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대나무 무성..금악리 웃가름(웃동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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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대나무 무성..금악리 웃가름(웃동네)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8.06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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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가호가 모여 살던 금악 웃동네(금악 상동), 복구되지 않아 잃어버린 마을 돼

금악리 웃가름(웃동네)터

위치 ; 금악리 1300번지 일대
유형 ; 마을 터
시대 ; 대한민국

 


금악리사무소를 지나 남쪽 방향으로 1㎞ 정도 올라가면 길 오른쪽으로 시멘트 소로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 다시 500m 정도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 중앙에 위치한 팽나무 아랫단에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있다.


1948년 11월에 마을 소개령이 내려진 이후 마을이 불타 없어졌는데 1949년에 이르러 무장대에 대한 대토벌이 종료되어 인근 마을이 복구되는 와중에도 당국에서는 금악마을을 계속 위험지구로 여겨 복구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53년 7월에 이르러서야 금악주민들은 마을 복구를 허락받았다.


하지만 1948년 이전에 38가호가 모여 살던 금악 웃동네(금악 상동)는 복구되지 않아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버렸다.

주민들이 본동을 재건해서 그 곳에 모여 살다보니 웃동네는 자연 폐촌이 되어버린 것이다. 금악 웃동네는 아직도 대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당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2003년에 제주 4․3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에서는 이곳에 표석을 세워 표석을 세워 '다시는 이 땅에 4․3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표시하였다.(제주의소리 2007년 08월 16일)

당시 호주는 강안용, 김경환, 박도여, 강인선 부친, 이원송, 이승원, 김신봉, 김신학, 송창화, 송태화, 이신생, 김기학, 김태호 부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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