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보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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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보르미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12.2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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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49m 비고:14m 둘레:446m 면적:15,717㎡ 형태:원추형

 

보르미

별칭: 보로미. 보름이. 망오름. 망산(望山). 망월봉(望月峰)

위치: 대정읍 무릉1리 3,526번지

표고: 49m 비고:14m 둘레:446m 면적:15,717㎡ 형태:원추형 난이도:☆☆

 

 

 

명칭을 벗어나 숲을 이룬 환경으로 시민들을 받아들이는 착한 화산체...

보르미는 보름+이(산이나 오름 등의 별칭을 의미)를 뜻하는 표현이며, 보롬+이나 보로미라고도 하는데 부르기 편한 쪽을 선택했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오름의 모양새를 두고 둥근 보름달 같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지만 많은 변화가 이뤄진 지금으로서는 그 모습을 그려보기가 어려울 정도이며 왠지 어설프고 허접한 모습도 관찰이 된다.

예전에 마을 주민들이 보름달을 맞이하는 곳이라 하여 망산(望山)이나 망월봉이라고도 했다는데 이러한 입지로는 적합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어느 고지에서나 보름달은 볼 수 있는 법. 유별나게 낮은 등성을 보름달에 연유한 것으로 보면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신성시되었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동네의 뒷동산 정도를 대신한 장소였을 것이며 마을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 덕담을 나누면서 달맞이를 했을 것이다. 옛 모습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침식과 개간 등으로 인하여 변화가 이뤄진 지금은 차라리 반달이나 초생달을 그려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보르미가 소재한 곳은 중산간으로 이어지는 농촌형의 소박한 마을로서, 오름과 마을 민가와의 거리는 불과 10m 정도이며 주변은 농지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이 마을 사람들로서는 주변에서 유독 높은 언덕이기에 일대를 바라보거나 심신을 추스르기 위하여 이곳을 오르곤 했을 것이다.

 

한때는 일부 소나무들이 산 체를 감싸 안고 기슭의 허허함을 가렸었지만 재선충병으로 인하여 이제는 그나마 볼품이 사라졌다. 세월을 거슬러 옛날을 돌이킬 수 있다면 사연과 과정을 엿볼 수 있으련만 지금의 보르미는 내다 버린 산 체처럼 가엽게 보인다.

불과 14m의 비고(高)가 말해주듯 나지막한 등성이며 숲이 사라진 지금은 빌레나 머체왓 정도로 느껴진다. 무릉 문화의 집 방향 맞은편에 전지동 표석이 있으며 이곳에서 약 600m 정도 이동을 하면 오름 기슭에 도착이 된다.

허접하고 을씨년스러운 외형을 감안하면 차라리 하절기에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여 재선충이라는 수마의 흔적이 사라지고 푸른빛의 수풀과 덤불이라도 싱그러움을 보여줄 때 말이다.

 

-보르미 탐방기-

마을과 다소 떨어진 곳에서는 그나마 화산체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근처에 도착을 하고 나니 오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고 허접하게 보였다. 그러한 만큼 특별히 초입을 고민할 바는 못 되었는데 민가 뒤편에 농지로 이어지는 소로가 있어 이곳을 이용하여 진입을 시작했다.

농지에는 수확 시기의 양배추가 가득 있었는데 조심스럽게 밭 한쪽 옆을 선택하였다. 낮은 기슭에 도착을 하니 우선 허무하고 처참한 모습이 보였다. 많지 않았던 소나무들이지만 재선충병으로 인하여 다 잘려나갔고 어지럽게 흩어진 나무 가지들의 흔적은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작업 차량이 드나든 흔적과 더불어 일부 잡초들조차 파헤쳐 진 채 그대로 뒀는데 차라리 작업을 하는 김에 정돈이라도 좀 해줬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봄이 되어 내성이 강한 야생화나 잡풀들이라도 생명력을 지탱하여 주위를 감싸주기를 희망해 봤다.

그래도 봉우리의 정상을 찾아 올라서니 멀지 않은 곳에 수월봉과 당산봉이 보였고 우측으로 시야를 돌리니 녹남봉​이 보였는데 망산(望山) 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몇몇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과거에는 수평선까지 보이는 명당이었으리라는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많지 않은 가구 수이지만 ​보르미로서는 지금도 이 마을을 수호하는 지킴이 역할도 하고 있을 것이다. 등성에는 산담이 없는 묘가 있고 주변에는 퇴색된 억새 띠들만 차지하여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보름이로서도 이제 망자의 한을 풀어주기에는 너무 허접한 상태라 면목이 없지 않겠는가.

과거에는 이 오름에서 마을제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니 마을을 수호하는 성역이면서 신성시되었던 오름임을 추측할 수가 있다. 하루빨리 정비와 새 환경이 이뤄지기를 희망하면서 낮은 기슭을 따라 돌아내려왔는데 어쩐 일인지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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