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오졸개..오조리 오소포연대(吾召浦煙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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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오졸개..오조리 오소포연대(吾召浦煙臺)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7.1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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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는 하나, 황당선이 보이면 둘, 가까이 오면 셋, 범경이면 넷, 싸움이 붙은 상황이면 다섯개의 연기를 피웠다.

오조리 오소포연대 吾召浦煙臺

 

위치 ; 성산읍 오조리 39번지. 성산고등학교 뒤편 소나무밭과 경작지의 경계
유형 ; 방어유적(연대)
시대 ; 조선

 


연대는 옛날 적이 침입하거나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방호소나 수전소 등 군대가 주둔한 곳에 연락을 취했던 통신망의 하나이다.

연대는 바닷가의 높은 지대에 석축 사면으로 쌓았고 상단 중앙에 대(봉덕)를 만들어 사용했었다.

평상시에는 하나, 황당선이 보이면 둘, 가까이 오면 셋, 범경이면 넷, 싸움이 붙은 상황이면 다섯개의 연기 또는 불빛을 피웠다.


제주도의 방어시설은 크게 3성·9진·10수전소 등으로 구분되며, 제주도 일원에는 해안 가까운 오름을 이용한 봉수대 25개소와 해안선 고지대에 설치한 연대 38개소가 있어 성·진·수전소와 연락을 취했고, 해안에는 환해장성을 쌓아 外侵을 막았었다.


제주도의 연대 중에서 문화재로 지정(서기1976년 9월 9일)된 것은 7기(신양리 협자연대, 온평리 말등포연대, 조천리 조천연대, 귀덕2리 우지연대, 신엄리 남두연대, 신천리 천미포연대, 표선리 소마로연대)이다.(제주역사연구회, 제주인의 삶. 238쪽)

연대의 규모는 높이 4m, 가로 8m, 세로 10m로 여기에는 별장 6인과 망지기 12명이 배치되어 교대로 지키고 있었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1702) 수산성조 그림에는 五照乙浦(오졸개)라고 되어 있고 연대는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저자의 『남환박물』에는‘봉수와 연대가 무릇 63곳이 있다’고 하였다. 망25+연대38=63이므로 오소포연대까지 포함해야 숫자는 맞는다.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림만 누락된 것일까? 그렇지만 기록상으로는 1760-70년대에 만들어진 탐라방영총람에 처음 나온다.


오소포연대는 수산진 소속이다.

남쪽으로는 협자연대, 북쪽으로는 종달리 두원포연대와 교신하였다. 그러나 1842-43년간에 발간된 이원조의 탐라지초본에는 오조(吾照)연대라고 되어 있고, 북쪽으로 금록포(金綠浦)연대와 교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금로포(금록포)연대는 남원읍 남원리에 있었고 오소포연대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또한 같은 책에서 금록포연대에 대해서‘정의현 서남쪽 40리에 있다.

동쪽으로 벌포연대, 서쪽으로 우미연대에 신호를 주고받는다’고 하였으므로 오조(吾照)연대가 금록포와 연결된다고 한 것은 착오인 것 같다.


오소포연대(吾召浦煙臺)는 현 성산고등학교 뒤편 소나무밭과 경작지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밭을 경작하지는 않고 있다. 그 옆의 포구는 지금도 ‘연디개’ 또는 ‘연대밋’이라고 부른다.

연대의 원형은 일부 허물어져 있지만 연대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2002년말 복원하였다. 계단이 외부로 돌출된 모양이고 상부에는 방호벽을 만들었다.
《작성 080121, 보완 1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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