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빨래터 바로 옆 큰 바위 2개.. 수산1리 부부석(夫婦石)
상태바
[향토문화] 빨래터 바로 옆 큰 바위 2개.. 수산1리 부부석(夫婦石)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4.22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자 형상 175cm, 여자 형상 160cm의 이 돌들은 표선면 성읍리 좌보악에 나란히 있었다고 한다

수산1리 부부석(夫婦石)

 

위치 ; 성산읍 수산1리 사무소 앞(마을회관 앞 폭낭 그늘)
시대 ; 조선~
유형 ; 전설유적

수산1리_부부석 위치.

 

수산1리_부부석


수산1리 사무소 앞 새마을창고와 보건진료소 일대는 큰 연못이었다.

동쪽의 작은 연못은 식수로 이용했고, 서쪽의 큰 못은 마소급수와 빨래터로 이용했는데 이 못을 ‘도리못’이라 했다.

빨래터 바로 옆에 큰 바위 2개가 나란히 누워 있었는데 이를 夫婦石이라 불렀다.

수산리는 연평균 강우량이 1,500mm 내외로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이다. 지형상 한라산 동쪽으로 모여드는 물줄기 때문에 하천이 자주 범람했다.

하천은 수산1리 상동과 천외동을 나누면서 고성리로 빠져 나간다. 부부석은 바로 이런 급류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남자 형상 175cm, 여자 형상 160cm의 이 돌들은옛날 표선면 성읍리 좌보악에 나란히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해인가 엄청 큰 비로 인해수산리 윗지경인 속칭 쇠선동산으로 밀려 내려왔다.

또 몇 년 후 큰 비가 내려 홍수가 터지자 여자바위는 웃물밭을 거쳐 소신내에 걸렸고, 남자바위는 지금은 매립된 도리못가에 와서 멈추었다.

그러니까 두 돌은 남자바위가 먼저 이동하면 여자바위가 따르고, 여자바위가 먼저 이동하면 남자바위가 따르는 식으로 좌보악→쇠선동산→웃물밭→소신내→천외동→상동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바위들이 자리바꿈을 한 후 몇 년 동안은 큰 비가 내리지 않아 여자바위는 천외동 진빌레에 머물고 남자바위는 도리못가에 있었다.

이 즈음에는 흉년이 들었는데 마을에서는 이 두 바위가 부부석인데 갈려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도리못에 닜는 남자바위는 밤이면 섧게 운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런 흉흉한 소문이 떠돌자 윗동네에서는 천외동 진빌레에 있는 돌을 옮기겠다고 하고, 천외동에서는 도리못의 돌을 옮기겠다고 다투다가 당시 세가 큰 상동 사람들이 여자바위를 가져다가 현재의 위치에 다정하게 놓았다.

이후부터는 물난리나 밤에 들이는 괴상한 울음소리도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성산읍지 799~800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