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하자'..하모리 모슬포성당(모슬포천주교회) 사랑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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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하자'..하모리 모슬포성당(모슬포천주교회) 사랑의집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7.1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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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반 신부는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육군 공병대가 이 부지의 정지작업을 지원

하모리 모슬포성당(모슬포천주교회) 사랑의집
 

위치 ; 대정읍 하모리 805번지
시대 ; 대한민국(1954년)
유형 ; 종교유적

 

하모리_천주교회사랑의집

 

대정읍에서는 신축교안으로 천주교인이 모두 죽으면서 천주교를 믿으면 죽는다는 공포심으로 50년 동안 천주교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피난민과 군인들이 제주도로 몰려들고 대정 지역에도 타도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게 되면서 대정 지역에 천주교 선교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1951년 5월 7일 육군 군종단이 창설되었으며, 군종신부들이 제주 선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미국 뉴욕 대교구장이던 프란시스 스펠만(F. Spellman) 대주교는 세계 가톨릭 군종신부단장으로서 중공군 포로수용소에 중국어에 능통한 성 프란치스코수도회 소속 설리반(Sullivan, 蘇) 신부를 군종신부로 임명하였다. 설리반 신부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하다가 추방된 선교사이다.

설리반 신부가 1951년 중반 훈련소 종군신부로 부임한 후 신자 포로들을 돌보고 선교하는 사목활동을 펼칠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사목활동을 펼쳤다.

설리반 신부는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육군 공병대가 이 부지의 정지작업을 지원했고, 1952년 당시 송악산 쪽(만다리)에 있던 중공군 반공포로들 중 일부를 성당 건립 공사에 투입하였다.

산이수동 일대에서 암석을 채취하여 건물의 석조 외벽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포로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공사에 참가했다고 하여 〈痛悔의 집〉이라고 불렀다.

1953년 반공포로들은 석방되어 돌아갔기 때문에 공사는 잠시 중단되었으나 이 때 해체된 수용소 자재들을 기증받아 성당 부지로 반입해 놓고 떠났다. 나머지 공사는 육군 제1훈련소 군종신부에게 맡겨졌다.

육군 제1훈련소 김이환(스테파노) 신부에 이어 김덕제(치릴로, 1955년 11월 이임) 신부가 성당을 완공하였는데, 1954년 3월 12일 광주교구장 서리 하롤드 헨리(H. Henry, 玄) 신부(후에 대주교가 됨)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가졌으며, 서귀포본당 소속 모슬포공소가 되었다.

대정읍에는 모슬포공소가 세워지면서 1901년 신축교안으로 없어졌던 천주교회가 다시 들어선 것이다.

건물은 석조벽에 맞배지붕이며, 측면에 현관을 배치하였고 정면으로는 서쪽에 1개의 출입문과 5개의 창문을 내었다. 문의 윗부분은 반원형이다. 건물 명칭은 제16대 주임 고병수(요한) 신부의 뜻에 따라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하자는 뜻에서 〈사랑의 집〉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작성 17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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