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역사 깊은..광령1리 본향당(자원당=할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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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역사 깊은..광령1리 본향당(자원당=할망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11.2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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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400년 이상 되는 신목(神木)인 팽나무 2그루 높이 솟아 있어

광령1리 본향당(자원당=할망당)
 

위치 ; 애월읍 광령리 영도빌라 북쪽 10m 지점
유형 ; 민간신앙(본향당)
시대 ; 조선∼현대
문화재 지정되지 않음

▲ 광령리_자원당
▲ 광령1리_자원당

광령1리의 본향당은 속칭 '할망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수령 400년 이상 되는 신목(神木)인 팽나무 2그루가 숲 위로 워낙 높이 솟아 있어서 얼핏 보아도 이곳이 신당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돌담을 두텁고 높게 쌓아 둥근 울타리를 둘렀다.


이 당에서 모시는 신은 '김씨할으방'과 송씨할망' 부부이다.(다른 자료에는 '송씨 아미' '송씨 도령'이 좌정했다고 한다.) 궤는 왼쪽 신목 앞에 하나 있다.

신목에는 지전과 물색을 걸어 놓았다. 두 팽나무 밑에는 두 개의 화강암 석판이 연이어 놓여 있다. 그중 동쪽 굵은 팽나무 밑의 것이 누이 '송씨아미'의 제단이고 서쪽의 작은 석판이 '송씨도령'의 몫이다.


이 당은 본래 광령초등학교 남쪽에 있었는데 '당동산', '작박거리', '당동산'으로 옮겼다가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긴 것이라 한다.

예로부터 당굿은 없었고 부인네들이 개별적으로 택일하여 제물을 마련하고 심방을 빌어다가 축원했다고 한다.

제물로는 메 1그릇, 돌레떡(소금을 쓰지 않음), 생선, 실 1타래, 무명 또는 명주 1자를 올린다. 돼지고기는 금한다.

매인심방은 오씨할으방-고씨할으방-변씨할으방-박씨할망(오름할망)-이씨할망 등으로 1940년대까지 계보가 알려져 있다.(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Ⅱ 133쪽)

2006년 6월 4일 만난 이 마을에 사는 한 할머니는 지금도 다닌다고 하는데 식구들에 생기맞는 날을 택하여 제물로는 메, 채소, 바닷고기, 과일, 과자, 사탕 등을 마련하여 치성을 드린다고 하였다.

생기맞는 날이란 식구들의 해치(띠)가 없는 날이라고 하였다.


둘레 6∼7m나 되어 보이는 나무의 굵기는 이 당의 역사가 속히 3백년 이상됨을 말해준다. 그러나 구전되는 이 당의 역사는 그 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추정케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옥황상제에게는 열두 신하가 있었다.

그 중 열 신하는 십전대왕(시왕 : 저승에 있다는 10대왕으로 전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오도전륜대왕을 말하는 듯)으로 보내고 열한번째는 강림사자(저승사자)로 보내고 맨끝 열두째는 송씨대왕인데 '인간세계에 생불로 내려가라'고 해서 왼쪽에 생불보살을 끼고 오른쪽에 화덕진군을 끼고 지상에 내려왔다.

그는 인세에 내려와 영주산동남쪽 '안수못밭'에 터를 잡고 아들 5형제, 딸 형제를 낳았다 자식들이 장성해 가자 큰 아들은 구좌읍 송당 보호신으로 보내고, 둘째는 대정 '새당'에 화덕진군을 보내고, 셋째는 세화당으로 보내고, 넷째는 '당모를'로, 막내는 원당봉수호신으로 보냈다. 그런데 막내 아들이 너무 어려서 누이인 작은 딸 하나를 더 딸려 보내고 큰 딸은 정의 토산당 드렁소굴로 보냈다.

하지만 두 오누이가 원당봉에 살려고 하니 '개끗(바다) 냄새가 나서 못쓰겠다 옮기자'해서 서쪽으로 옮기니 신엄 서쪽 자운당에 와서 머물렀다.

그러나 거기서도 남드르 절벽에 파도치는 소리가 듣기 싫어 '여기도 거주할수 없다'해서 수산 당동산으로 옮겼고, 그 곳에서도 물이 나빠 어쩔 수 없이 광령 서쪽 당동산으로 와서 거주했다.

그 곳은 생수도 있어 좌정지로 적격이었는데 차차 인가가 불어나서 지금 위치로 옮겨 왔다. 현 위치는 지세가 거북이형이라 지형이 좋고 생수도 있어 훌륭한 명당이라고 한다.


이 전설대로라면 할망당은 처음 설당한 이래 최소한 4군데 이상 위치를 옮겨왔으며, 당에 따른 인구 이동을 염두에 둔다면 이 당의 역사는 훨씬 이전으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실제로 현재 신엄리 서쪽에 '자운당'이라는 같은 지명이 남아 있어 그러한 추측의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광령 1,2,3리에 모두 '송씨할망당'이 있다는 사실이며 이 당의 분포는 인근의 제주시 도평, 연동, 오라, 도두동 일대와 한림읍 귀덕리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27∼28개에 이를는 이 '송씨할망당'의 분포는 애월읍을 중심으로 한 덩어리를 이루는데, 제주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송씨할망당이 거의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다른 지역과는 다른 신앙권을 갖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이에 따라 생활환경이나 마을의 역사도 달랐으리라는 점을 짐작케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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