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고,양,부 삼성신화는 부처님 제자인 발타라 존자의 불교 전파였다(?)."
상태바
(기획특집) "고,양,부 삼성신화는 부처님 제자인 발타라 존자의 불교 전파였다(?)."
  • 이문호
  • 승인 2023.05.01 22: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문호 전북대 초빙교수 /고양부 3을나의 3의 통신수학-역사적 분석을 통한 3성혈 신화 해석

 

제주에 탐라국을 세웠던 고,양,부 3성 신화는, 인도의 물의 신 탐몰라주에서 탐라가 된 것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발타라 존자가 B.C 563-483년경 9백명의 아라한과 같이 탐라에 왔다는 주장이 제기돼 이는 우리나라 불교 전래의 시기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를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물을 통한 불교의 전파라고 해석하고 있는 이문호 전북대 초빙교수는 고양부 삼성과 영실 존자암, 온평리 혼인지 등 혈거시대와 신성한 물인 삼다수를 찾았다는 점에서 거의 일치한다며 이를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해석하고 있다.

본지는 창간 14주년을 맞아 고양부 삼성 신화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점과 제주도 불교전래의 중요한 지적이라는 점에서 이문호 교수가 그동안 정리한 논문을 전문 게재하기로 했다.(편집자주)

 

 

삼성혈신화해석 : 한라 설문대 속살(內肉)과 혼(魂):생명주(生明紬)에서 세명주(細明紬)로

-고양부 3을나의 3의 통신수학-역사적 분석을 통한 3성혈 신화 해석

 

 

 

요 약

물의 신(神), 인도 탐몰라주(耽沒羅洲:‘몰’자와‘주’자가 탈락되면서‘耽羅’) 발타라(跋陀羅, Bhadra) 존자가 BC 563-483년경에 900명의 아라한(弟子)과 같이 탐라에 왔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물(神聖性, Heiligkeit)을 통한 불교의 전파다.

고양부(高良夫)의 3성의 흔적은 첫 번째가 3성혈(穴)과 영실의 존자암의 굴(穴) 주거로, 혈거(穴居) 시대를 엿볼 수 있다. 두 번째가 고양부 3성의 3, 3의 3배수가 9임을 착안하면 발타라 제자 900(=3*3*100)명의 분해시 기본수인 3과 맥을 같이하는 연결고리다.

이때, 3은 천지인(하늘 땅 사람 天地人), 종교적으로는 결혼(結婚), 희망(希望)수 또는 완전수(完全數Complete Number)로 제주 문화가 곳곳에 쉼 쉬고 있다.

예를 들어, 3성혈(三姓穴)의 3, 1도동, 2도동, 3도동의 3, 3다도(三多島)의 3, 3무도(三無島)의 3, 3재도(三災島:水災,旱災,風災)의 3, 고양부 3성의 3, 집 올레 정낭(錠木)의 3 그리고 발타라(Bhadra) 존자의 제자 900(=3*3*100)명의 3 등으로 공통 인자(因子)가 3이다. ‘3의 섬(島)’이다.

논문은 1,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탐라의 이름이 인도의 탐몰라주에서 왔고 900명의 인도 불자 아라한들이 고양부 3성이 선대란 것을 추정했고, 2부에서는 인도인의 풍속에서 우러난 정낭 기본 원리가 현대이동통신과 DNA유전자생명과학에 어떻게 진화 발전해 쓰이고 있는지를 조명한다.

 

Ⅰ. 서 론

1. 기록 이전의 제주의 先史 역사

 

언제부터 제주에 사람이 살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김봉옥의 제주 통사에 기록을 요약했다.

 

① 1979년 제주대 박물과 애월읍 광령리 조개무지 발굴. 기원전 4세기 갈색무늬 토기 발굴.

② 1985년 대정읍 상모리 선사유적 공열토기(孔列土器) 발견.

③ 1986년 조천읍 북촌 토기, 골각기(骨角器) 발견.

④ 1988년 한경면 고산리 큰사발 발견, 1994년 가는 돌칼 6천여점 발굴로 기원전 8000년 전후 신석기 시대 초기로 상당한 문화수준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

⑤ 1997년 제주시 삼양동 원형수혈 주거지 유적 발견, 제주시 삼성혈 혈거지 및 삼사석비(三射石碑) 발견.

