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장성의 동쪽 끝 부분..귀덕3리 마을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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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장성의 동쪽 끝 부분..귀덕3리 마을성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5.26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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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금성천 중간 지점까지 이어졌었다고 한다.

귀덕3리 마을성담
 

위치 ; 한림읍 귀덕3리 58번지. 귀덕3리 4거리 신호등 동쪽 50여m 지점 남쪽
유형 ; 방어유적(성)
시대 ; 대한민국

 


4·3 당시 귀덕리는 한림면에서 가장 넓은 마을로 4구(區)까지 있었다. 귀덕2구는 바닷가에 접해 있고 나머지 1,3,4구는 바닷가에서부터 중산간까지 이어져 있었다.


귀덕리에서 4·3 관련 첫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총선거 다음날인 1948년 5월 11일이었다. 토벌대는 귀덕 주민들이 거부하여 선거를 치르지 못한 것에 대해 분풀이를 하려는 듯이 마을을 포위하고 총을 난사했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도망쳤으나 4명이 붙잡혔고 그 중 3명이 속칭 '소주웨궤'에서 총살되었다. 김원석(31세), 조상옥(27세), 윤모씨가 숨졌고, 15세 정도였던 홍길옥씨는 도망쳐 살아났다.


당시 한림면은 마을별로 성담을 쌓지 않고 면 전체의 남쪽을 가로질러 쌓았고 귀덕리는 성안에 들었기 때문에 소개에 따른 피해는 없었으나 무장대가 해안 마을을 습격한 다음부터는 토벌대의 보복학살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귀덕리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12월 3일 무장대가 금능리를 습격한 다음부터였다.


1948년 12월 5일 귀덕4구 청년들을 향사에 집합시켰다가 그 중 일부인 이창봉(26세 남), 강정송(25세 남), 강창오(25세 남), 김일수(25세 남), 강천부(19세 남)씨 등을 한림국민학교로 끌어가 12월 9일에 대림 지경의 속칭 '봉근이굴'에서 총살하였으며, 12월 7일 김백근(38세 남)씨가 토벌대에 총살되었고, 12월 11일에는 양재수(37세 남), 고덕봉(23세 남)씨가 한림국민학교로 끌려가 총살되었으며, 12월 14일에는 김재평(33세 남)씨가 서청특별중대에 끌려가 총살되었다. 12월 18일에는 김여옥(29세), 이연보(22세), 이원석(22세)씨가 총살되었다.


귀덕3리에 남아 있는 이 성담은 장성의 동쪽 끝 부분이다.북쪽으로 금성천 중간 지점까지 이어졌었다고 한다.

너비는 2m를 넘는 규모지만 일부는 헐어 버린 곳이 있고, 높이는 어른의 허리 정도에서 가슴 정도까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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