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잣동네..하가리 문형행(문시행,문형도)초가
상태바
[향토문화]잣동네..하가리 문형행(문시행,문형도)초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8.10 07: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옥 구조나 전체적인 건물 배치는 중소농가의 표준사례

하가리 문형행(문시행,문형도)초가

제주도 민속자료 3-8호(1978년 11월 14일 지정)
위치 ; 애월읍 하가리 872. 하가리사무소 옆 동남쪽으로 난 길로 막다른 골목 끝
건축년대 ; 19세기 후기
유형 ; 민가, 초가

▲ 하가리_문시행_초가_안거리
▲ 하가리_문형행초가(1508)전경


제주도의 민가는 마을길에서 집으로 드나드는 골목인 올레가 있어서 외부로부터 집 안의 모습이 차단됨으로써 독립적 공간을 이룰 수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기 전 대문에 해당하는 이문간이나 정낭을 설치하였다. 또한 가옥은 대개 안거리와 밖거리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서 있게 구성되어 있다.

안거리와 밖거리의 부속 건물로 모커리를 두기도 했다. 모커리가 한 채이면 건물은 匸자형을 이루고, 모커리가 두 채면 囗자형이 된다.


하가리 문시행(문형도) 초가는 거릿길에 인접하여 우영을 두고 북동향으로 안거리가 자리잡았다. 안거리 맞은편으로 8m 떨어져 밖거리가 배치되었으며 그 옆에 쇠막(축사)이 있다.

원래는 쇠막이 2동이었으나 한 동은 헐어서 우영에 포함되었다. 대문 없이 우영을 끼고 쇠막을 사이에 두고 밖거리 모서리쪽으로 약간 휘어진 짧은 올레가 마당으로 유도되고 있다.


이 집은 3칸집의 안거리와 2칸 밖거리를 병렬 배치시킨 중산간 마을 목축농가의 전형이다. 안거리는 부엌칸을 나누어 작은 방을 놓고 이 방과 상방 사이에 작은 마루를 깔아놓은 삼칸집이다.

삼칸집이 민가의 기본이지만 겹칸 전부를 정지(부엌)칸으로 쓰는 기본형식이 있고 이 칸의 후면에 작은 방을 둔 것과 이 집처럼 작은방과 마루를 연달아 놓은 변형 칸잡이 형식이 있다. 이 때 반칸마루를 중마루라 부르고 식사전용공간으로 쓴다.


현재 하가리에서 오래되었다고 하는 가옥을 조사해 보면 이러한 중마루의 평면은 거의 볼 수 없다.

이유는 정지가 개량되는 과정, 입식으로의 개량이 아니라 난방을 겸한 아궁이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정지에 아궁이를 만든 것이 아니라 정지와 구들의 위치를 바꾸어 버리는 사례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볼 수 있는 가옥은 정지가 앞쪽이 아니라 뒤쪽에 있는 형태들이 많다. 1970년대 이전 개량하는 과정에서 초가집인 상태에서 이미 정지가 개량된 것이다.


안거리 뒤쪽에 안뒤가 있다. 안거리 뒷벽 끝에서 울타리 쪽으로 담을 쌓아서 외부와는 통하지 못하도록 만든 폐쇄적 공간이다.

이곳에 출입하려면 안거리 상방의 뒷문을 이용하거나 정지 뒷문을 이용해야 한다. 마당에서는 직접 출입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안뒤를 에워싸는 담은 울타리 다른 담보다 높아서 타인에게 비공개되는 공간이며 그 집의 상징이 될 만한 대나무나 동백나무, 감나무, 밀감나무 등을 심어 후원의 역할을 한다. 또한 이곳에는 장항(장독)을 두고 을 설치하기도 한다.

또 이 집에는 없지만 무속신앙의 대상인 밧칠성을 모시는 칠성눌 등이 놓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밖거리는 두 칸 초가로 부엌과 구들+고팡(庫房)으로 이루어진 것이 기본형이나 이 집에는 상방과 구들+고팡으로 식구 중 젊은 세대의 독립된 생활을 위한 칸잡이이다.

두칸집이 독채로 있을 때는 막살이집이라고 부른다. 밖거리 평면은 정지가 없고 고팡이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제주도의 가정분화와 다르게 안거리의 가족과 밖거리의 가족이 부엌살림을 따로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밖거리에도 안뒤가 설치되어 있다.


마당 남쪽에는 눌굽이 있다. 낟가리를 제주에서는 눌이라고 하는데 곡식의 낱알을 탈곡하고 남은 줄기나 탈곡하지 않은 상태의 줄기를 묶어 보관하는 눌을 누는 터를 눌굽이라고 한다. 보릿낭눌, 조칲눌, 콩고질눌, 촐눌 등 눌을 누는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부른다.


도로 또는 다른 집과 경계를 이루는 담을 울담이라고 한다. 울타리 담이라는 뜻이다. 도로와 경계를 이루는 울담은 1.3m로 매우 낮고 이웃집과 경계를 이루는 울담은 접담(겹담)으로 성처럼 축조했으며 높은 편이다.

원래 울담을 겹담으로 쌓는 것은 아니지만 집터나 밭에서 나온 돌들을 모아 담을 쌓다 보니 성벽처럼 두껍게 쌓게 된 것이다.

성벽을 뜻하는 순우리말이 잣인데 성벽처럼 쌓은 담이 많기 때문에 이 마을 이름이 잣동네이다.

이 집에는 특이하게도 담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아마도 울담에 올린 호박, 수세미 등을 수확하기 편하게 하려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마당은 주위에 섬돌을 마름지어 놓아 네모반듯하다. 안거리와 밖거리 사이의 거리는 약 9m 정도이다. 마당은 곡식의 탈곡, 건조, 집안 행사 등을 하기 위한 공간이다.


『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Ⅱ』에서는 “물팡을 정지 앞 공간과 굴묵 앞 두 군데에 설치한 것은 특이하다”라고 하였으나 물팡이 둘은 아니다. 정지 앞에 있는 것은 물구덕을 내려놓는 물팡이고, 굴묵 앞에 있는 것은 오줌허벅을 내려놓기 위한 오줌팡이다.

통시가 바로 곁에 있다. 통시는 안거리 북측 벽 옆에 배치되었다. 통시에서는 돼지를 키웠다. 제주도에서는 오줌을 따로 큰 항아리(오줌항)에 모아 두었다가 썩으면 오줌허벅으로 지어날라다 밭에 거름으로 뿌렸다. 요소 성분이 풍부한 유기질 비료이다.


가옥 구조나 전체적인 건물 배치는 중소농가의 표준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제주 지역의 주거 생활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민속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150년에 가까운 집의 역사를 말해주듯 지붕이 엄청나게 두껍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되면서 매우 빨리 훼손되고 있다.
2015년에는 안내판에 문형행 가옥이라고 바뀌어 있었다.
《작성 051227, 보완 131122, 150429》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