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 앞둔 대가야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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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등재 앞둔 대가야고분군..
  • 김평일 명예기자
  • 승인 2018.05.0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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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년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문화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 가 보니..
 
 

세계유산 등재를 앞둔 대가야고분군을 찾았다.

대가야고분군은 지금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폭우가 내리는 날 아침 일찍 제주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도착한 곳은 대구공항.

이곳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대가야박물관에 도착했다.

대가야박물관은 대가야고분군이 밀집되어 있는 유적지에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대가야 고분군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함안 말이산 고분군과 함께 가야고분군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추진단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함안 말이산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가야고분군으로 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세 지역의 고분군은 지난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재목록으로 등재 됐고 2015년에는 문화재청 세계유산 우선 등재 추진대상으로 선정돼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제 과제는 세계유산위원회의 실사와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일만 남은 셈이다.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특정 국가나 민족을 넘어 인류 전체가 보호해야할 중요한 유산이 된다는 의미다.

우리 후손 뿐만 아니라 다음 인류에게도 가야고분군의 가치를 온전하게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금관가야의 왕과 지배층의 묘역으로 사적 제34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대선동 고분군은 전기 가야의 성립과 전개, 성격, 정치사회 구조를 해명하는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유적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중국북방과 일본에서 수입된 유물들도 발견돼 가야가 동북아의 각 나라와 교류를 했음을 알 수 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에 있었던 아라가야의 왕과 지배층의 묘역으로 사적 제515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까지의 묘역들인 이곳 아라가야는 500여년 간 이 지역을 지배하던 나라로 이 묘역에서 나온 유물들은 500여년간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문화를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을 감싸고 있는 주산(主山)의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의 왕과 지배층의 묘역으로 사적 제7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대가야가 고대국가로 성장한 5세기 초부터 6세기 중엽까지에 걸쳐서 축조된 크고 작은 봉토분 700여기가 길이 2.4km, 너비1km 범위의 구릉 위에 길게 분포되어 있는 가야지역 최대의 고분군이다.

지산동 고분군은 당시의 토목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대, 소형 무덤들은 망자의 사회 정치적 위계와 집단에 따라 여러 군집으로 나누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지산동 고분군은 주산(主山)의 구릉 전체를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이승과 저승이 하나로 연결된다고 믿는 대가야인의 내세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곳은 순장을 비롯한 독특한 장례문화, 우수한 토목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대가야박물관은 대가야 왕릉이 모여 있는 지산동고분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대가야왕릉전시관’ 과 ‘대가야역사관’으로 구분하여 구성돼 있으며 대가야와 고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전시한 곳이다.

대가야 역사관은 2층으로 되어있는데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로 운영하고 있었다.

상설전시실에는 대가야 및 고령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구석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역사, 문화에 대한 설명과 지도, 유물, 고분 사진, 고분을 발굴하는 모습 사진 등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제1전시실은 대가야의 여명실로 대가야인의 사용을 했던 석기와 장기리 암각화를 유물과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다.

제2전시실은 대가야의 성립실로 그릇받침과 뚜껑, 회로모양의 토기 등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제3전시실은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실로 닭뼈가 담긴 항아리, 투구와 갑옷, 금귀걸이, 금동관, 여러 가지 토기 등 화려했던 대가야의 문물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실이 꾸며져 있었다.

제4전시실은 대가야 이후의 고령지방에서 출토 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획전시실은 연간 1~2회 정도 특정 주제를 설정하여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이번 기획전은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자료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대가야 역사관 전시실을 나와서 지산동 주산(主山)으로 100여m올라가니 대가야왕릉전시관이 커다란 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왕릉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와 사람들이 왕릉 속으로 들어가 왕릉의 내부를 보면서 당시의 문화에 젖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대가야왕릉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무덤으로 지산리 제44호분 내부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재현을 해 놓은 왕릉 전시관이다.

 
 

 

 
 

실물 크기로 복원 된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무덤의 구조와 축조방식,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 모습, 부장품의 종류와 성격 등을 볼 수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어린이체험관이 설치되어 있는데 대가야 토기퍼즐, 탁본, 인쇄, 민속품 체험 등을 통해서 어린이들이 대가야에 대한 여러 가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 되어 있어서 어린이들에게 조상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장이 마련되고 있었다.

이곳을 방문하여 자세히 알게 된 가야에 대한 내용을 집약해 봤다.

가야는 여러 부족 국가들이 모인 연합 국가로 수십 개의 부족들이 모여 금관가야, 성산가야, 아라가야, 대가야, 소가야, 고령가야 등 6개의 부족 국가를 이루고 있었던 나라다.

가야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발전한 부족 국가로 낙동강의 서쪽 지역에서 발전했는데 지금의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일대를 아우르고 그중 대가야의 세력이 가장 컸는데 대가야는 철기 문화가 발달한 나라로 철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해 농업을 발전시켰고 철제 무기로 군대를 정비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또 가야는 철기를 수출하고 백제와 일본과 교류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치다가 서기562년 신라 진흥왕에게 함락되었다.

고령의 중심인 고령읍은 몇 해 전, 대가야의 고장답게 행정구역 이름을 대가야읍으로 바꿨다.

지산동 고분군은 주산 능선을 따라 고분 700여기가 있는데 고분군 산책로 주변 통신 관로 공사 도중에 땅을 파는 곳마다 묘제와 유물이 출토되므로 인해서 이곳이 1500여 년 전 대가야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지산동 고분군에 올랐다.

비탈진 산기슭에는 수많은 봉분들이 산정까지 이어져 있고 큰 길 건너 맞은편 산에도 고분군들이 펼쳐져 있다.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왕릉전시관 옆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면서 만날 수 있는데 이곳에서 부터 고분군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산 정상에 오르면 아름다운 고장 고령읍내와 멀리 합천 가야산 전경까지 보인다.

고분군을 따라 이어지는 굽은 길들이 매우 아름다웠다.

학창시절을 더듬어 보니 역사책에서 배웠던 가야에 대한 내용은 가야는 삼국시대인 고구려, 백제, 신라의 그늘에 묻혀서 6개의 가야가 부족국가 형태로 경상도 일부 지방에 있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덧붙여서 금관가야엔 김수로왕의 있었고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우륵에 대한 이야기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가야사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대가야박물관과 지산동고분군을 찾아보고는 스스로 우리의 역사에 대한 생각이 미진했었다는 반성을 하게 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대륙에 대한 역사를 가야의 역사보다 열심히 배웠던 지난날이 씁쓸해졌다.

상급학교 진학시험에 나오므로 학교의 프로그램대로 따라가긴 했지만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를 못한 상태에서 외국의 역사(특히 선진국 중심의 역사)를 알기 위한 공부에 매진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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