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던드리당..무릉2리 평지동모동장축일본향(마조단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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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던드리당..무릉2리 평지동모동장축일본향(마조단 추정)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6.03 0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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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장만은 55세 이상의 여자로 음식을 깨끗하게 장만할 수 있어야 한다

무릉2리 평지동모동장축일본향(마조단 추정)

평지동 모동장축일본향
위치 : 대정읍 무릉 2리 평지동
유형 ; 민속신앙


 

 

 

평지동 향사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직진하여 시멘트길을 가다 보면 아스팔트길이 나오고 좌회전하여 잠깐 가면 비포장 좁은 길이 있다. 과수원으로 들어가는 막다른 길인데 과수원 넘어 밭 가운데 큰 나무들이 우거진 곳이다.


모동장 축일 본향은 '던드리당'이라고도 한다. 신목을 안쪽에 두고 돌담을 둥글게 에웠다. 주변에는 까마귀쪽나무와 예덕나무, 팽나무가 우거져 있어 여름 한낮에도 어둑하고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다.


제일은 정월에 택일하여 가지만 보통 매달 축일날 다닌다. 이곳에 모신 당신은 소의 수호신인 '축일할망·축일하르방'과 이 당의 매인 심방이었던 두 분을 모셔 4위나 된다. 당을 매었던 심방 2명이 죽으면서 이 당에 의지하겠다는 말을 남겨 그들도 신격화되어 함께 모시는 것이다.


신목으로 팽나무가 있고 거기에 지전 물색이 걸려 있다. 당은 밭 사이에 있는데 나무가 많이 우거져 있고 돌담으로 둘러져 있다. 당의 전경은 탁 트여 있다. 한편 여기에서는 매해 음력 정월에 날을 택해 평지동 마을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

마을의 대표자인 남성제관 5명을 뽑아서 평지동마을제(본향제)를 지내왔다. 무속제의와 유교식제의가 혼합된 형태인 셈이다. 제물로는 수탉 1 마리와 소고기 등을 쓴다. 마을회관에서 3일 정성으로 합숙하였다.

가호마다 돈을 3천원, 5천원씩 거두어 제물마련을 했다. 중요한 제물로는 좁쌀메, 산디메는 반드시 산메로 올리고, 제물로는 소의 중요한 부위를 날것으로 올리며 과일 중에서도 댕유지(唐柚子)는 반드시 올렸다.(제주의소리 110527 김순이 글)


이 마을 주민인 이성관(74)와 김상추(77)에 따르면 이 곳 당신을 목씨 하르방, 지씨 할망이라고도 하며 음식 장만은 55세 이상의 여자로 음식을 깨끗하게 장만할 수 있어야 한다. 제관은 마을 남자들 중에서 선발하여 제를 지낸다.


제주신화에는 야무지고 당찬 감은장아기가 나온다. 이 여신은 부모로부터 누구 덕에 사느냐는 질문을 받자,“나의 타고난 복으로 산다.”는 당돌하고도 깜찍한 대답을 한다. 막내 딸로부터 그런 불효막심한 말을 들은 부모는 당황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황당했을 것이다. 분노한 부모는,“당장 너 입던 옷, 너 쓰던 그릇 다 가지고 나가라.”고 했다.

이쯤 되면 감은장아기는 울면서 잘못했노라고 빌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선선히 보따리를 꾸려 검은암소에 싣고 집을 나가고 만다. 이때 감은장아기가 집에서 데리고 나온 검은암소야말로 그저 단순한 소가 아니라 행운의 상징이요, 우주의 현묘한 기를 품은 모든 가능성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검은암소를 신성시 해왔다. 그래서 국가의 제사에는 반드시 검은암소를 희생으로 사용하였다. 대정읍 무릉2리에 있는 모동장은 조선시대에 국가의례용 검은암소를 공급하기 위해 특별히 설치 경영하던 국영목장이었다.


이 목장을 중심으로 해서 목자와 주민들이 설립한 당이 축일본향당이다. 이 당은 유난히 그 권능이 세고 영험하기로 이름이 높다. 일제강점기에 이 당을 없애려고 헌병이 들어섰다가 즉사했다는 이야기는 지금은 전설이 되어 있다.


지금은 소 키우는 집이 겨우 한두 집밖에 남지 않았다고 김봉옥(1932년생, 남)씨는 말해준다. 그래서 4년 전 온 마을이 돈을 모아 본향제를 지제하는 큰굿을 심방 4명을 초청하여 하룻밤 하루낮을 꼬박 치렀다. 그러나 아직도 축일이면 답답한 사람들은 할망을 찾아가 의지하고 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축산단지를 이루어 소들의 울음소리가 구수하게 들려오던 시절은 가고, 지금은 소 키우는 집이 겨우 한두 집밖에 남지 않았다고 김봉옥(1932년생, 남)씨는 말해준다.

그래서 4년 전 온 마을이 돈을 모아 본향제를 지제하는 큰굿을 심방 4명을 초청하여 하룻밤 하루낮을 꼬박 치렀다. 그러나 아직도 축일이면 답답한 사람들은 할망을 찾아가 의지하고 있다.(제주의소리 110527 김순이 글)


장덕지 교수에 따르면 고려시대 몽골인들이 온 다음 서아막 마조제를 이곳에서 지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제주타임스 050406)


2007년 당제를 지제했는데 지제 과정은 다음과 같다.(2016, 대정읍지Ⅱ)


무릉2리 역대 이장이었던 평지동 출신 김씨와 문씨가 몇 년간을 던덜이축일본향당 제례시 대축자(大祝者) 제관으로 열심히 참여해 오던 중 1995년 음력 1월 12일 본향당 제례를 위해 3일 정성을 하고 예를 봉행하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섰는데 우연하게도 약을 먹고 죽은 개가 집앞에 있어 보게 되었다.

몸정성이 비림을 탔구나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어 의논을 했으나 대신할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참례하고 독축을 했다. 그 후 3일만에 그의 큰아들(경찰관)이 순찰근무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일이 있어 후탈이라고들 했다.

그런 후 이성관씨가 대축자로 일해왔는데 그가 2007년에 노인회 회장을 맡고 난 후에 제관을 엄선해서 몸정성을 위해 합숙을 시키려고 하니 농촌 실정에 인구감소에 따라 제관을 선임하기 어려웠고 이 어려움이 앞으로 더 심해질 추세이기 때문에 동민총회를 소집하고 이제는 지제를 하는 것이 어떤지를 의논하였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모슬포에 거주하는 무속인을 찾아 뵙고 진지하게 논의를 한 결과 지제를 결정하고 무속인을 초청하여 2007년 3월 10일과 11일 이틀간 지제를 고하는 굿을 올렸다.
《작성 070912, 보완 120127, 1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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