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천미포왜란..신천리 천미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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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천미포왜란..신천리 천미포연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12.13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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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미촌에는 적을 두려워하지 않아 삼년간 세금 줄여주는 감시(減柴) 은전


신천리 천미포연대

 


천미포연대 川尾浦烟臺
문화재 지정사항 ; 제주도 기념물 23-3호(1976년 9월 6일)
위치 ; 성산읍 신천리 267번지. 1132도로(일주동로)에서 신천로를 따라 동쪽으로 200m, 남쪽 골목으로 60m 정도 지점에 있다.
시대 ; 조선
유형 ; 방어유적(봉수-연대)
관련 사건 ; 천미포왜란

 

 

 

 

 

천미포연대는 신천리 버스정류소 옆 길로 동쪽으로 들어가 100m쯤 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 집 곁에 있다.

연대의 서쪽 벽은 건물과 붙어 있고 연대 자체가 집의 울타리의 일부처럼 되어 있다. 하부 9m×8.9m, 상부 8.6m×8.6m, 높이 3.1m이다.

천미포연대는 1970년대에 마을주민들이 남제주군청의 지원을 받아 보수한 것인데, 인근의 원형 그대로 있는 연대와 비교해 보면 모양이 다르다.

즉, 소마로연대·말등포연대·협자연대는 윗부분이 평평하고 가운데 봉덕이 있는 형태인데, 천미포연대는 안쪽이 평평하고 낮으며 가운데에도 봉덕이 없으며 주위에 80cm정도 높이의 방호벽을 설치하였다.

천미포연대는 동으로는 온평리에 있는 말등포연대(6.9㎞), 서로는 표선에 있는 소마로연대(5.3㎞)와 교신하였다. 정의현 소속 별장 6인,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천미포는 왜구 침입의 규모가 컸던 곳으로 보인다. 명종실록에 의하면 명종7년(1552) 5월에 왜적이 천미포(川尾浦)에 침입하여 포민(浦民)을 살상하고 재물을 약탈하였는데 2일간이나 전투가 계속되었다.

이 때 김충렬(金忠烈) 목사와 김인(金仁) 현감은 이들을 막지 못하였다 하여 파직되고 남치근(南致勤) 목사와 신지상(愼之祥) 현감이 부임하였다.

또, 명종 9년(1554) 5월에도 왜선 1척이 천미포 근처에 정박하였다가 10여명이 하륙(下陸)하였으므로 상전(相戰)하여 그 중 1명을 사살하니 퇴각하였다.(제주도지Ⅰ권 847쪽)

천미포왜란에 대한 상세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명종 7년(단기 3885년, 1552년) 5월 왜선 여러 척이 천미포(현 성산읍 신천리 동쪽해안) 속칭 '구진개(구신개)'로 쳐들어 왔다.

그러나 천미촌 세 마을(상천, 하천, 신천)의 백성들이 힘을 합하여 왜적들과 싸우는 한편 이를 관에도 급히 알렸다. 천미연대와 토산 봉수대로부터 보고에 접한 관군도 급히 나와서 앞을 막아 싸웠다.


날이 저물어 접전이 조금 멈췄다. 밤에 홰를 밝히고 해안을 관민이 지켰는데, 왜적은 밤에 몰래 작은 배로 살그머니 서쪽 천미천 하류로 나가 상륙하였다. 다음 날 접전에서 우리 관민이 왜구의 예리한 무기와 화총에 대적하기가 어려웠다.


적군은 상천미(현 신풍리)까지 쳐올라 왔다. 읍성까지 쳐들어 올 기세였다. 다행히 본주의 원군이 도착하여 사진리(현 신풍지경)에 진을 치고 우리 관민이 추격하여 더러는 사로잡고 더러는 개로천(천미천의 옛이름)으로 들어갔었다. 천미촌 백성들이 천미천에 불을 질렀기 때문에 적은 더 버티지 못하고 달아났다.


조정에서는 적을 놓쳤다 하여 목사 김충렬(金忠烈)을 파직시키고 본현(정의현)의 김인(金仁) 현감에게도 포상이 없어 애석해 하였다. 천미촌에는 적을 두려워하지 아니 하였다하여 삼년간 세금을 줄여주는 감시(減柴)의 은전이 있었다.


당시 왜적들은 무기가 날카롭고 화총이 있어서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음에도 우리 군사들은 지세를 잘 이용하여 적의 총탄을 피하면서 잘 싸워 적을 무찔렀고 당시 목사와 현감도 군사와 같이 야영을 하며 물리쳤다.


조정에서는 평상시 망을 엄중히 하지 않은 까닭으로 적이 쉽게 상륙하였다. 이는 '평소의 방비가 헤이된 까닭'이라 하여 적을 많이 사로잡고 격퇴하여 공적이 많았음에도 포상함이 없고 오히려 책임을 물어 파직시킨 것이다.


그러나 정의현에는 전선이 한척 뿐이기 때문에 해전서 적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이런 점을 살피지 못한 조정의 처사는 공정을 잃은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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