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분수에 맞는가? 성주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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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분수에 맞는가? 성주풀꽃..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1.10.2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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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은 분에 넘는 행동을 자제하고, 누가 보든 안 보든 자신을 낮추며 사는 것

 

분수에 맞는가? 성주풀꽃

 

성주풀(星州─ ) 현삼과, Centranthera cochinchinensis

 

 

가을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남쪽 지방으로 가야 새롭고 귀한 풀꽃을 만날 수 있어 남녘땅 천사의 섬을 찾았습니다. 웅장하고 장엄한 연륙교, 국내 최초로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천사대교의 길이는 10.8㎞입니다.

예전에는 신안군의 섬 탐방을 하려면 선박을 이용하여야 했기에 불편이 컸지만, 2019년 4월에 육지의 압해읍과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개통된 이후에는 신안군 안의 섬 나들이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천사대교가 개통되기 이전에 이미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등 신안군 주요 섬과 섬은 연도교(連島橋) 설치로 이어져 있었던 덕분입니다.

전남의 신안군은 1,004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어 ‘천사의 섬’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따뜻한 남쪽 지방의 이곳 섬들에는 각기 독특한 지형과 환경 속에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늦은 가을 이후에도 이 지역을 찾으면 야생의 풀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탐사에서 보고자 했던 꽃은 남쪽 해변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층꽃나무, 감국 등이었는데 그중 특히 만나고 싶은 것은 성주풀꽃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하여 신안의 섬에 도착, 성주풀 자생지를 찾아가니 점심때가 훌쩍 넘은 오후였습니다. 전에 한 번 탐방한 곳인데 행여 없어졌으면 어찌하나? 있다 하더라도 꽃이 이미 졌거나 아직 피지 않았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은 특정한 꽃을 찾아갈 때마다 항상 갖는 설렘과 조바심입니다.

현지의 정보를 알려주는 꽃 친구가 없는 경우에 개화기를 어림잡아 찾아갈 때는 항시 불안합니다. 꽃이 피지 않았으면 되돌아와야 하고, 이미 졌으면 일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주풀 자생지에 이르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힘든 줄도 모르고 산비탈을 치올라 현장을 찾았습니다. 자생지 일대를 유심히 살펴보니 다행스럽게도 쪼매한 연노랑의 여린 꽃이 풀더미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성주풀은 꽃이 작은 데다 풀더미와 어우러져 있으니 쉽게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헤아려보니 네 개체가 꽃을 매달고 있었습니다. 연노랑 꽃잎에 꽃줄기도 가냘파 여려 보이기만 한 성주풀입니다. 꽃잎은 줄기와 잎에 견주어 지나치게 크고 화관은 길어 살짝만 건드려도 꽃잎이 떨어지고 마는 여리디여린 꽃잎입니다,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고 접근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성주풀 꽃잎을 가리고 있는 다른 풀잎을 치우려다가 살짝 건드렸는데 그만 꽃이 톡-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만약 꽃이 한 개체였다면 영락없이 꽃 사진을 찍지 못했을 것입니다. 꽃잎을 건드려 꽃이 떨어지고 말았으니 꽃에도 미안하고 함께 간 꽃 친구에게도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떨어진 꽃잎을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팔꽃처럼 성주풀꽃도 지는 시각이 오후인 탓에 그리 쉽게 꽃이 떨어지고 말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도 이와 같은 일을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더욱 조심했는데도 떨어지고 말았으니 원래 이토록 꽃이 여린가 싶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꽃이 지나치게 크고 화관이 길어 줄기와 잎의 크기에 비하여 분수에 맞지 않는 꽃을 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릇 세상만사는 모든 것이 다 분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분수를 넘어서면 낭비와 부작용이 크고 되레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은 식물도,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꽃가루받이가 끝나고 질 때가 되어 떨어졌으면 다행이지만 꽃가루받이도 안 됐는데 꽃이 떨어지고 말았다면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닙니다. 봄부터 이제까지 자라서 꽃 피운 것이 허사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허망하게 떨어진 성주풀꽃을 보며 분수에 맞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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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만 건드려도 톡, 떨어지는 여린 꽃잎, 성주풀

 

성주풀은 습한 풀밭에서 자랍니다. 높이 20~40cm이고 뿌리는 적갈색입니다. 잎은 마주나고 바소꼴이며 윗부분에서는 어긋나며 잎자루가 없고 끝이 뾰족합니다. 꽃은 8∼9월에 연한 황색으로 피고 원줄기 끝에 이삭 모양으로 달립니다.

기다란 화관은 종처럼 생겼고 꽃잎 끝은 다섯 갈래로 수평으로 펴집니다. 한국에서는 참외로 널리 알려진 경북 성주에서 처음 발견되어 성주풀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경북(성주), 전남(신안, 진도, 영암) 등 특정지에만 분포하며, 멸종 위기의 꽃보다 더 만나기가 쉽지 않은 꽃입니다. 현삼과 성주풀속(屬)입니다. 성주풀속 식물은 전 세계에 9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1종만 자라는 성주풀속의 유일한 식물이기도 합니다.

살아가기 힘든 빈약한 습지에서 주변의 풀더미에 묻혀 살아가고 있는 성주플꽃의 생태가 매우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꽃의 크기가 줄기와 잎과 비교해, 분수를 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분수를 넘었기에 쉬 떨어지고 결실이 잘되지 않아 희귀종이 되지 않았을까? 그 결과 뭇 생명체의 소명(召命)인 번성과 왕성한 개체 수 증가에 실패하여 희귀종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분수에 넘는 커다란 꽃이라서 쉬이 떨어지고 마는 성주풀꽃의 안타까움을 보며 우리의 삶과 주변을 돌이켜봅니다. 분수란 자기 처지에 맞는 마땅한 한도입니다. 이를 벗어나면 과욕이 되어 경계해야 합니다. 매사가 나름의 직분에 따른 분수를 알고 이를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삶은 분에 넘는 행동을 자제하고, 누가 보든 안 보든 자신을 낮추며 사는 것입니다. 무리수를 둬 스스로 좌초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德目)이 분수입니다.

자신의 주제나 능력을 알지 못하면서 허세를 부리고 분에 넘치는 행동을 하다가 꺾이는 사례를 주변에서 흔히 봅니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즈음의 정치인들,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대며 자가당착에 날뛰는, 분수에 맞지 않는 이들을 보니 분수를 넘는 성주풀꽃의 허망함이 더욱더 절절히 떠오릅니다.

(2021.10월 허망하게 떨어지는 성주풀꽃을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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