설치하였다.

상석의 가운데 안쪽에 홈을 파서 위패석을 세웠다. 제단의 동쪽에는 돌을 2개 세우고 그 위에 평평한 돌을 얹은 시설이 있는데 망료위로 보인다.

포제는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는데 1651년 이원진의 탐라지에 포신묘(酺神廟)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15~17세기)에 이미 보급됐음을 알 수 있다.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마을 남자들이 포신지위(酺神之位)를 모셔서 마을의 무사안영을 빌며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제향회를 소집하여 제관(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집례, 대축, 알자, 찬자, 봉향, 봉로, 봉작, 전작, 사준, 전사관)을 뽑고 제비를 모아 입춘 후 첫 정(丁)일이나 해(亥)일 자시에 봉행한다.

제물은 희생으로 흑돼지 수컷 한 마리를, 메(도량서직), 녹포(원래는 사슴고기였으나 요즘에는 쇠고기), 명태, 생선, 오과, 생감주, 폐백 등을 올리고, 전폐례, 초헌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음복, 철변두, 분폐 순으로 노천에서 지내다가 2004년 녹색농촌체험 사업으로 한옥 제단과 제관대기실을 신축하였다.(현장 안내판) 1651년은 1653년(효종4년)의 오기로 보인다.

여기서는 지금도 해마다 입춘 전후에 포제를 지내고 있으며 녹고뫼 홈페이지에 따르면 酺神과 里社之神을 함께 모시는데, 행제시에는 里社之神을 먼저 모신다.

과거에는 정월에 리사제, 7월에 포제를 나누어 지냈다고 한다. 제관은 모두 12명으로 전에는 전사관집을 제청으로 삼아 7일 동안 정성을 드렸으나 지금은 포제단 옆 포제청에서 3일 정성을 기하고 있다.

제일 5일 전에 마을 출입구에 금줄을 치고 희생으로는 돼지 1마리씩 올렸는데, 옛날에는 리사신에게는 돼지 1마리를 올리고 포신에게는 돼지머리만 올렸다고 한다.
《작성 1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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