그림 1. 고양부의 삼사석비와 탐라국발상지비
Figure 1. Samsa Stone Monument in Goyangbu and Monument of Tamla Birthplace

 

2. 제주의 옛 이름

신라 27대 선덕여왕 황룡사 9층 석탑 4층에 탁라(乇羅) 새겨져 있고 제주 탐라의 옛 이름으로 고려사지리지에 보면 1105년(숙종 10년) 탐라를 탐라군으로 개칭했다. 1295년 충렬왕 21년에 탐라를 제주(齊州)로 고쳐 목사와 판관을 두었다.

고려 대장경 법주기 탐모라주(耽沒羅洲) 인도어에 비롯됨을 밝혀졌다. 불교가 전해져온 성지로 구전에 의하면 절 오백 당 오백(寺五百 堂五百)이란 말이 있고 한라산 영실 불래악(佛來岳: 속칭 볼레오름)에 존자암(尊者庵)이 있다. 볼레오름(보리수:석가모니가 인도의 보리수 밑에서 도를 깨달은 나무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다.

1488년-1506년까지 제주에 귀향 온 홍유손(洪裕孫 1431-1529) 남긴글에 존자암에 대한 글이 있는데 존자암은 삼성(三姓: 고을나[髙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이 처음 일어날 때 비로소 만들어 졌고 3읍(三邑: 제주목[濟州牧] 정의현[旌義縣] 대정현[大靜縣])이 정립된 뒤까지 오래 정해졌다.

1601년 김상헌(金尙憲 1570-1652) 남사록에 존자암기가 나오고 1918년 이능화(李能和 1868-1945) 조선불교 통사에 보면 발타라 존자 권속 9백 아라한(阿羅漢; 불법을 닦아 세상 사람들에게 공양을 받을 만한 공덕을 갖춘 사람)과 더불어 탐 몰람주(탐라)에 나눠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법주기에는 발타라 존자가 석가가 돌아가신 뒤 기원전 540년 전후 9백의 아라한이 탐라에 나눠 살았다. 이 때는 2540년 전이다. 이는 옛 삼한(三韓) 시대이며 중국 춘추시대다. 근거는 제주 마을마다 절왓(寺田) 또는 절터왓(寺地田) 땅이름이 있고 그곳에 기와 조각이 나온다.

서광서리 넙게오름의 정상에 물통 근처에서도 기와장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탐라국이나 고려 시대부터 절을 지은 흔적인 절왓으로 추정되어 오랜 세월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고촌(古村)으로 봐진다.

존자암 터는 불래악(佛來岳)의 중턱 해발 1200m 지점에 있다.

본 논문의 구성은 1장 서론에서 기록이전의 제주의 先史 역사, 2장에서는 발타라 존자와 삼성혈의 연결고리, 3장에서는 발타라의 지능집단 900명의 리더 고양부(高良夫), 4장에는 3을나(乙那)의 1도, 2도, 3도동, 5장에서는 제주도(濟州道)의 삼성설화(三姓說話)에 대해 알아보고 6장에서 결론을 맺는다.

 

Ⅱ. 발타라 존자와 삼성혈의 연결고리

발타라(Bhadra) 존자의 제자가 왜 900명인가? 900명과 삼성혈(三姓穴)의 3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면 900(=3*3*100)명의 3에 있다.

900명의 9자를 보자. 불교의 9(=3*3)자를 보면, 그의 의미는 삼보(三寶)의 구품정토(九品淨土) 구품정인(九品定印)으로 설명되는데, 사람이 죽어서 구천(九天)을 떠돌다 업보(業報)의 등급에 따라 나뉘어 간다는 연기(緣起) 논리다.

제자 900명의 숫자는 불교사상에 기인한 숫자의 상징성(象徵性 Symbolism)이 매우 크다. 불교에서 9는 지고의 영적(靈的)인 힘을 상징하면서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믿었던 아홉 개의 천체(天體), 즉 '구천(九天)'. 또한, 구척장신(九尺長身), 구우일모(九牛一毛), 구중궁궐(九重宮闕) 구룡폭포 등도 9인데, 99세를 '백수(白壽)'라 칭하는 것은 100(百)에서 하나(一)를 뺀 것인데 9는 장수(長壽)를 뜻한다.

