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벽지 자제 교육..동명리 우학당(멸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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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벽지 자제 교육..동명리 우학당(멸실)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9.1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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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성 서쪽에 세운 월계정사 후에 우학당(右學堂)의 재실(齋室)과 명월진 서별창(西別倉) 있었던 곳

동명리 우학당(멸실)터

 

右學堂
위치 ; 한림읍 동명리 2177번지 일대. 백낙연선정비 있는 곳에서 서남쪽.
유형 ; 학교터
시대 ; 조선~

우학당터

 

동명리 2177번지 일대는 인종원년(1545) 제주목사 임형수가 벽지 자제의 교육을 위하여 명월성 서쪽에 세운 월계정사 후에 우학당(右學堂)의 재실(齋室)과 명월진 서별창(西別倉)이 있었던 곳이다.


우학당은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사설 교육 기관 설립이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우학당은 순조31년(1831)에 이예연 목사가 설립한 사설 지방 교학기관으로 부름접생(付廩接生 ; 늠과를 주는 학생)이 5인이었다.(구좌읍 세화리에는 좌학당을 설립하였다.)

서당은 종래의 여러 교육기관과 성격이 다르지만 교육기관이라는 이유로 특권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식이 강하였다.

이러한 특권적인 보호는 특히 군역 면제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헌종12년(1846) 이의식(李宜植) 목사는 군역의 폐해를 이유로 남서학당과 우학당 등 삼학당(三學堂)을 폐지하고 학당의 학생을 고강(考講: 강경(講經) 과목을 채점하여 등수를 매기던 일)하여 학생들을 선별하였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그 후 이 터에 1914년 4년제 개량서당인 보명의숙(普明義塾)이 숙장을 겸한 임창현(任昌鉉) 면장에 의해 개설되었고, 이것이 1921년 사립구우보통학교(私立舊右普通學校)로 개편되었다. 이어 1923년 9월 1일 공립학교로 인가를 받아 초대 교장 이화옥(李華玉, 용담)에 의해 운영되고, 1933년 4월 나카야마 시게요시(中山重義) 교장 때에 6년제로 연장하였다.

이 학교 이전 문제가 제기되어 1934년 7월 20일 현재의 한림초등학교 자리로 이설하였으며, 1935년 구우면이 한림읍으로 개칭되자 동년 4월 25일 한림보통학교로 개명되었다. 1936년에는 부설 신창분교장, 1937년에는 부설 금악간이학교를 거느리게 되었다.(현장의 안내표석) 우학당 자리는 현재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작성 100710. 보완 1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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