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리 정희관(鄭希寬)묘
위치 ; 덕천리 532-4번지. 덕천리 마을에서 서쪽으로 ‘덕평로’를 따라 1.2㎞ 가면 길이 Y자로 갈라지는데 남쪽 길로 50m 이내에서 남쪽 밭 안에 있다.
유형 ; 묘
시대 ; 조선후기
자 ; 국경(國卿)
일명 ; 정희량(鄭希良)
생몰년 ; 1662(현종 3) ~ 1751(영조 27)
본관 ; 동래(東萊)
활동분야 ; 문신 >문신
출생지 ; 제주도 구좌읍(舊左邑) 상도리(上道里)
비석 앞면 ; 有明朝鮮國嘉義大夫行龍驤衛副護軍鄭公貞夫人金氏之墓
1662년(현종 3)∼1751년(영조 27).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국경(國卿)이며, 다른 이름은 정희량(鄭希良)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제주도 구좌읍(舊左邑) 상도리(上道里)에서 태어났다.
숙종6년(1680) 제주안핵겸순무어사(濟州按覈兼巡撫御使) 이증(李增)이 제주도에 들어와 시취(試取)를 하였는데, 이 시험에 응시하였다.
시제가 승부부해론(乘桴浮海論)이었는데 혼자 문과 별시 병과에 급제하여 약관의 나이인 19세에 출사하였다.
경상북도 문경(聞慶)의 유곡찰방(幽谷察訪)을 역임하였고, 숙종10년(1684)에는 제주교수(濟州敎授)로 임명되어 제주도로 돌아왔다.
영조16년(1740)에는 회방(回榜: 과거에 급제한 지 60년이 되는 해)을 맞아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승직되었다.(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묘역이 매우 넓고 부부 쌍묘로 되어 있다.
비석 앞면에 쓰인 有明朝鮮國이란 16세기 이후 사대부들의 묘비에 흔히 쓰던 유행어이며 전국적으로 많은 묘비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명나라가 있는 조선 즉, 명나라의 속국인 조선이란 뜻이다. 종주국 명나라에 대한 조선왕조 사대부들의 사대모화사상의 발로로 여겨진다.
제주도에서는 서귀포시 서홍동에 있는 고만첨의 묘비에도 이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작성 1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