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하늘이 낸 효성..대림리 김흥조 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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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하늘이 낸 효성..대림리 김흥조 효자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9.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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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 앞에는 돌로 홍살문 모양을 만들어 세워


대림리 김흥조 효자비


대림리 김흥조 효자비 金興祚孝子碑
위치 ; 한림읍 대림리 마을에서 대림4동으로 들어가는 길가
시대 ; 조선
유형 ; 효자비

비석의 크기 ; 너비 47cm, 높이 105cm, 두께 20cm

 
 

대림리 마을에서 대림4동으로 가는 길가에 위치한 이 비석은 특이하게 부부의 이름이 들어가는 효자비이다. 앞면에 "孝子 通政大夫金興祚 淑夫人密陽朴氏 閭"(효자통정대부김흥조 숙부인밀양박씨 려)라고 큰 글씨로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효행, 옆면에는 세운 날짜와 자손들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公諱興祚 籍慶州 天性事親至孝 昏晨之省 甘暖之供 禮志俱養 暫不離仰 父病危急終焉 回甦之望禱天祈 地日夜呼泣 斷指湊血涓涓灌口 更生幾絶之命 鄕隣咸稱出天之孝 高宗丁巳 自兩里擧賓修報營庭卽下 完文同庚申 御使行又給 褒揚之題 宜蒙政之樂 世事滄桑 以至于今 卓異之行 念其草野泯沒 以謀不朽之事 玆立棹楔 以與後人之觀感焉'
檀紀四二八七年甲午三月

1954년에 세운 이 비석의 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공의 이름은 흥조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타고난 품성으로 어버이를 섬기는 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고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의복을 만들어 드리며 禮와 뜻을 다 갖추어 봉양하였다.

아버지의 병이 위급하여 끝내 회생할 가망이 없자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며 밤낮으로 소리내어 울다가 손가락을 끊고 피를 내어 입에 넣으니 이미 끊어졌던 목숨이 되살아났으므로, 마을에서는 모두가 '하늘이 낸 효성'이라 하였다.

고종(철종의 誤記) 丁巳(철종 8년 1857)에 마을에서 사실을 들어 관아에 보고하니 즉시 완문이 내렸으며, 庚申년 즉 철종 11년(1860) 어사의 행차 때에 또 포양의 지령을 내려, '한 가정을 화목하게 한 행적'을 기리었는데, 세상 일이 변화가 많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행실이 초야에 묻혀 버릴 것이 염려되어 오래도록 전하여지길 도모하고자, 이에 작설을 세워 뒷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어 떨쳐 일어나길 바라노라.(북제주군 비석총람 72쪽)

비각 앞에는 돌로 홍살문 모양을 만들어 세웠다. 홍살문은 공식적인 귀신을 모시는 정문에 설치하는 것으로 붉은 색이나 뾰족한 모양이 모두 잡귀를 물리치는 뜻이 있다. 붉은 색은 벽사(辟邪)의 색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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