우주를 품고 온 세상을 담았다는 바둑판이 경우도 가로 19줄, 세로 19줄로 그려진 것도 반상(盤上)에서 세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천원(天元)'을 모든 방위에서 10번째에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19*19'의 바둑판이 됐다.

예로부터 숫자 9는 인간사회에서는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수이고 십진법상으로 숫자 '10'은 신(神)의 영역에 해당하는 완벽(完璧)한 수(數)이다. 여기에서 1이 못 미치는 9를 인간의 세계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수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900은 ‘인간이 다다를 수 9와 신의 완벽한 수 100의곱’. 한라산의 어승생(御乘生) 아흔 아홉골(99谷)은 100에서 하나가 모자라 호랑이도 못살고 임금도 태어나지 못한다는 99, 인간 최고의 수의 Double.

그림 2. 삼성혈과 고양부 333
Figure 2. Samsunghyeol and Goyangbu 333

 

 

900의 9는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수, 9의 분해에 대한 기본수는 3*3*100, 소수(素數Prime Number) 3의 역사적으로 뚜렷이 남아 있는 게 제주시 지역 동(洞)이름인 1도동, 2도동, 3도동.3개 동 구분은 삼성신화에 그 뿌리를 둔다.

삼성설화(三姓說話)에 삼성인(三姓人)의 각(各) 활을 쏘아 소거지(所居地)를 정한바 고을나(高乙那)의 거지(居地)는 등일도(等一都), 양을나(良乙那)의 거지(居地)는 등이도(等二都), 부을나(夫乙那)의 거지(居地)는 등삼도(等三都)라 하였다. 필자는 50년 전 제주시 3도동 701-11번지에 집을 짓고 살았던 서사라, 그곳은 부을나의 본향(本鄕)이다.

 

그림 3. 한라산 영실 존자암과 삼성혈 토굴
Figure 3. Hallasan Yeongsil Jonjaam Rock and Samsunghyeol Crypt

 

Ⅲ. 발타라의 지능집단 900명의 리더는 고양부(高良夫)인가?

한라산 영실 존자암 터에는 상고시대 부도(浮圖)와 십평(十坪) 전후의 자연 동굴이 있고 자연석으로 된 불상이 있다. 역사적으로 김정(金淨)의 ‘존자암기(尊者庵記)’에는 “존자암은 고·양·부(高良夫) 삼성(三姓)이 처음 일어났을 때에 세워졌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김상헌의 남사록에도 같은 내용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자료를 볼 때, 고·양·부(高良夫)는 발타라 존자의 인도권속 9백여명이 아라한(阿羅漢)의 지능집단(知能集團 Intelligence Group)의 3개 그룹(3*300명)이 리더(Leader)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3개 그룹으로 나눈 이유는 3의 불교의 완전 수 때문이다. 3성혈 3과 고양부 세사람의3, 즉 3*3(三三) 곱하기 신(神)의 수 100하면 900명. 3의 Key Point. 4성(姓)이 아닌 3성인 고.양.부다.

삼성혈의 비밀은 발타라 존자의 지능집단 900명에 있고 실재적인 물증은 현재 제주시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 세 개 동사무소 명칭이다.

다음은 고려대장경을 보자. 고려 대장경(1011-1087) 법주기에 따르면 석가가 돌아간 뒤 기원전 540년 전 후에 인도 발타라 존자 권속 900명이 인도 탐몰라주에서 지금이 제주에 정착하면서 그룹 이름이 탐라(몰자와 주자 탈락)이고 제주에 살면서 불교를 전파하였다고 한다.

절을지은 흔적인 절왓(寺田)은 제주시 오등동, 한림귀덕리, 모슬포 모슬봉 기슭등 곳곳에 있다. 다음은 인도와 네팔이 히말리아 산 줄기 산촌에 가보면, 돼지 통시와 들판의 햇빛에 말리는 쇠 말똥과 집 올레 입구 정낭 셋을 볼 수 있는데, 제주의 웃드르에도 인도와 같은 풍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근래에는 집 올레 정낭이 출장(?)을 나와 제주 도청 입구, 일주도로 버스 주차장, 도로의 길안내 방향 표지 판 및 밭과 과수원, 가족묘지 공원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낭 셋.

