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징비록..명월리 명월진 남문과 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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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징비록..명월리 명월진 남문과 옹성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11.12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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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계광의 《기효신서》를 인용.. 옹성과 치성 등 복원

명월리 명월진 남문과 옹성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9호(1976년 9월 9일 지정)
위치 ; 한림읍 동명리
시대 ; 조선
유형 ; 방어유적(진성)

▲ 동명리_명월진남문외탁
▲ 동명리_명월진남문복원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시설이다.

유성룡이 지은 《징비록》에는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인용하여 옹성과 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그 효용성을 말하였다.


“만약 성에 곡성․옹성이 없다면 비록 사람마다 한 살받이터를 수비하고 사받이터 사이에 방패를 세우고 외면에서 오는 화살과 돌을 가려 막더라도 적군이 성 밑에 와서 붙으면 이를 보고서도 막을 수가 없다.

『기효신서』에 의거하면 50타마다 1치를 두어 밖으로 2~3장(丈)이나 나오게 했는데 두 개의 치 사이의 거리는 50타이며 1치가 각각 25타를 점령하게 된다.

따라서 화살이 나가는 힘이 한창 강하고 좌우로 돌아보면서 쏘기가 편리하므로, 적군이 성 밑에 와서 붙을 수 없게 된다.”(징비록 358쪽)

2002년 2월 19일 명월성 성곽 보수공사 중 옹성터에 있던 농가를 철거, 농가 가장자리에서 옹성(내탁) 기단석 10m를 원형으로 발굴했다.

북제주군은 2001년 남문지 보수공사시 주춧돌, 돌저귀를 원형 발굴한 데 이어 2002년에는 옹성(내탁) 기단석, 지대석 등이 원형 그대로 발굴했다.

명월성 성곽보수공사 과정에서는 옹성 내탁 기단석 10m를 원형발견한 데 이어 옹성 외탁(사진 위) 기단석 3m와 지대석을 원형 그대로 발굴했다. 이를 토대로 남문 옹성과 대문을 복원하였다.(사진 아래)


동문지(東門址)의 옹성 일부도 남아 있다. 그러나 외벽만 일부 남아 있고, 옹성 자리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다.

남문지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살펴보면 남문지와 동문지 사이에는 3개소의 치성이 있고, 외벽의 일부가 전 구간에 걸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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