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바닷가에서 1㎞, 바다 가까운 작은 마을..하귀2리 학원동 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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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바닷가에서 1㎞, 바다 가까운 작은 마을..하귀2리 학원동 성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4.04.25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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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에서 3달 남짓 생활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 마을을 둘러 성담을 쌓았다.

하귀2리 학원동 성담

위치 : 애월읍 하귀2리 2120-1번지의 남쪽 경계 일대. 학원동민회관 남서쪽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유적(마을성담)

하귀2리_학원동성담南(2002)
하귀2리_학원동비학동산성담(2002)

 

 하귀2리 학원동은 50여호의 작은 마을이었다. 바닷가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마을이지만 1948년 5월 26일 새벽 토벌대가 마을을 포위하여 좁혀오자 주민들은 이리저리 도망하다가 잡혀 구타를 당했고, 양사봉(70세)·고형희(61세)·강상돈(23세)는 속칭 진수리로 끌려가 사살당하는 사건이 있었고, 무장대의 습격이 간헐적으로 이어졌으며, 12월 7일 김호중씨가 외도지서에서 총살되고, 12월 10일에는 김낙준(여, 69), 김재봉(65), 고희전(65), 고영삼(62), 고두주(60대), 백용흥(여, 60대), 현귀덕(여, 60대), 강화순(여, 61), 강승학(50대), 김지수(50대), 강기유(49), 고정규의 아내(30, 임산부), 김계생(여, 29), 강두중(16) 등이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는 등 희생이 이어지자 주민들은 1949년 2월 18일 일제히 아래 마을로 이주하였다.(제주4·3유적Ⅰ 574쪽, 4·3은 말한다③ 69쪽)

토벌대의 강제 소개 명령이 있기 전 스스로 내려갔다고 한다. 따라서 집은 불태우지 않고 남아 있게 되었다.(학원동 거주 고창선 2020-02-15 증언)

이들은 바닷가 마을에서 3달 남짓 생활하다가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온 후에 마을을 둘러 성담을 쌓았다. 이 때 상귀리 소앵동 사람들도 함께 살았다.(제주4·3유적Ⅰ 574쪽)

이 시기는 제주도 전체적으로 볼 때 1949년 봄부터 해안지대에 가까운 마을부터 경찰의 허가를 받아 자력복구가 시작되던 시기이다.

남아 있는 성담의 규모는 높이 2.5m, 아래 폭 1m, 위 폭 0.5m, 길이 30m 정도로 동서 방향이다. 남쪽이 성밖인데 성안과 높이 차이가 2m 정도 되기 때문에 성안 쪽은 낮고 밖은 매우 높다.
《작성 202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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