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13)"..'오아시스의 길'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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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13)"..'오아시스의 길'을..(1)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2.13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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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3코스 탐방기)용수포구-저지마을,'배려와 따뜻한 아름다움이..'

 

2월11일 아침 도로모습
 

 

눈의 풍경 / 서정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까치집에 눈이 쌓인다
바람은 때때로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
우리 앞에 펼쳐 놓고는
설레는 나를 유혹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눈이 오게 할 수 있을까
온갖 거짓과 위선, 사랑과 행복까지도
다 덮어놓고는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마음과 욕심은 조금만 나오게 하고
남을 위하는 마음과 작은 것에 만족하는 기쁨을
많이 나오게 하여
삶이 따사롭게 할 수 있을 것을


나뭇가지의 눈이 녹아
물방울로 떨어지는 놀이터
어느 정도의 고통은 나를 긴장시켜
겨울 찬바람에 맞설 용기를 준다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길이라면..차라리 쉬어가도 좋은 날이었다.

비록 매주 토요일은 올레를 걷는 날로 정해 지난 4개월여를 열심히 걷고 있는 중이지만 이날(2월11일) 하루만은 진짜 걷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높았다.

연 이틀간 계속 폭설과 강풍에 제주도가 꽁꽁 묶인 3일 째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전날 비록 눈이 쌓이고 눈도 계속 내렸지만 다음날 올레걷기를 기다리는 유인택에게는 호기있게 "당연히 걷는다"고는 말했었다. 하지만 이날 올레길 날씨는 걷기를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눈발과 바람과 추위와 계속 싸워야 했다.

올레길을 걷는 2월11일(토요일), 이날 오전 12시까지는 눈이 내린다는 예보에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잔뜩 흐린 날씨에 곧 눈이라도 내릴 것 같았고 바람 또한 창문을 두드릴 정도로 세차서 이날 만은 따뜻한 방을 떠나기가 정말 싫은 날이었다.

어제(2월10일) 퇴근할 때 유인택이 “올레는 몇시에 출발입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제주시에서 아침 9시 출발, 10시에 저지마을회관에서 만나 출발점으로 간다”고 했던 터였다.

11일 새벽에 일어나 계속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아침 8시30분이 되자 드디어 결정했다.

"오늘은 쉰다.."

걷기를 단념하고 먼저 유인택에게 전화를 해 봤다.

전화를 받지 않아 나는 우선 회사 카톡에 '오늘 올레걷기는 쉰다'고 올려놓고 계속 방관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9시가 되자 유인택이 연락을 해 왔다.
“샤워를 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면서 “이미 걸을 준비를 다 마치고 차를 타고 떠나려는 중”이라며 “올레를 안 걷는다면.. 그럼 혼자라도 다른 곳에 가야겠다”는 얘기였다.

나는 “아니야...금방 준비하고 나갈게.”하고 부랴부랴 대강 겨울옷만 걸쳐 입고 떠난 것이다.

13코스의 출발은 그런 끊임없는 망설임과 동료의 격려와 함께 시작됐다.

이날 출발시간은 늦었지만 다른 올레코스보다는 14.8km라는 비교적 짧은 거리가 걷는 일을 충동하긴 했다.

오전 9시30분경 신제주에서 둘이 만나 용수포구로 가는 동안 제주시쪽은 가는 길마다 눈이 쌓이고 길이 얼어있는 곳도 있어 조심조심 운전하면서 가야 했다.

 

 

 

용수포구에 차를 세우고 출발한 시간은 10시40분이 거의 다 돼 가고 있었다.

그렇게 10시45분이 되어서야 어렵사리 출발한 올레13코스..

바람이 많이 부는 용수포구옆 절부암길 따라 좁은 길을 오르니 용수포구와 차귀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오래된 나무가 서 있는 곳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마치 곶자왈을 보듯 돌위에 나무뿌리가 자라고 산림청에서 만들어놓은 안내문에는 박달목서 자생지라는 소개돼 있어 특별했다.

신령함을 보여주는 이 나무가 주는 이미지는 오래된 마을이라는 역사를 보여주는 듯한 신비로움이었다.

 

 

 

 

 

키작은 집들이 줄지어 서 있는 아주 조그만 이 용수리마을을 지나니 밭길이 계속 이어지는 길이었다.

이곳에서도 대파나 브로컬리가 주된 농업이었다.

이 마을은 수량이 많은 곳인 듯 곳곳에 숨어있는 습지가 참 많았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어나와 대로변으로 이어진 길에는 현수막에 용수 철새도래지를 일시적으로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밭길이다.

조그만 호수같은 습지가 나오는 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특전사 숲길로 안내된다.

 

 
 
 

특전사 숲길은 제주도에 주둔하던 제13 공수특전여단의 병사들이 제주올레를 도와 낸 숲길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50명의 특전사 대원들이 이틀간 총 길이 3km, 7개 구간에 걸쳐 사라진 숲길을 복원하고 정비했다는 코스다.

하지만 이 숲길은 보통의 숲길과 조금 달랐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돌담이 그동안 봐 왔던 잣성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마치 마을이 있었던 것처럼 아주 체계적으로 잘 만들어진 돌담이 계속 이어져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조그만 마을터였다.

4,3때 소개된 후 불이 들어오지 않고 물이 없어 사람들이 다 떠난 마을이었다.

이 내용은 이곳을 나와 점심을 먹을 때 우연히 만난 오원국 전 마을이장의 설명을 듣고 알게 된 사실이다.

오 전 이장은 “이곳은 캣밧이란 곳으로 예전에는 사람이 살았으나 전기와 생활용수가 공급되지 않아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됐고 4,3때 소개될 때 불타 사라진 마을”이라고 얘기해 줬다.