그림 4. 제주 정낭
Figure 4. Jeju Jeongnang

 

Ⅳ. 3을나(乙那)의 1도, 2도, 3도동

삼성신화는 고·양·부(高·梁·夫) 세 성씨의 시조 출현과 정착 내력, 그리고 고대 탐라의 역사적 경험을 전승한다. 제주도 신화 로그들의 옛 기록에 이르기를, 태곳적에는 (어떠한) 사람과 물상(物象)도 없었는데, 세 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 나왔다.

제일 큰 사람이 양을나(梁乙那)요, 다음이 고을나(高乙那)요, 셋째가 부을나(夫乙那)이다. 세 사람은 황량한 들판으로 다니면서 사냥을 했는데,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고 고기는 먹었다. 하루는 인(印)을 찍어 봉한 나무 궤짝이 동쪽 바닷가에 닿는 것을 보았다.

쫓아가서 열어 보니 그 궤짝 속에는 돌함이 들어있었으며, 동시에 붉은 띠에 자주색 옷을 입은 사신이 따라왔다. 돌함을 열어 보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망아지, 송아지, 오곡(五穀) 씨앗이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민속문학사전을 인용했다.

영실(靈室) 어원을 [제주의소리]에 발표하면서 말 끝에, 3을나의 ‘나(那, 어찌 나)’자가 어찌 나(Where) 자라고 전화로 이창화 교래분교 교장에 설명했더니 이에 대한 답을 풀이해 왔다. 제주말에 ‘도나리(徒那里)’란 말이 있다.

이 뜻은 ‘이웃(鄰,隣) 또는 옆‘으로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다. 예를 들어, 방목하는 우마(牛馬)가 있는데, 오름 목장에서 찾지 못해 물을 때 '남송이 오름 동쪽 도나리에서 봤수다'라고 답하는 방식이다. 또한 이름에 장소를 붙여 쓰는 말로 전주여자가 제주로 시집왔을 때, ’전주댁‘으로 곧잘 쓰인다.

~을나(乙那), 삼을나(三乙那)

을(乙) ; 천간(天干) 제이위(第二位) 天干, 조야(鳥也) 새, 굴야(屈也) 굽힐, 굽히다. 어장(魚腸) 생선 창자, 부수명(部首名) 새을 변.

이두식 국자(吏讀式 國字)

乤(할)=할포(乤浦)=함경도(咸鏡道) 땅이름.

乫(갈)=갈산(乫山)=황해도(黃海道) 땅이름,

乮(묠)=봉호(封號)=王이 봉(封)하여 내려 준 호(號), 종실명(宗室名), 묠산군(乮山君) 종실 이름.

乬(걸)=괘야(掛也) 걸을, 걸다.

걸오동(乬吾洞)=두만강북(豆滿江北)의 지명

乭(돌)=人名. 삼돌(三乭)이 사람 이름,

乺(솔)=도쇄구(塗刷具) 벽에 바르는 솔, 地名. 솔하천(乺下川)=함경도(咸鏡道) 땅 이름,

乼(줄)=승조(繩條) 줄. 연줄(鳶乼)

乻(얼)=地名, 얼어리(乻魚里)=충청도(忠淸道) 땅이름.

乽(잘)=잘산(乽山), 군명(君名), 종실이름. 成宗(乽山君. 者乙山君, 者山君),

乶(볼)=地名, 볼하(乶下)=함경도(咸鏡道) 땅이름.

놀(㐗), 찰(乲), 밀(㐘), 묠(乮), 볼(乶), 굴(㐇), 살(乷), 살(㐊), 골(圣), 골(㐔) 등 우리나라의 한자.

위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이두식(吏讀式)으로 만든 한자(漢字)는 주로 종실명(宗室名). 왕자군명(王子君名). 山.하천(河川) 등지명(地名), 人名 ……에서 많이 보임.

