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특별전
도쿄 롯폰기(六本木)의 국립 신미술관을 꼭 들러서 <쿠사마 특별전>을 관람하랍니다. 국내에서도 여러 번 전시회가 있었다지만 나는 '쿠사마'가 누군지 잘 몰랐습니다. 전시장엘 가보니 입장권을 사는 데만 40분. 전시장 내부로 들어가는 데도 거의 한 시간 소요되었습니다. 많은 인파를 보고 일본인의 '쿠사마'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설치 미술가라고 합니다. 책도 수십 권을 저술한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1929년생이니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의 예술가입니다. 물방울무늬, 거울, 그리고 풍선을 소재로 자기만의 세계를 잘 표현하기로 유명하답니다.
그녀는 어렸을 적에 정신 착란증을 앓게 됩니다. 학습지진아로 왕따를 많이 당했습니다. 악몽과 아픈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켰기에 그녀의 얼룩진 삶이 더욱 돋보입니다. 삶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시각적 표현을 통하여 자기 삶을 잘 표현합니다. 질병을 통하여 그녀만이 볼 수 있는 환영으로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해 냈습니다. 어느 분야든지 남과의 차별화됨이 중요한데 그녀는 질병의 덕을 본 셈입니다.
<쿠사마>전을 관람하기 전에 츠키지(築地) 시장 근처의 일본식 정원을 구경했습니다. '하마리큐 온시 테이엔'(浜離宮恩賜庭園)이라는 에도(江戶)식 정원입니다. 그곳에 300년 된 소나무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높이 자라는 형이 아니고 옆으로 퍼지는 형의 소나무입니다.
나무줄기에 힘이 없어 수십 개의 지지대로 받치고 있습니다. '<쿠사마>전이 열리는 국립 신미술관 앞에 있는 나무마다 붉은 바탕에 흰 물방울 모양의 천으로 감싸여 있었습니다. 300년 전의 소나무도 잘 보존하고 있지만 미술관 앞 나무를 멋지게 장식하는 일본인들의 디자인 감각이 부러웠습니다.
일본은 겉모습이 우리네와 아주 유사합니다. 그래서 그네들의 장점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가 무려 25명이나 됩니다. 우리나라는 평화상 외 다른 분야엔 전무합니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장인정신’의 차이라고 봅니다.
관람을 마치고 소품을 하나 사려고 한 30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 반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더 지체했다간 귀국 비행기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의 '쿠사마'에 대한 자부심이 여유로운 얼굴에 잘 나타나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백남준이라는 세계적인 설치 예술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분수에 맞게 충분히 대접을 했었던지… 일본 사람들의 예술가에 대한 자부심과 대우는 우리네와는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쿠사마 특별전>(2월 22일 ~ 5월 22일)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었지만 밀려드는 관람객은 놀라다 못해 나를 질리게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술가를 통하여 국격을 높이고, 문화수준을 한층 높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싶습니다.
유능화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