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암석 뚫어 우물 완공..한동리 인공우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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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암석 뚫어 우물 완공..한동리 인공우물터
  • 고현준
  • 승인 2020.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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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휴 이장과 주민들의 끈질긴 집념..도내에서 가장 깊고 자금과 공기도 가장 많이 걸려

한동리 인공우물터
 

위치 ; 구좌읍 한동리 윗동네(上洞) 노인회관 북쪽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수리시설

 

 


한동리 부민들은 예부터 봉천수에 의존하여 1㎞나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장 김대휴(金大休)는 1933년 초부터 한동리 947번지에 석공의 힘으로 암석을 뚫어 1935년 5월 26m의 우물을 완공하였다.

이 깊이는 도내에서 가장 깊은 것이며 자금과 공기 또한 가장 많이 걸린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주민들의 정성과 이장의 끈질긴 집념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지금은 그 우물 위에 덮개를 설치하고 게이트볼장을 만들어 우물을 볼 수는 없지만 옆에 표석을 세워 기념하고 있으며, 노인회관 앞에는 김대휴를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문 앞 ; 漢菴金大休紀德碑


왼쪽부터 뒤쪽, 오른쪽으로 ; 漢拏靈脈이 東瑞에 뻐처 屯地峰이 聳立의 陵地로 天然的인 盆地로 占有한 本部落設村以來 距今 數百余年間 飮料水의 惠澤에 枯喝하는 本洞民의 悠久한 怨恨을 洞察하신 漢菴金先生은 洞民의 將次 福利增進을 爲하여 洞民一體 奮起團合케 하여 檀紀四二六六年十二月 此地에 本井을 起工하여 元來 海拔線과 高差의 地形을 施工翌年에까지 거둡헸었으나 所期의 事業完成을 못 보고 一時는 中斷하기에까지 이르러 洞民들의 心境을 鬱憤케도 하였었다.

如斯한 工事推進에 多大한 波瀾曲折을 突破하며 不屈不撓責任感이 頑强하신 先生은 同事業을 繼續推進하고 深長二二米余글 鑿井에 連三個年次인 檀紀四二六八年五月에 드디어 湧水相을 보매 後世에 喝馬飮水의 榮譽裡에 竣工의 美를 보게 되었다.

敍上의 事業於間에 그 功勞는 이루 形容難盡러니 衆人의 感恨치 않을 수 없을지어다. 一滴飮에 快心如樂한 水味와 深井을 他處에 不 의 樣相이요 漢拏靈脈의 遺産이라 할 것이다.

特히 本事業을 完遂함에 始終一貫不斷히 盡力하신 下記幹部陣의 偉功을 俱讚하며 千秋不滅의 象徵으로 玆에 立碑紀念하도다. (중략 임원 이름) 檀紀四二九二年秋漢東里上同民 一同 謹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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