① 月山大君, (잘)乽(者+乙)山君, 묠산군(乮山君), 옷 걸(乬)이, 갈천(乫川), 갈산(乫山), 갑돌(甲乭)이. 을돌(乙乭)이, 삼돌(三乭)이, 鳶乼(연줄)……. 巨濟 갈(㐓)곶이 금강(海金剛), 산절(山㐉)왓. 압 절(㐉)왓.

② (人名) 갑돌(甲乭)이. 을돌(乙乭)이, 삼돌(三乭)이→ 一돌(乭)이, 二돌(乭)이, 三돌 (乭)이→ 一도리(徒里), 二도리(徒里), 三삼도(徒里)→ 一도나(徒那)→二도나(徒那)→三도나(徒那)→一도현(徒縣)→二도현(徒縣)→三도현(徒縣) ; 一도현(徒縣)=양을나(良乙那). 二도현(徒縣)=고을나(高乙那). 三도현(徒縣)=부을나(夫乙那).

*나(那)=현(縣)과 通. 즉, 갑돌(甲乭)=양을나(良乙那), 을돌(乙乭)=고을나(高乙那), 사돌(三乭)=부을라(夫乙那)로 대입시켜 볼 때. 갑을병(甲乙丙)=1 2 3. 병(丙)=三이므로 삼돌(三乭). 돌(乭)→도(都)→도(徒)→나(那)→현(縣)→군(郡)→도(道) 등으로 파생(派生)된 것으로 보여진다.

~을나(乙那)의 나(那)=處所, 어디, 어디에(Where). 현(縣)과 통(通)함.

㐔那(골나)→대정골나(大靜㐔那)→대정나(大靜那)→대정현(大靜縣) *㐔=古+乙→이두식국자(吏讀式國字)⇒那 ; 縣이름 나(~현), 어찌 나(어찌, 어느, 어디, 어느 곳, 어디에).

 

Ⅴ. 제주도(濟州道)의 삼성설화(三姓說話)

삼성인(三姓人)의 각(各) 활을 쏘아 소거지(所居地)를 정한바 고을나(高乙那)의 거지(居地)는 등일도(等一都), 양을나(良乙那)의 거지(居地)는 등이도(等二都), 부을나(夫乙那)의 거지(居地)는 등삼도(等三都)라 하였다.

여기에서 도(都)는, 『고읍지(古邑誌)』에서는 도(徒)로 되어 있어 이것이 바로 진한(辰韓)의 도(徒), 신라(新羅)의 훼(喙)[乭;돌], 가야(加耶)의 <도(刀). (아도我刀, 여도汝刀, 피도彼刀)>와 같이 두레도리의 대역어(對譯語)로서 공동집단체(共同集團體)의 뜻이니 지금도 제주도에는 一徒, 二徒, 三徒 등이 지역명칭(地域名稱)이 남아있다.

그러므로 都→徒→那→縣→郡→郡∙市→特別自治道 ; 市邑面洞 등으로 분화된 것으로 추찰(推察)된다.…… *等=1,2,3은 등위.

삼을나(三乙那)의 소거지(所居地)

제일도(第1都)=양을나(良乙那)

제이도(第2都)=고을나(高乙那)

제삼도(第3都)=부을나(夫乙那)

- 고려사(高麗史)와 세종실록(世宗實錄)

 

제일도(第1都)=일도리(一徒里)이니 금[今 濟州]요

제이도(第2都)=산방리(山方里)이니 금[今 大靜]이요

제삼도(第3都)=토산리(土山里)이니 금[今 旌義]이다.

- 영주지(瀛洲誌) 고득종서세문(高得宗序世文)

 

삼을나(三乙那)는 이처럼 전도(全島)의 삼지구(三地區)에 나누어 각각 그 소관지(所管地)에 거주(居住)하면서 자손(子孫)의 번영(繁榮)과 산업발전(産業發展)의 기초(基礎)를 닦았던 것이다.