이 특전사길은 돌밭들길이었다.

 

이곳에 들어서자 바람과 함께 싸락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런 수많은 돌담길을 지나면서 5km 지점을 돌파했다.
9km가 남았다는 표시를 지나면서는 밭길과 들길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밭을 갈다 놓아둔 밭속 하얀 눈이 묘한 그림을 하나 그려놓은 모습도 보이고..

그 길을 조금 더 걸어 고사리숲길이라 안내된 곳으로 들어갔다.
고사리가 무성한 숲속이라 그런 이름을 붙여놓았다는 설명인데 얼마나 고사리가 많았으면 그런 이름이 붙었을 까 할 정도로 궁금했다.

 

하지만 그 추위와 바람에 고사리를 바라다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올레길은 꼬불꼬불 이어진 숲속길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숲속길을 다 나오자 조그만 무인카페가 하나 서 있었다.

커피와 차 등을 놓아둔 조그만 카페였다.

비록 물도 없었고 가스도 다 떨어져 아무 것도 마실 수는 없었지만 이 무인카페는 각종 차종류와 함께 커피 물 가스통을 놓아 두어 마시도록 한 올레꾼을 배려한 무료,무인카페였다.

조수리청년회가 만들어놓은 '올레길의 오아시스'라는 무인쉼팡(쉼터)이었다.

우리 둘은 이곳에 앉아 유인택이 가져온 커피와 쥬스로 목을 축이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조수리 청년들의 그 올레꾼을 위한 배려가, 그 마음씀씀이가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차를 한잔 하고 나오니..
웃드르권역 낙천리아홉굿마을이 1km가 남았다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대로를 따라 걷는 길이었다.
대로를 따라가다 보니 다시 들길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참으로 아기자기 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밭길 옆으로 형형색색의 의자가 두 개씩 놓여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1천개의 의자가 놓여있다는 아홉굿마을 낙천리로 들어선 것이다.

 

 

 

낙천의자공원..


제주도의 돌하르방 예술가 양기훈 선생의 아이디어로 창조한 의자마을로 유명해진 곳이다.


우리는 몸도 마음도 추워져서 의자마을 안에 있는 수다뜰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걷기로 했다.

이 식당은 마을주민들의 사랑방인 듯 5-6명의 손님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옛날 추억의 도시락을 파는 곳이었다.

이 식당 주인은 도시락보다도 라면을 먹으라고 권했다.
마침 찹쌀밥이 있으니 그냥 드리겠다고..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을주민들인 듯한 손님들에게 캣밧에 대해 물어봤다.

 

 

이곳에 마침 바로 직전 낙천리장인 오원국 전 이장이 있었던 것이다.


오 전 이장은 "낙천리는 바다도 없고 오름도 없고 곶자왈도 없어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는 곳이어서 의자마을을 만들게 됐다"며 마을소개를 먼저 했다.

그리고 사라진 마을 캣밧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던 것.

특히 이곳에는 지난 2015년 12월 수원시가 유순혜 작가가 디자인한 의자 조형물 8개와 의자에 전기를 공급하는 쏠라아트 판 1개를 기증했는데 이 조형물은 제주 아홉굿 의자마을 수다뜰 왼쪽에 설치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작품명은 ‘Together thinking chair(생각의자)’로 사람 중심의 시정 철학을 반영, 사람을 형상화한 의자 조형물이 서 있었던 것.

오 전 이장은 "이 조형물은 수원 화성을 모형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낙천리가 소개한 마을소개 내용이다.

하늘이 내려줬다는 낙천! 천가지의 기쁨을 간직한 마을 낙천! 물맛이 너무좋아 사색에 잠기게 된다는 서사미마을(西思味村)! 낙천리의 지명은 예전에는 서사미 또는 서천미 등으로 불려져 왔습니다.

그 뜻을 살펴보면 西는 조수리를 기점으로 서쪽을 의미하는 것이며, 사미(思味)나 천미(泉味)는 샘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후 낙세미라고도 불리어졌는데 이는 샘이 풍부한 고을 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뽀리동산과 저갈빌레 사이에 산돼지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저갈물은 낙천리의 심장이며 역사의 근원지입니다.

온갖 야생조류들이 중지를 틀고 있는 오빼미 아홉굿과 원시림이 우거진 이곳에 여산 송가금씨가 두 아들을 데리고 양질의 점토를 찾아 안착한 후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불미업(대장간)이 이우러지게 됩니다.

불미의 주재료인 점토를 파낸곳에 물이 고여서 우마와 아낙내들의 물허벅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으며 지금은 민물맊시와 농업용수를 조달하는 수원지로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인심 좋은 마을 입니다.

아홉굿이라는 마을명은 연못이 아홉 개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 의자가 있는 한곳에는 '이곳에 앉아 하늘을 보세요'라고 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글도 남아 있었다.

이 의자마을안 해골그림과 공연장을 지나 잦길이라고 쓰여진 길로 들어섰다.
돌담을 나지막히 둘러 길을 낸 아름다운 잦길이 이어지고 이곳에도 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이 길을 지나니 다시 밭길이 이어지고.. 6km가 남았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그런데..9km 지점을 지나자 엄청난 대규모 공사판이 나타났다.
대역사를 시작하는 듯..분지형인 이 지역을 모두 깎아 동림원이라는 공원을 만드는 모양이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그 엄청난 공사판 모습에 입이 다믈어지지를 않았다.

이처럼 제주도는 지금, 이곳만이 아니라 마을 곳곳이 각종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내용이 많아 2번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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