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도민 총동원 쌓아..온평리 환해장성(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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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도민 총동원 쌓아..온평리 환해장성(변형)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 승인 2017.11.28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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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평-신산 부근 해안에 남아 있는 것은 약 2Km..일부 골재용 사용도


온평리 환해장성(변형)

 
환해장성 還海長城
문화재 지정사항 ; ?
유형 ; 방어유적(성)
시대 ; 고려∼조선
위치 ; 성산읍 신산-온평리 바닷가

 

 

 

 

고려 원종11년(1270) 김수, 고여림이 삼별초의 입도를 저지하기 위하여 해안선 300여리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김수, 고여림이 제주에서 생존한 기간(1270년9월 입도, 11월 삼별초 이문경 명월포로 상륙, 금덕전투에서 김수 전사, 송담천전투에서 고여림 전사)으로 보면 그 때 시작은 했다

해도 완성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조선시대 헌종11년(1845) 겨울 권직 목사가 도민을 총동원하여 환해장성을 쌓았다고 하니 현존하는 환해장성은 이 때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산포를 중심으로 해서 서귀소(消)까지 이르는 곳곳에 해안 성곽이 축성되어 있는 바, 완전하게 원형이 남아 있는 것은 없고 거의 반파 또는 유실된 상태이다.

성벽에는 약 20m 간격으로 방어초소와 유사한 한 변의 길이가 2m정도의 정사각형의 석곽이 있다. (제주도, 제주의 문화재. 347쪽)


온평-신산 부근 해안에 남아 있는 것은 약 2Km이며, 현재 온평리 환해장성에 보이는 석곽은 전경초소에서 경계근무용으로 시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회곽도(廻廓道, 성 안쪽에 붙여 만든 폭 2m, 높이 1m 정도의 段처럼 된 보초 근무 중 왕래하던 길)의 흔적이 약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으나 최근 일부 주민이 골재용으로 환해장성의 돌들을 실어다 써 버린 일이 발생(제주신문 1996. 8. 23.)하여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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