그 후 세월(歲月)이 흘러가는 동안 각(各) 씨족(氏族)의 자손(子孫)들이 더욱 번창(繁昌)하였고 산업(産業)의 발전(發展), 부력(富力)의 증진(增進)에 따라 각지에서는 씨족부락(氏族部落)들이 증가(增加)되어 나아갔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26년(1300). 주현(主縣) ; 탐라현(耽羅縣)=16개의 현촌(縣村)<속현(屬縣);속읍(屬邑)>이 설치(設置)로 1개 주현(個 主縣)인 탐라현(耽羅縣)에, 16개 속현(屬縣)을 合하여 17개 현(縣)이 정비(整備)된 것이다.

17개현(個縣);주현(主縣)=탐라현(耽羅縣) 1.속현(屬縣)=귀일(貴日)·고내(高內)·애월(涯月)·곽지(郭支)·귀덕(歸德))·명월(明月)·신촌(新村)·함덕(咸德)·김녕(金寧)·호촌(狐村)·호아(狐兒)·토산(兎山)·홍로(洪爐)·예래(貎來)·산방(山房)·차귀(遮歸) 등 16.대촌현(大村縣)인<탐라현(耽羅縣)의 치소(治所)>에 포함(包含). 계 17. 조선시대(朝鮮時代)로 넘어와서 三邑(濟州牧·大靜縣·旌義縣)體制로 정비(整備).

태종(太宗)16년(1416) 5월

북면(北面)의 제주목(濟州牧)의 목사(牧使)는 대촌현(大村縣)을 본(夲) 고을로 삼아

동도(東道)=신촌(新村)∙함덕(咸德)∙김녕현(金寧縣)

서도(西道)=귀일(貴日)∙고내(高內)∙애월(涯月)∙곽지(郭支)·귀덕(歸德)∙명월현(明月縣)을 소속(所屬)시켰고

동도(東道)의 현감(縣監)은 정의현(旌義縣)을 본(夲) 고을로 삼아, 토산(兎山)∙호아(狐兒)∙홍로(洪爐) 등 3현(縣)을 소속(所屬)시켰으며,

서도(西道)의 현감(縣監)은 대정현(大靜縣)을 본(夲) 고을로 삼아 예래(猊來)∙차귀현(遮歸縣) 등 2현(縣)을 소속(所屬)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들 현촌(縣村)은 직촌(直村)으로 바뀌었다. 이리하여 태종16년(1416)에 1목(牧)2현(縣)의 제주3읍제(邑制)가 정립되었다.조선시대 군현(朝鮮時代 郡縣)의 정비(整備)는제주3읍제( 濟州 三邑制) 마지막으로 일단락(一段落)된다.

따라서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성이 고을, 양을, 부을이고 끝에 '나'는 지명을 뜻한다고 보여진다. 고양부와 제주3읍제도 3의 고리로 연계가 된다.

 

Ⅵ. 결 론

한라산 영실 존자암 터에는 상고시대 부도(浮圖)와 열평전후의 자연동굴이 있고 자연석으로 된 불상이 있다. 역사적으로 김정(金淨)의 ‘존자암기(尊者庵記)’에는 “존자암은 고·양·부(高良夫) 삼성(三姓)이 처음 일어났을 때에 세워졌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김상헌의 남사록에도 같은 내용으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고·양·부(高良夫)는 발타라 존자의 인도권속 9백여 명이 아라한(阿羅漢) 지능집단(知能集團Intelligence Group)의 3개 그룹(3*300)이 리더(Leader)일 가능성이 있다.

고려 대장경(1011-1087) 법주기에 따르면 석가가 돌아간 뒤 기원전 540년 전 후에 발타라 존자 권속이 탐몰라주(지금이 탐라) 곳곳에 살면서 불교를 전파하였는데 그 흔적은 제주의 해안 마을마다 절을 지은 흔적인 절왓(寺田)과 인도 희말리아 산맥농촌의 돼지 통시와 쇠 말똥을 말리는 풍습도 제주의 웃드르에 그대로 남아 있다.

발타라 존자와 아라한들은 세계에서 제일 좋은 물을 찾기 위해 탐라에 왔는데 불행하게도 그 물을 찾지 못했다. 그후 약 2200년이 지난후(1998년)에 제주도민들에 의해서 신선한 물인 삼다수를 발견했다. 발타라 존자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물이 제주 탐라에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문호 교수에 대하여 

 

이문호 교수는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고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으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한 학자로 지난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